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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퓨처플레이 FuturePlay Jul 15. 2022

레진코믹스 공동창업가, 지식∙교양 웹툰을 선택하기까지

노틸러스 이성업 대표의 이야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처럼,
오랜 시간 영향을 주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 노틸러스 이성업 대표의 이야기-


Entrepreneur in Residence. 우리말로 사내 창업가 제도입니다. 훌륭한 창업가와 액셀러레이터가 사내에서 함께 사업 모델을 완성해가는 건데요. 퓨처플레이 사내 창업가 프로그램으로 함께하며 멋진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있는 창업가가 있습니다. 바로 지식∙교양 웹툰 플랫폼 ‘이만배’를 개발하는 노틸러스입니다. 레진코믹스 공동창업가였던 이성업 대표는 레진 퇴사 후, 새로운 사업 모델을 고민하며 퓨처플레이와 함께하게 되었는데요. 그가 만들어가고 있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습니다.


Part1: 새로운 시작
“내가 하고 싶은 걸 명확히 정의하는 것, 저는 이게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Q.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어요. 


뉴욕에서 공부했어요. 자기 주도적이고 자유로운 수업 방식에 매번 놀라웠고 흥미로웠죠.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수업이 하나 있어요. 친한 선배가 꼭 들어보라며 추천했던 수업이었는데, 이상하게 수업 커리큘럼이 구체적으로 안내되어있지 않은 거예요. 반신반의하며 첫 수업에 들어갔어요. 교수님께서 딱 이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우리는 3주 뒤에 춤을 출 겁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춤을 준비해오세요.” 

3시간짜리 수업인데 딱 이 말씀만 하고 나가시는 거예요. 그때부터 멘붕이었어요. 당시의 저는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었거든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저를 대신해서 춤을 춰줄 수 있는 존재를 만들고 그 존재를 조작하는 ‘설치 미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도달했어요. 차이나타운에서 나풀거리는 천을 구매해 인형을 만들고, 바람을 낼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죠.

이 수업의 핵심 메시지는 ‘내가 생각하고 만들고자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에요.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가 중요하지, 그걸 어떻게 표현할지는 부차적인 문제인 거죠. 내가 하고 싶은 걸 명확히 정의하는 것, 저는 이게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Q. 미국에서 공부하며 느꼈던 교육관이 현재 노틸러스에도 많은 부분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학습자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디에 끌리는지를 명확히 알고 그에 맞춰서 학습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틸러스는 만화를 통해 가벼운 재미와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향후 교육 회사로 진화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내가 공부하고 싶은 걸 선택하고, 거기에 맞춰서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는 그 첫 번째 시작은 바로 지식에 대한 입문이에요. 그 지식에 대한 입문으로서 가장 적절한 미디어 중 하나가 만화, 웹툰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무언갈 배우기 위해서는 그 중간 과정이 너무 많이 소요되는 것 같아요. 비싼 학원에 다니거나 학위를 취득하는 방식으로요. 자신이 무엇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 어느 날 좌절과 아쉬움의 순간이 올 수 있어요. 저는 이러한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애정을 쏟아야 할 분야의 지식을 잘 찾고 공부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찾아내기 위한 방법으로서 만화가 훌륭한 수단인 거죠.


Q. 어린이가 아닌 성인을 타겟으로 한 교육 만화라니, 새로운 접근인 것 같아요.


어린이용 교육 콘텐츠는 제가 라인에 근무할 때부터 관심을 두고 있던 분야에요. 레진코믹스 퇴사 이후 다음 커리어 스텝을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카이스트 대학원 재학 시절부터 인연이 있었던 중희(퓨처플레이 류중희 대표)에게 어린이를 타겟으로 한 교육 콘텐츠 관련 창업 아이템을 이야기했죠. 


그런데 중희는 도리어 여러 가지 다른 가설을 제시해줬어요. 좋은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꼭 아동에게 집중할 필요는 없다고요. 자신이 아이를 키워보니, 초등학생과 대학생 사이에 어떤 정보를 습득하는 격차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고 말이죠. 대학생, 성인 수준으로 콘텐츠 타겟을 접근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셨어요. 그래서 일단 이 가설을 한 번 증명해보기로 했죠.


Q. 어떤 방법으로 가설을 검증하셨어요?


우선 지식∙교양 만화를 꾸준히 잘 만들고 계신 편집자분을 찾아가, 타겟하고 있는 집단이 누구인지 조사했는데요. 대학생 수준에 맞춰서 콘텐츠를 만들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아동에게까지 콘텐츠가 확산된다는 답변을 들었어요. 


