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적긁적, 끄적끄적

by 푸르매



국민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운동권이였다.

그 때 여러 운동권 노래도 배우고, 학급책도 만들어 봤다.

20살 넘도록 갖고 있었는데 본가가 이사가면서 짐 정리를 할때 수많은 책들과 함께 버려졌다.

생각해 보니 참 귀한 학창시절의 보물인데 버려져서 마음이 안 좋다.

그 책에는 반 친구들이 글과, 그림 그리고 여러 활동들의 사진들도 들어가 있었고, 상록수와 터 등 운동권 노래들도 있었다. 1990년 초반이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대단하신 분이셨다.

그리고 국민학교 졸업하고 한 참 뒤에 선생님과 친했던 사촌오빠가 선생님의 소식을 전해줬는데,

구속되셨다고 들었다. 민주화가 덜 성숙했던 시절이였다.


어려운 살림이였는는데 내가 어렸을 때 누가 주신 동화책들이 있었다.

여러권이 있었는데 그 중에 안데르센과 그림형제의 동화들도 있었다.

책 표지는 빨간 헝겁이였고, 속지는 누런색인데 그림은 아주 더러 있었다.

책은 실로 엮여져 있었는데 나중에 책들이 너덜너덜해져 버리니 한두장씩 뜯겨져 나왔다.

그리고 국민학교 6학년때 새집으로 이사가면서 버려진 것 같다.


나보다 6살 정도 어린 외사촌네 놀러가면 책장에 빳빳하고 두꺼운 표지로 되어 있는 그림동화 전집이 있었다. 그럼 내 남동생과 나는 그 책들을 보느냐고 한참을 방에서 안 나왔다. 부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차피 내가 사는 집에는 책장도 없었고 그 책들을 읽었을 때는 이미 나이가 꽤 들었기에.

그리고 없는 살림에 내가 8살부터 아퍼서 우리 부모님은 항상 쪼들리셨다.

솔직히 내 남동생이 더 허약체질이였는데 큰병앞에 동생의 허약함은 위로 받을 수 없었다.

결국 남동생 중학교 때 처음으로 보약을 먹었는데 그때가 가장 살이 올랐던 해였다.


중학생이 되었는데 방학숙제가 독서였다. 추천도서들이 있었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책을 사봤다.

앵무새 죽이기가 내가 살면서 처음 샀던 책이다. 물론 부모님이 주신 용돈이였다.

그 책을 단숨에 읽었다. 만화책 이후 내가 열중해서 책을 읽었던 적이 없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뒤로 기억나는 게 학교앞 작은 서점에서 내가 처음으로 골라서 산 책이 1등 받은 책이라는 광고에 홀려 "새의 선물" 샀다.

그렇게 은희경작가의 팬이 되었다.


책까지 읽기 시작하니, 학교에서 내준 숙제나 백일장에 제출하는 글에 허세가 붙었다.

심오 한 척과, 맞지도 않는 각종 관용문을 붙이기 시작했고, 그 시절 나의 글은 목적지가 없었다.

어수선했고, 지금도 어수선하다.

어찌되었든 쓰지 못하면 읽어 내기라고 하듯, 책들을 무섭게 읽어 나갔다.

베스트셀러부터 고전까지 소설들 위주로. 그런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금명이가 싸구려 신발을 사 모으듯, 나는 책을 꼭 사야만 했고, 아주 소중하게 모시기 시작했다.


결혼 전 남편과 나는 독서가 공통취미였다.

그런데 결혼 후 집은 작고 두사람의 살림이 합쳐지고 주방살림이나 공동살림들이 많아지니,

나는 독립 후 꾸역꾸역 다 짊어지고 다닌 책들을 모두 본가에 내려 보냈다.

윤동주시집과 하루키 소설 몇권만 빼고. 그리고 본가가 또 이사를 하면서 국민학교 4학년 때 만든 학급책과 함께 일부는 버려지고 창고행이 되다가 결국 관리가 안되서 버렸다.

그리고 우리부부는 더 이상 독서가 취미가 아니다. 독서가 나간 자리에는 게임과 해외여행이 파고 들었다.

더이상 애지중지 하며 모으는게 없어졌다.


헌데, 자꾸 손가락이 근질거린다.

내 속에 품은 말들을 쓰고 싶어진다.


이런날에는 이렇게, 저런날에는 저렇게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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