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 한 장 생활칼럼
“왜냐고 물으신다면 그냥이라고 말하겠어요.”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한 후배가 모처럼 내 집에 찾아왔다. 이런저런 이야기의 주제를 모색하다. 예술의 본질적인 질문이 오고 갔다. 무언가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서로의 생각이 다른 면 다를수록 심장은 빨라지고 톤은 올라가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치 이야기를 잘못하면 싸움이 나고 종교이야기를 잘못하면 구원받지 못한다. 인간이 만든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도 서로 다른 관점이 생기니 인간의 생각은 참으로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작가에게 이 작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냥 씩 웃고 만다. 있는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관람자의 몫이고 작가는 그 상상력과 여백을 두길 원한다. 특히 현대미술에는 그러한 투영성이 매우 강하다.
서양에서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 서양미술의 특징은 세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는 기록성 둘째는 아름다움 셋째는 기술이다. 그 이유는 서양의 유화는 대부분 종교화에서 발전했고 권력 있는 계층이 자신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려 했으며 그 기술을 가진 화가들은 기교적인 붓질로 먹고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참으로 영악한 동물이기에 사진기를 발명하여 인간을 기계와 경쟁하게 만들었다. 이에 인간들은 인상주의를 만들었으며 나중에는 추상주의 초현실주의 같은 기계와 다른 영역을 파고들었다. 그러다 보니 작가 개인의 생각과 개념이 중요해지고 사회 비판적이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철학적인 작품이 센세이션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중국의 아이웨이웨이(艾未未 애미미, 1957 ~ 출신의 건축가 겸 예술가 겸 독립 큐레이터)라는 예술가는 중국 정치와 사회를 부정하는 퍼포먼스를 하다. 중국 정부의 감시와 구타를 당해 전 세계 적으로 반체제인사의 대명사로 인정받게 되었다. 정작 중국 정부는 아이웨이웨이를 폭행 감금하여 이름값만 높여준 셈이다. 어찌 보면 아이웨이웨이 이런 것을 노리고 시쳇말로 미친놈 짓을 했는지도 모른다. 두렵지 아니한가? 두렵지 않다. 내가 믿는 신념이 옳다고 믿으면 어떠한 고난과 좌절도 이겨낼 수 있다. 이 것이 인간의 존엄성이며 예술가의 자존심이다.
일전에 스승님이 오셔서 중광(重光, 1934~2002 한국의 승려 화가,시인)의 일화를 이야기하신 적이 있다. 이 스님 예술가는 걸레스님으로도 유명한데 하두 많은 기행을 일삼아 종단에서도 파문된 경력이 있다. 스승님이 말씀하시길 중광은 꼭 둘이 있으면 멀쩡하다가 사람들이 모이면 입고 있던 옷을 찢는데 찢어도 꼭 젖꼭지 있는 데를 찢는다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기행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참으로 이상한 매력이 있다고 하셨다. 그도 그런 것이 예술의 영역에는 현실과 달리 표현의 자유가 좀 더 있는 것이 사실이다. 누드를 보면 외설인지 아닌지 상상하는 사람의 자유가 그 본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정상적이지 않은 무엇인가가 누군가에게는 개성이 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면하는 내용이 어떤 이에게는 상징적인 의미가 되는 예술은 그런 작용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고 논란이 되기도 한다.
무엇을 상상하듯 그 이상이다.
인간은 오늘도 예술작품을 한다. 먹고 싸고 싸우고 화해하고 갈구하고 고민하고 탐욕하고 슬퍼하며 용서하고 치유한다.
오늘의 칼럼은 한 가지 질문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당신은 어떤 작품인가요?
2019년 3월 5일 안개 자욱한 북경에서 김기훈 쓰다.
사족 : 하룻밤 재워준 그 후배는 방값은 했다. 오늘 칼럼의 소재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일단 대화와 토론으로 들이대고 보는 게 재미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