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화 살롱

『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조용히 사라지는 존재의 마지막 외침

by Funny Sunny

대학 동기들과 한 달에 한 번 독서 토론회를 갖는데, 4월의 도서는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2005년에 발표한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였다.

독서 후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여운이 여전히 마음을 맴돌았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정리하며, 내 안의 질문들에 다시 천천히 말을 걸어보고자 한다.


침묵 속에서 움트는 질문

우리는 어디서부터 인간일까. 인간의 조건은 무엇이고, 사랑과 고통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나는 『나를 보내지 마』를 읽으며 여러 번 멈춰 섰다. 숨을 고르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문장 하나, 표정 하나, 말하지 않은 여백 속에 스며 있는 질문들이 내 안의 오래된 감각들을 흔들었다. 단지 소설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내 안의 윤리, 과학, 정체성, 기억, 그리고 사랑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독서 중, 어떤 책은 나의 생각을 단단히 흔들어놓는데, 『나를 보내지 마』는 바로 그런 책이었다.


도서 내용 요약

『나를 보내지 마』는 장기 기증을 위해 태어난 복제 인간들의 조용하고 슬픈 삶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캐시는 헤일셤(Hailsham)이라는 외딴 기숙학교에서 자라며 친구 토미, 루스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낸다. 그곳은 아이들에게 인간적인 삶을 교육하며, 미술과 글쓰기를 장려하지만, 그 배후에는 아이들이 결국 '기증자'로서 장기를 내주게 될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성인이 된 캐시는 간병인이 되고, 친구들은 차례로 기증자가 되어 점점 몸이 망가져 간다. 루스는 토미와 캐시 사이를 갈라놓은 과거를 후회하며 죽음을 맞고, 토미와 캐시는 짧은 시간이나마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들은 기증을 연기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하지만, 그 희망은 부질없었다. 결국 토미는 세 번째 기증 후 사망하고, 캐시는 그를 떠나보낸 뒤 묵묵히 자신도 기증자가 될 운명을 받아들인다.


영화 『아일랜드』와의 비교 – 같은 뿌리, 다른 열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영화 『아일랜드(The Island, 2005년, 공교롭게도 책과 같은 해 개봉)』가 떠올랐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이 영화는 복제 인간을 다룬 또 다른 이야기다. 그러나 그 접근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아일랜드』는 액션 중심의 서사다. 주인공 링컨(이완 맥그리거)과 조던(스칼렛 요한슨)은 자신들이 장기 기증용 복제 인간이란 진실을 깨닫고 시스템에 저항하며 탈출한다. 빠른 편집, 박진감 넘치는 추격, 정의와 자유에 대한 외침. 이 영화는 대중적인 쾌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나를 보내지 마』는 다르다. 캐시와 토미, 루스는 운명을 거스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애틋하게 살아간다. 도망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사랑하고, 그 안에서 사라진다.

나는 이 두 작품을 통해 하나의 질문에 도달했다. “과연 인간성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싸워서 인간이 되는가, 아니면 사랑하고 기억함으로써 인간이 되는가?

『아일랜드』는 탈출을, 『나를 보내지 마』는 감내를 선택한다. 나는 이시구로의 조용한 절규에 더 오래 머물렀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눈빛에 오래 머무는 일과도 같다. 말보다는 눈물이 많은 이야기다.


페미니즘 – 여성, 돌봄, 그리고 조용한 저항

『나를 보내지 마』는 겉으로 보기에 페미니즘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간병인 캐시라는 인물에 집중했다. 캐시는 돌보는 사람이다. 말없이, 차분히, 그리고 다정하게.

돌봄은 사회에서 가장 저평가되는 노동 중 하나다. 그리고 대부분 여성들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 캐시는 복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복제인간 기증자들을 정성껏 간병한다. 그 과정에서 분노보다 공감, 투쟁보다 수용이 드러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돌봄이라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강한 저항인지 새삼 느꼈다. 억압적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가끔은 투쟁보다 더 무겁고 조용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인간다움을 지켜낸다. 캐시는 바로 그런 존재였다. 그녀는 말하지 않지만, 끝까지 사랑한다. 끝까지 돌본다.


기억과 사랑이 일으킨 윤리적 파문 – 나에게 온 질문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수많은 질문을 만났다. 그리고 일기장에 이렇게 메모했다:

기억/의식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프로그램 가능한 감정일까?

우리는 왜 어떤 생명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가?

이 질문들은 단지 소설 속 설정에 대한 의문이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로봇 윤리 등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특히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개발하는 입장에서, 나는 이 질문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도구'로 만들어진 존재가 자의식을 가질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캐시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답게 살고자 했다.

이건 복제 인간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인간의 이야기였다.


요즘 쓰고 있는 소설 속 인간성

나는 요즘 소설을 쓰고 있다. 디지털 정보, 기억, 정체성, 그리고 존재론적 질문들이 중심에 있는 이야기다. 『나를 보내지 마』는 쓰고 있는 소설 세계관의 철학적 기반을 더 단단히 해주었다.

이시구로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들려준다. 말하지 않아도 울리는 문장,

그것이 바로 『나를 보내지 마』이다.


에필로그 – “나를 보내지 마”의 진짜 의미

제목인 ‘나를 보내지 마’는 단순한 말이 아니다. 그것은 간절한 부탁이며,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외침이다. ‘나를 버리지 마. 잊지 마. 그냥 도구로 보지 마.’

나는 이 제목을 곱씹으며, 우리가 얼마나 많은 존재를 너무 쉽게 ‘보내왔는지’ 떠올렸다. 노동자, 이민자, 여성, 약자, 기술의 산물들. 그 모든 존재들이 내게 말을 건다. “나를 보내지 마.”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실수해도, 부족해도, 흔들려도 — 나를 보내지 마.

『나를 보내지 마』는 소리 없는 눈물 같은 책이다. 마이클 베이의 『아일랜드』가 액션의 질주라면, 이 책은 감정의 침잠이다. 나는 두 작품을 모두 좋아한다. 하지만 내 안에 더 오래 남은 것은 이시구로의 조용한 목소리다.

삶의 신산스러운 순간에 갇힌 느낌일 때, 이 책을 펴보시길.

조용한 질문이, 당신의 마음 어딘가를 부드럽게 두드릴지도 모른다.

2010년 개봉한, 소설의 잔잔한 비명을 담아낸 영화 'Never Let Me Go'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영화 <승부>를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