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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동 May 11. 2021

흔한 사가(佐賀), 야나가와(柳川) 여행기 [프롤로그]

2017.10.27 ~ 30  대학생의 도피

친구들과 말하다 보면 자연스레 추억팔이로 넘어가곤 합니다. 오래된 친구들일수록 얽힌 기억이 많습니다. 학창 시절 이야기만 해도 삼일 밤낮을 꼬박 새야 하지만 요새는 시국이 시국인지라 함께 떠났던 여행이 토픽으로 자주 올라오지요. 대화 속에서 저는 주로 시청각 자료와 디테일을 담당합니다. 여행에서 보통 찍사를 맡고 있고, 블로그이든 어디든 기록을 해놓는 버릇이 있거든요. 제 컴퓨터 속 폴더, 블로그, 클라우드는 일종의 펜시브 역할입니다.  하드디스크는 꼭 백업을 해두는 이유입니다.


2012년부터 열심히 모으고 있습니다


사가 폴더에 들어가게 된 건 야구장 투어 이야기를 하다가였을 겁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1. 누군가 야구를 보러 갔습니다.

2. 햇볕이 쨍쨍해 보여 청주 야구장 같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3.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 사진 있을 텐데.'

4. '야구장 투어' 폴더에 들어가려다가 '사가' 폴더를 봤습니다.


오랜만에 보니 재밌었습니다. 사가 여행은 혼자 갔던 첫 번째 배낭여행입니다. 2012년의 유럽 여행도 혼자 가긴 했지만 여행사를 통해 에어텔(비행기와 호텔을 제공)상품을 통해 떠났습니다. 호텔에 묵었기 때문에 트윈 룸에 저와 같은 상품을 구매하신 다른 여행객 분과 함께 자게 됩니다. 같은 공간에 있으니 당연히 친해지고 일종의 전우조가 만들어집니다. 게다가 영국에서 프랑스, 프랑스에서 스위스 등 나라간 이동을 할 때에는 여행사 가이드 분께서 인도를 해주시기도 했구요. 반쯤은 패키지 여행입니다. 집에서 공항까지, 공항에서 집까지만 혼자였죠.


문득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했던 여행은 신나게 떠들어댄 기억이 많은데, 혼자 갔던 여행은 곱씹어본 적이 있었나? 가만 생각해보니 없는 거 같습니다. 사가 여행 중에 과제를 제출하려고 실시간으로 뭐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에세이 같은 걸 써 본 적은 있지만 여행의 전부를 남긴 기록은 확실히 없습니다.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펜시브에 넣을 수 있는 은색 실뭉치를 만들어야겠습니다. 언제든지 들여다볼 수 있게요.


사가 여행은 도피였습니다. 저는 편입생이었고 학교와 학과를 전부 바꿨습니다. 자연계열에서 사회과학계열로 옮겼고, 전공 지식이 전무한 채로 3학년부터 시작하려니 꽤 힘들더라구요. 학교 가는 날은 하루에 3시간 정도 잤습니다. 안 가는 날도 과제에 치여 살고 있었죠. 이대로는 못 살겠다! 싶어서 그 주에 떠나는 비행기표를 예매했습니다. 화수목만 학교에 나가는 주 3일 시간표를 만들어둔 터라 금토일월 3박 4일 여행을 떠났습니다.


지금 이 글도 도피성에 가깝습니다. 실업급여 수급기간은 끝나가는데 아직 취업은 못했습니다. 자소서 쓰기도 지쳤고 면접 준비는 더 싫습니다. 가끔은 자발적 글쓰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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