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켜면 비슷한 업체 광고가 연달아 나오는 특이한 상황에 직면한다. 인기 드라마, 프로그램이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들은 명품(또는 사치품)을 취급하는 e커머스 플랫폼들이다. 사실 명품(또는 사치품) 유통은 없던 시장이 아니다. 백화점, 면세점, 해외여행 현지 쇼핑 등 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이미 활성화된 비즈니스 영역이다. 그런 어느 날 갑자기 무슨 돈이 생겼는지 돈을 펑펑 쓰며 고객 모으기에 혈안이다. 도대체 이들 플랫폼들은 어떻게 성장했으며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e커머스 플랫폼 성공의 조건
지금까지 살아남은 상당수 플랫폼 기업들은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단점을 파고들어 성공해왔다. 쿠팡, 마켓컬리 등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크게 성장한 플랫폼 기업들은 *네트워크 효과를 위해 초기 대규모 마케팅 비용을 지출한다. 일단 사용자를 늘리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 하에 TV광고, 쿠폰 살포 등 할 수 있는 모든 마케팅 수단을 동원한다. 하지만 '중고나라'의 경우처럼 사용자가 많다고 시장을 장악하고 No.1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당근마켓처럼 플랫폼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야 하고 타 플랫폼 대비 경쟁력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다.
* 네트워크 효과 : 일단 어떤 상품에 대한 수요가 형성되면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상품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
플랫폼 성공의 원칙 - 에어비앤비
출처 : 에어비앤비 홈페이지
에어비앤비는 '어떻게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서 잠을 자지' 하는 불안을 극복한 플랫폼이다. 백만 달러 이상의 책임보험과 손해보상, 청소 발생에 대한 보상, 반려동물로 인한 피해 보상 등 에어비앤비에는 다양한 위험으로부터 사용자와 판매자를 보호해주는 수단이 존재한다. 특히나 판매자뿐 아니라 사용자에 대한 리뷰까지 제공해 방을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 모두의 신뢰를 얻었던 것이 성공의 주된 요인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보는 거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운 에어비앤비는 관광 개념의 여행에서 체험 중심의 여행으로의 변화를 촉발하면서 엄청난 성장을 이룬다. 에어비앤비는 '남는 방을 공유해볼까'라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고객 중심의 이커머스 플랫폼 위에 신뢰를 덧입혀 성공적인 플랫폼 기업이 된 대표적인 케이스다.
기본은 신뢰
출처 : 머스트잇 페이스북
명품 카테고리에 등장한 신규 e커머스 플랫폼들도 역시나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10년 전 만해도 '누가 럭셔리 제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해?' 했다. 결제, 배송, 상품(정품 여부)에 대한 불안감은 넘어야 할 큰 허들이었다. 그러던 중 12년 전 '머스트잇' 이란 플랫폼이 폭풍우 치는 파도에 뛰어든 '첫 번째 펭귄'이 된다.
머스트잇도 플랫폼에 대한 신뢰 구축에 우선 집중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200% 환불 보장 제도다. 머스트잇의 온라인 사업구조는 누구나 입점해 판매 가능한 '명품 오픈마켓'이다. 판매자가 '머스트잇'이 아니므로 제품에 대한 책임을 '머스트잇'이 질 의무는 없다. 하지만 플랫폼의 신뢰와 고객 편의를 위해 정품이 아니면 200% 환불을 대신해주는 파격적인 정책으로 그들은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또 다른 '쩐의 전쟁'이 시작되다
출처 : 발란 SNS
최근에 김혜수, 김희애, 조인성을 앞세운 명품 플랫폼들의 광고 경쟁이 볼만하다. 이들이 이렇게 제 살을 깎아 홍보 전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코로나로 인한 대면 판매가 온라인 판매로 대거 이동하면서 그동안 사치품 소비에 무관심했던 젊은 세대들의 관심이 명품에 집중된 것이 하나의 촉발 원인이 되었다.
명품 카테고리는 패션 영역 중 마진율이 높기로 유명하다. 재고부담도 타 패션 상품에 비해 덜하다. 말하자면 돈이 되는 사업이다. 한국은 세계 7위의 사치품 소비국가다. 과시적 소비에 있어서는 그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그런 부모들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이제 새로운 명품 소비층이 되고 있다.
출처 : 트렌비 홈페이지
같은 명품을 소비하지만 지금의 MZ 세대는 윗세대의 소비행태와는 그 성격이 좀 다르다. 부유함을 상징으로 상하를 구분하려던 과거와는 달리 개성을 표출하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는 '플렉스'가 요즘 젊은 세대의 명품 소비 트렌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들이 가지지 못한 제품을 소유할 수 있는 '득템력'이다.
