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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은 가식이 아니라, 진심의 다른 이름이다.

‘유난스럽다’는 말의 진짜 의미

by 김유난

우리는 그렇게까지 유난을 떨어야 한다.

왜냐면 "그렇게까지 하면 얻을 수 있다면 할 것인가?"라고 물어봤을 때 대부분 "얻을 수 있다면 하지"라고 대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취업 준비를 할 때

"나는 내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겠어. 그걸 알아주는 회 사는 날 뽑겠지!"

라고 하면서 면접 준비를 안 하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 거다.

같은 표현도 희망하는 업종에 맞는 단어와 표현을 골라 대답하는 연습을 할 것이고,

평소에 짓지 않던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표정을 연습할 거다.

그렇게 해서 취업을 할 수 있다면, 평소 내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서라도 면접에 합격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유난’과 ‘가식’을 혼동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유난은 진심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한 노력의 형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과하게 치장하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진심이 왜곡되지 않도록 다듬는 일이다.

상대를 감동시키고 싶다면 소통을 연습해야 하고,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내 오감에 민감해져야 하고 그것을 글에 담을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 진심이 전달되길 원한다면,

그만큼 더 섬세하게 표현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게 바로 ‘유난’이다.

유난스럽게 사는 사람은, 결국 자기 삶에 성실한 사람이다. 어설픈 자연스러움을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나’를 보여주려는 유난이 결국은 기회를 끌어온다.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해야 해?”라고 묻겠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얻을 수 있다면, 해야지.”


삶은 결국 유난을 떠는 사람에게 조금 더 친절하다.

최선을 다해 꾸미고, 연습하고, 다듬는 모든 순간이

결국 '나' 다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오늘도 유난을 떤다.

내 감정 하나, 표정 하나, 문장 하나, 관계 하나에도 신경을 쓴다. 순간순간의 페르소나에 100% 몰입하는 것이다.

그게 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고,

내가 내 모든 오감에 유난을 떠는 이유이다.



내 모든 오감에 유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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