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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rollope Apr 16. 2023

꽃길만 걷게 해줄게


2016년 '프로듀스 101'의 첫 번째 순위 발표식에서 김세정이 1위에 올랐습니다. 그 때 김세정은 감동적인 순간에 엄마와 오빠에게 "앞으로는 꽃길만 걷게 해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꽃길을 걷는다"라는 표현이 탄생했습니다. 


이후 빅뱅, BTS와 같은 유명 가수들이 꽃길이란 말을 사용해서 노래를 만들었고, 김세정 자신도 "꽃길"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꽃길을 걷는다"는 아마도, 김세정이 이 표현을 처음 사용했을 것입니다. 2016년의 우리에게 이 표현이 낯설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그 전에는 이와 같은 표현이 없었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녀의 어머니와 TV로 그것을 지켜보던 우리 모두는 김세정이 꽃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의미를 즉시 이해했습니다. 왜일까요? 


이것을 반대로 생각해봅시다. 김세정은 1996년생이며, 그녀의 어머니는 대략적으로 1976년 이전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만약 그 시절의 대한민국에서 김세정이 "꽃길을 걷는다"라고 했다면, 그 때의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이해했을까요? 먼저 이 “꽃길을 걷는다”는 말이 2016년에 처음 등장했다는 말이 진짜인지부터 확인해봅시다. 그렇다면 1976년의 누군가에게 이 "꽃길을 걷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였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꽃길을 걷는다는 말은 문맥을 통해 봤을 때 이것은 1) 행복한 삶을 주겠다 2) 최고의 대접을 해주겠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꽃길을 걷는다는 말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라는 시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핮지만 당신의 발 앞에 꽃을 깔아준다는 표현은 그 사람의 앞길을 축복해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꽃은 화자의 슬픔을 드러내는 상징입니다. 꽃잎을 밟는 것은 곧 나의 마음을 밟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내 마음은 마치 짓밟히는 아프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꽃잎을 밟으면서 나의 마음을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누군가를 축복한다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영어에서도 꽃길을 걷는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결혼식에서 신랑신부가 행진할 때 그 앞에 꽃잎을 뿌리는 의식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꽃잎을 뿌린다는 행위가 중심에 오지는 않습니다. “회랑을 걷는다” 또는 “복도를 걷는다”는 표현이 있을 뿐입니다.


일본어에서 꽃길(花道)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만 역시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이 때의 꽃길은 화려한 퇴장, 화려한 이별을 의미합니다. 이 때의 꽃길은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지만, 이 단어는 ‘퇴장’ 이나 ‘이별’에 강조점이 주어집니다. 만약 어머니에게 일본어의 ‘꽃길’이란 의미로 했다면, 그건 무시무시한 패드립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여기에서 꽃길의 ‘화려함’은 과거, 지나온 것, 이별해야 할 무언가입니다. 2016년에 김세정이 얘기한 꽃길은 미래의 행복, 즉 미래의 것과 연결되는 개념입니다. 때문에 일본어의 꽃길과는 맞지 않습니다. 


중국어에서는 최근 꽃길을 걷는다(走花路)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알기로는2017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바이두 백과에서도 이 표현에 대한 항목에서 한국의 김세정이 사용한 이후 퍼지기 시작했다고 출처를 적고 있습니다. 


‘꽃길을 걷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앞날의 행복을 기원한다 또는 축복한다는 의미에서 꽃길이라는 단어를 이해한다면, 이것은 신랑신부의 앞에 꽃잎을 뿌리는 것이 꽃길의 의미에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버진 로드’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지만 이것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식 영어일 뿐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이런 표현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버진 로드’라는 말은 1990년대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2000년대 초 한국에 전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어떤 표현을 썼을까요.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검색을 해보면 과거에는 ‘꽃길’이나 ‘주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976년의 사람에게 가서 “꽃길을 걷게 해주겠다”라고 말했다면, 이 사람이 나에게 청혼을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두번째 의미 ‘최고의 것’을 대접해주겠다는 의미로 생각해봅시다. 이 때의 꽃길은 무슨 의미일까요. 꽃이 주는 아름다움을 누리면서 걷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꽃길은 길가에 꽃이 핀 길을 걷는 것, 또는 꽃밭 가운데를 걸을 때 ‘꽃길을 걷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 1976년에는 꽃길이 있었을까요


여유와 여가는 경제가 발전한 뒤에야 등장합니다. 또 일제강점기와 6.25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꽃밭을 걷는다거나, 꽃이 길가에 나란히 핀 길을 걷는다는 것은 분명 사치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 전, 그러니까 조선시대에는 꽃을 즐기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꽃길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개념이라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도시 조경사업, 도시 녹화사업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의 일입니다. 이때부터 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길 옆에 화단을 조성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온 나라에 꽃이 가득해졌을 리가 없습니다. 또, 그것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개념이 되기 위해서는 또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꽃이 핀 길을 걸으면서 감상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여기에 도움이 될 뉴스가 하나 있습니다. 에버랜드의 전신인 자연농원이 1976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 비로소 사람들에게 꽃이 핀 풍경을 걷는 것이 여가의 의미로 간주되었을 것이고, 꽃길을 걷는다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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