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쓰는 편지 9

어째 그건 살아남았을까

by 내복과 털양말

안녕,


가끔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지. 실제로 오래전의 일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그 과거가 현재와 너무도 달라 마치 전생처럼 느껴지는 일 말이야.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이 생활했던 기억이나 장창익 화가님과 사소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작이 되었던 블로그 같은 것. 그분께 나중에 작가가 되어 책이 나오면 꼭 보내드리겠다는 약속을 했던 치기 어린 이십 대.(그땐 글 써서 돈 버는 생활이 가능할 줄 알았지.) 동굴 같은 북향의 자취방에서 장창익 화가님이 보내주신 여수 갓김치를 받고 감동하던 이십 대. 새해가 왔다고 한지에 그림을 그려 보내오신 인사에 눈을 뗄 수 없던 이십 대.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다가 인스타그램에서 다시 장창익 화가님을 찾아내 팔로우하며 그분의 그림을 보고 감격스러워했지. 언젠가 돈을 벌어 작업실을 얻으면 작가님 작품 중에서 벽을 다 덮을 정도로 큰 작품을 사서 걸어놓을 생각을 했어. 그러면서 너는 너의 터널을 지나오느라 나름의 애를 썼지. 지나오고 정신을 차려보니 장창익 화가님은 너무나 소식이 없으셨지. 어떻게 된 일인지 찾아보았고 넌 잠시 들이쉰 숨을 내뱉지 못했어. 돌아가셨어. 가망 없는 사랑에 몸무림 치던 이십 대를 응원해 주셨던 분이 돌아가셨더라.


만나 뵌 적 없어. 부암동에서였나? 전시회 하신다고 할 때 약속드렸던 책이 없어 부끄러워 뵐 자신이 없어서 전시회에 가질 못했어. 따지고 보면 별 사이도 아니지. 그런데 너무 슬프더라고.


잊히지 않고 문득 그분 그림이 떠오르면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또 슬퍼지지. 전생 같았던 그 시절의 그 온기가 생각나. 나 아직도 글이라곤 습작만 찌그리고, 화가님 그림을 살만한 돈도 못 벌었는데.


눈물 나네..

뭣도 모르고 아저씨라고 부르던 장창익 화가님이 주셨던 온기가 남아있지 않아? 전생처럼 아득한데 어째 그건 살아남았을까. 그분 그림을 보니 남편도 아들도 잠든 혼자만의 시간에 코가 빨개지도록 운다.






또 편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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