최근 성장한 명품 플랫폼들은 바로 이런 트렌드에 재빠르게 대응해 경쟁력을 키워왔다.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찾아보기 힘든 희귀템, 머스트 아이템을 해외 홀세일러나 브랜드로부터 직접 공수하는 전략이 그것이다. 이를 두고 이들 업체는 '산지직송'이라는 표현을 쓰며 남다른 차별화 포인트로 활용하고 있다.
셀럽들도 명품을 사기 위해 백화점, 공항 면세점에서 줄을 서지만 원하는 제품을 구매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 오프라인 유통의 맹점이다. 이를 파고든 온라인 명품 플랫폼들은 취급하는 브랜드만 1600개 이상, 상품 수는 백만 개를 넘어선다고 한다. 잘만 검색한다면 다른 이와는 차별화된 나만의 명품을 득템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 플랫폼이 판매하는 명품의 가격은 결코 오프라인과 비교에 싸지 않다고 한다. 명품은 가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희소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 없는 상품을 살 수 있는데 가격, 그 까이꺼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N차 신상' 트렌드, 명품 업계에도 상륙
출처 : 겟꿀 (http://www.getggul.com) 홈페이지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 불어 닥친 '리셀 열풍'도 명품 플랫폼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다시 팔고 사는 명품? 이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지갑이 두둑하지 않은 젊은이들은 더 이상 새것에만 열광하지 않는다. 희소가치만 높다면 그에 걸맞은 높은 금액을 지불하고, 소셜미디어에 노출하고 재판매하는 것이 지금의 MZ세대인 것이다.
혹자는 공유경제 트렌드에 따라 리셀 시장이 성장한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름을 보여줘야만 하는 '과시적 소비'와 이를 자랑할 수 있게 해주는 SNS가 성장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패션 대륙에 지출하고픈 거대 플랫폼 네이버, 카카오
출처 : 지그재그 홈페이지
명품 플랫폼들이 지금과 같이 대규모 TV 광고에 홍보비를 펑펑 쓸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네이버와 카카오 때문이다. 머스트잇은 카카오가... 김혜수가 광고하는 발란은 네이버가 투자한 플랫폼이다. 카카오는 이미 티파니, 샤넬 등의 고가 명품 브랜드를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입점시켰고 여성 쇼핑 플랫폼으로 유명한 '지그재그'를 인수하기도 했다.
네이버 또한 네이버 쇼핑에 명품 화장품 전용 메뉴를 개설하는 등 명품 브랜드 잡기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발란에 투자한 것이다. 결국 그 어느 때보다 명품을 선호하는 사회분위기와 대규모 투자자금이 맞물려 지금의 소모성 마케팅 전쟁이 펼쳐지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왜 e커머스 세계의 출혈경쟁은 끊임없이 반복되는가?
출처 : 픽사 베이
명품 플랫폼 시장은 그동안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급격한 성장을 이뤄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에는 의문이다. 거시적으로 미국의 *테이퍼링이 가속화되고 자산 가격의 거품이 축소되면 사람들은 소비를 줄일 가능성이 커진다. 코로나로 큰 흐름에 변동이 생겼지만 앞으로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의 시대가 다시 도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테이퍼링 : 정부가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취했던 완화의 규모를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점진적으로 축소해 나가는 전략
더욱이 실용적인 소비 습관이나 과소비를 지양하는 지속 가능한 패션 트렌드가 광범위하게 젊은 세대에 퍼진다면 과시적 소비가 비난의 대상이 될 소지도 다분하다. 단기적으로는 코로나 펜데믹 상황이 종료되어 해외여행이 다시 일상화된다면 기반이 탄탄한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온라인 플랫폼의 장점을 수용해 다시 판도를 뒤집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성장하는 비즈니스이지만 향후 경제상황과 시장 현황에 따라 얼마든지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각의 플랫폼 간 차별화가 명확하지 않다면 우리가 그간 보아왔던 또 다른 *e커머스 삼국지가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 1차 삼국지 : 오픈마켓 3사 (이베이코리아, 11번가, 옥션), 2차 삼국지 : 소셜커머스 3사 (쿠팡, 위메프, 티몬)
명품 비즈니스는 '승차감보다 하차감이 중요' 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국 고객의 불안감, 고객의 니즈, 고객의 욕구를 깊이 연구하고 이에 부응하는 명품 플랫폼이 살아남을 것이다. 돈 들여 마케팅하는 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차별화된 콘텐츠 경쟁력, 서비스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명품 산지직송'은 신세계도 잘할 수 있고 GS홈쇼핑도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최근의 명품 플랫폼 간 치열한 광고비 경쟁을 보며 하루빨리 이들 업체가 그들 만의 '해자'를 만들어 또 다른 e커머스 성공모델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