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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구 Nov 26. 2019

타운하우스 공사 중 해야 했던 일(1)

쉰다섯, 마당이 생겼습니다 #10

현대인에게는 모두 각자의 자리가 있다. 모두가 모든 일을 할 수 없기에 일을 소분하여 각자의 역할을 고정하는 방식으로 사회는 발전되어 왔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역할을 바쁘게 해내고, 자신이 다 할 수 없는 여타의 일은 그 일을 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돈'을 지불하여 대신 처리한다. 누군가가 그렇게 키워낸 농축산물을 사 먹고, 만들어낸 차를 끌고, 지어낸 집에 몸을 뉘우며 우리는 살아간다.


이 심플한 원리가 그처럼 단순하게 돌아간다면 우리네 삶은 얼마나 평안할까. 불행히도 이 세상엔 자본을 지불하고도 그 대가를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일이 수없이 발생한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아는데도 엄마는 꽤나 자본의 원리를 신뢰하는 쪽이었다. 수많은 소규모 타운하우스 공사들이 시작하지도 못하거나, 시작했다가도 엎어지는 모습들을 보면서도 엄마가 선택한 집은 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결론 먼저 말하자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렇게 저렇게 속은 많이 썩였지만 험난한 타운하우스 시장에서 거의 성공에 가깝다면 가까웠지 잘못된 선택이랄 순 없었다. 그럼에도 집을 짓는 모든 과정은 엄마에게 투쟁의 연속이었다.


1. 기다림

처음엔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마음은 애달파 1, 2주가 멀다 하고 현장에 방문했지만 공사는 더디고 더뎠다. 분양이 완료되지 않아도 공사는 차질 없이 진행한다더니 계약 후 몇 달이 흘러 분양이 거의 다 완료될 때까지 땅은 뻘건 흙밭이었고 뭔가 작업이 진행되는가 싶으면 또 한참 깜깜무소식이었다. 입주 일자를 계약으로부터 1년 3개월 후로 잡아뒀는데, 그렇게 몇 달이 지나버리니 불안함이 자꾸만 치밀었다. 그렇지만 원래 집은 터 닦기가 가장 오래 걸리고 집이 올라가려고만 하면 순식간이라는 주변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가 보다 마음을 다스렸다. 그래도 공사가 아주 멈추지 않고 조금씩이나마 진행되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2. 인간 CCTV

겨우 집 터가 잡히고 도면에서만 봤던 그 모양이 눈 앞에 생겼을 때는 감격에 겨운 심정이었다. 이 즈음 이미 중요한 설계 변경 등은 협의가 거의 마무리되어 큰 걱정이 없었고 실질적인 건축에 대해선 신경 쓸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신경 쓸래야 뭘 어떻게 써야 할지 지식이 없기도 했고, 전문가들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두 아이를 모두 키운 엄마는 시간이 많았다. 집이 올라가기 시작하니 내 아이의 첫 뒤집기, '엄마',  걸음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자주 현장을 찾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 금지옥엽 같은 아이가 젖병을 귓구멍에 꽂고 있거나, 구멍 숭숭 난 옷을 심지어 거꾸로 뒤집어 입은 꼴인 경우가 많았다.


안으로 깊게 내달라고 했던 주자창을 옆으로 길게 내거나, 창문을 내기로 한 자리가 시멘트로 꽉 막혀있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파트처럼 모든 집이 다 똑같은 것이 아니기에 각 집마다 조금씩 설계가 다른데 이것이 제대로 하달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실수가 반복됐다. 거기다가 무엇이든 가장 싼 자재로 처리하려 하니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뒤통수를 맞을 것만 같았다. 상세한 브랜드 모델명까지 협의가 끝난 자재도 나중에 보면 아무 이유 없이 다른 브랜드 자재로 작업이 진행되어버렸거나, 항의하며 바꾸어 달라고 하면 안 된다고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직접 주문을 해서라도 바꾸겠다고 개인 비용을 지출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일주일, 이주일이 또 쉬이 가버렸다. 집만 올라가기 시작하면 쑥쑥이라더니! 그 말 한 사람을 찾아가 붙잡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3. 사회생활

돌아가는 모양새가 이러니 도저히 믿고 일을 맡기기가 힘들어졌다. 처음부터 모르면 몰랐지 알고서는 손 놓고 있을 수가 없어 점점 현장에 방문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거의 매일 사무실에 출근하다시피 드나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계약자 중에 30, 40대로 비교적 젊은 층이 많아서인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바로 현장으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주 보다 보니 사이도 더 가까워지고 각자 고민이나 문제를 터놓기도 했지만 모종의 신경전도 있었다.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자인 현장 소장을 만나 문의하고 해결책을 논의해야 하는데, 공사가 한창일 때는 아무리 기다려도 소장 얼굴 한번 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 번 소장이 사무실에 방문하면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각자 문제가 시급하다 보니 먼저 이야기를 꺼내려고 서로 은근히 신경을 세우기도 했다. 도대체 이 돈을 내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억울하고 서글프기까지 한 마음이 울컥하다가도, 일단은 집을 잘 짓는 게 우선이라고 마음을 단디 먹은 엄마가 세운 방책은 참으로 엄마다웠다.


먹을 것 열심히 먹이기. 아침에 사무실에 방문할 때는 다들 새벽부터 공사를 시작하니 지쳤겠다 싶어 커피에 빵이나 과자를 챙겨가서 돌렸다. 점심 이후엔 또 밥 먹고 나른하니 힘들지 않겠나 싶어 아이스커피에 작업 중에도 쉽게 꺼내먹을 수 있는 사탕이나 초콜릿을 사 갔다. 역시 사람 마음은 뱃속에 달린 것일까. 처음엔 자꾸 찾아와서 컴플레인 건다고 영 달갑지 않아 하던 사무실 직원들이며 공사장 인부들까지 점점 인사하는 낯빛에 반가움이 감돌았다. 그렇게 인사하고, 커피 마시며 가족들 이야기도 가볍게 나누다 보니 각 부분 담당자가 누구인지도 알게 되고, 소장을 만나지 않아도 사소한 것들을 묻고 고쳐나갈 수 있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여기서 모든 게 아름답게 끝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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