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산책
길조인가?
마당 딸린 집에서 사는 것이 로망이었던 우리 부부. 작년 여름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오래된 구옥을 리모델링해 깔끔한 단층집을 마련했다.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고 우리 집 강아지 또복이도 행복해하는 모습에 이사오길 잘했구나 하는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좋은 일 뒤에는 가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곤 한다.
크리스마스이브, 아기 예수님이 오시는 날. 우리 집에 뜻 하지 않은 '변기 막힘'님이 함께 오셨다. 어찌어찌 소변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큰 녀석'을 내리는 순간, 마당에 있는 수돗가로 분노(또는 분뇨)의 역류가 시작되었다.
'아~~' 깊은 탄식이 터져 나온다.
아무래도 정화조 문제인 거 같아 관련 업체에 아내가 연락해보니 한 달을 기다리라 한다. 제주도는 권역별로 정화조 청소하는 업체가 한 두 업체 밖에 없어 대기하고 있는 집들이 많단다.
한 달...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한두 번도 아니지, 큰 볼일 볼 때마다 저 멀리 공중화장실까지 매번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근처 사는 '세진'동상에게 연락하니 정화조 사진을 한 번 보내라고 한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세진 동상이 사진을 보더니 애월(제주시 소재)로 마실 나온 김에 우리 집에 잠시 들른다 한다. 잠시 후 도착한 세진 옆에는 와이프 연숙 씨와 연숙 씨의 친한 언니도 함께 였다. '고성'사는 그 누님은 이 전에 자기도 정화조가 막혀 고생했더랬는데 친한 업체 사장님이 거의 거져로 고쳐주었다고 한다.
행동력 최고인 그 누님은 바로 업체 사장님에게 전화해 사진을 보여준다. 사진을 본 업체 사장님 왈, 자기가 갈 수도 있지만 사진을 보니 우선 긴 호스를 정화조 관에 밀어 넣고 물을 틀어보라 한다. 그 누님은 손수 팔을 걷어붙이고 자기 일처럼 호스를 넣어다 뺏다 하신다.
'아~ 이 분들은 도대체....'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친다.
여러 번 반복해보았지만 큰 소득이 없자 고성 누님은 집에 있는 고압분사기를 가져오겠다 한다. 만류해보았지만 막무가내... 세진 동상과 함께 누님이 고압분사기를 가지러 간 사이, 하수관 구멍에 꽂혀 있던 호수를 있는 있는 힘껏 밀어 넣고 또 밀어 넣어 보았다.
순간, '툭'하더니 '솨아~~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변물'이 정화조 구멍 아래로 흘러내린다. 난생처음 그렇게 많은 양의 '변물'은 처음 보았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그 물을 보고 있자니 소화불량 때문에 답답했던 속이 '펑' 뚫리는 기분이었다. 근래에 이와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껴본 적은 없었던 듯하다.
뚫렸다는 소식 후 다시 돌아온 세진 일행은 너무나 잘 됐다고 내일처럼 좋아해 준다. 열일 제쳐놓고 와준 것도, 여러 가지로 수소문해서 알려준 것도 고마운데 고성 누님은 덕담까지 하나 해주신다.
"연초에 똥 보면 복 받아~~"
그래 이건 예삿일은 아니지. 이건 분명 길조여 길조...라고 뇌까리며 연신 떠 오르는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 부부는 감사의 마음으로 애월 포구에 있는 '갈치 집'에서 식사를 대접했다. 힘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니 이 또한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골 살면 주변 지인들의 도움 없이는 살기 어렵다던데 그 말이 사실인 듯하다. 멀리 있는 친척도 이웃사촌 만은 못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며 묵혀 있던 'X'들을 그날 멀리멀리 보내드리었다.
년 초에 죄송합니다. 기쁜 마음에 기록 남겨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