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천사(白衣天使)

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 한장 생활칼럼

by Kimkihoon

오늘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 사회의 여성의 역할과 관심되는 직업 하나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하얀 옷은 천사의 빛처럼 우리에게 희망을 줄 것 같지만 정작 그녀의 옷은 짙은 회색 빛의 무명옷이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1910 영국의 간호사, 행정가)을 표현한 말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하얀 천사와는 실제로 거리가 먼 그녀는 유복한 가정의 공주님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회고한 이야기에서도 그녀는 17살이 되던 해에 인간의 고통과 병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의 곁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집안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이 당돌한 처녀는 총알이 빗발치는 크림전쟁(1853-1856)에 뛰어들게 된다.

사실 그녀는 우리가 아는 단순한 여인으로서의 간호사가 아니다. 남자들이 못하는 일을 하는 대신한 여성도 아니었다. 그러면 그녀는 대체 무슨 이유에서 백의 천사로 불리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인간으로서 그리고 개혁가로서 가부장적인 시대에 여성의 위치에서 사회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 극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사실 유쾌한 일보다 눈물을 머금으며 이를 악물고 도전한 일이 더 많은 사람이었다. 또한 행정적 처우를 개선하여 근본적인 간호학의 시초를 만든 인물이기도 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일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친다는 것은 이백 년 전 영국에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을 기린다는 것은 설령 그것이 좋은 의미라 하더라고 과장되거나 부풀려진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좀 더 드라마틱적이고 휴머니즘인 부분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팅게일의 인생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부분은 긴 인내와 성실함 그리고 신념의 가치 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간호사들의 대모처럼 추앙받는 그녀의 이름 한편에는 생명을 대하는 직업 신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헌신의 가치와 자긍심이다. 그래서 간호사들의 규율이 매우 엄격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어제 뉴스를 보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어느 간호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더욱 놀란 것은 그녀가 세상을 등진 이유가 바로 “태움 문화”라는 이유 때문이라고 해서 의아했다. 태움 문화가 머지? 그러나 막상 그 단어를 검색하고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영혼까지 태워 죽일 만큼의 엄청난 고통의 괴롭힘”

한국의 간호사들의 규율이 엄격한 것은 익히 들었지만 선후배 사이에서 얼마나 인격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고 관습이란 허울 아래 사랑을 나눠야 하는 간호사의 위치를 이렇게 슬프게 만들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알지 못하는 일은 고치기 어려우나 알고서도 고치지 못하면 그것은 스스로를 위태롭게 한다. 우리 사회의 좀 더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내가 아플 때 나를 위로하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 따뜻한 미소와 어머니 같은 관심으로 직업적 관계를 떠나 인간의 자애로움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간호사들에게 감사함 마음을 전하며 오늘 많은 여성들의 헌신에도 경의를 표한다.

2019년 3월 8일 화창한 봄의 가운데에서

사족: 좀 더 행복하고 유쾌한 글을 부탁하는 분들이 많다. 앞으로 노력을 해보겠지만 보이고 느끼는 것을 쓸 수밖에 없는 고백을 조금 들어주셨으면 한다. 청국장을 끓이는데 그 향기는 좀 더 세월을 두고 익숙해져야 깊은 맛이 있음을 느끼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