2030 세대는 소셜 미디어에 본인들이 즐겨보는 콘텐츠를 열심히 공유해요. 이렇게 온라인상에서 콘텐츠가 바이럴이 되면, 자연스럽게 자녀를 양육하는 40대 집단에 전파되고, 이미 디지털 네이티브인 10대 후반 집단에까지 전달될 수 있는 거죠. 이는 바이럴적인 효과를 이용하는 마케팅 분야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인데요. 지식과 교양 콘텐츠 영역에서도 적용된다는 것을 확인했죠.


참고로 그 편집자분은 노틸러스 1번 크루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종훈님!


Part2: 핵 잠수함, 노틸러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처럼, 오랜 시간 영향을 주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Q. 노틸러스, 사명이 굉장히 멋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노틸러스는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의 작품 <해저 2만리>에 등장하는 잠수함 이름인데요. 제가 레진코믹스에 재직하던 시절, 회사의 조직문화와 잘 맞지 않아 심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노틸러스를 창업할 때 ‘좋은 조직문화 형성’에 대한 방법을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때 떠오른 게 잠수함 승무원의 조직문화였는데요. 어떻게 보면, 그들의 문화가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에 가장 최적화된 팀워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군가 부재할 때 나서서 함께 해결하고, 최종 목표 달성을 위해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조직문화, 노틸러스라는 이름에 그 의미를 담았습니다. 


핵잠수함 노틸러스

또 세계 최초 핵 잠수함의 이름이 노틸러스였어요. 대중을 상대로 한 흥행 콘텐츠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반면, 그 열기가 빠르게 식기 마련이에요. 마치 연료를 계속 넣어줘야 하는 고배기량 자동차와 같죠. 다만, 핵잠수함은 한 번 가동하면 거의 30년 동안 계속되잖아요. 바로 저희가 만들고자 하는 지식 콘텐츠와 결이 유사해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40년이 넘도록 사랑받았듯, 저희도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콘텐츠를 쌓아가고 싶어요.


Q. 교육 만화 플랫폼으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교육 회사를 지향하신다고 하셨는데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요?


노틸러스는 지식∙교양 분야의 웹툰을 제공하는 플랫폼 ‘이만배’를 개발 중에 있어요. 이만배는 ‘이걸 만화로 배워?’의 줄임말이에요. 내부에 계신 훌륭한 마케터께서 지어주신 이름이죠. 8월 론칭을 앞둔 플랫폼 이만배는 일반적인 웹툰 플랫폼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저희는 에듀테크, 즉 교육적인 요소를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을 심어나갈 계획이에요. 단순히 지식 전달자에만 머무르고 싶지 않아요. 이만배를 통해 콘텐츠를 보는 독자들의 머리속에 지식이 남았으면 좋겠어요. 독자들이 가진 지식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더 나아가 탐독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정보를 재미있게 제공해주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습니다. 


Q. 함께 노틸러스를 만들어가고 있는 동료들과는 어떤 식으로 일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노틸러스 팀원들 스스로가 지적인 성장을 느끼고 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대중들의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성장을 하지 못한다고 느끼면 안 되잖아요. 



그 방법의 하나로, 저희 슬랙 채널 닉네임 옆에 각자가 알고 싶어 하는 지식의 분야를 적고 있어요. <이름//분야> 이런 식으로요. 저는 인지심리학을 써놨고요. 어떤 분은 신화를 적었고, 또 어떤 분은 사기(현재 사기와 관련한 콘텐츠를 만들고 계십니다)를 적어두셨네요. 


Part3: 퓨처플레이 사내 창업가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면서 도전적인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Q. 사내 창업가 프로그램(Entrepreneur in Residence, 이하 EIR)을 통해 퓨처플레이와 아이디어 개발을 함께했습니다.


좋은 창업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사업적인 경험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창업가에게 EIR 프로그램은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스타트업에 대한 전문 지식과 경험, 그리고 풍부한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 액셀러레이터는 사내 창업가와 함께 계속해서 다양한 가설을 검증하고, 향후 계획을 구체화하는 데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던져주기 때문이에요. 물론 모든 과정의 최종 행동자, 결정권자는 창업가 본인이지만,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면서 여러 가지 관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EIR 프로그램이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Q. 퓨처플레이와 함께하며 가장 도움이 되었던 부분이 있다면요?



어떻게 보면 창업가는 굉장히 외로운 존재입니다. 특히 창업 초기에는 더 그래요. 외로운 상황임에도, EIR 프로그램을 리딩하는 담당 파트너분들로부터 객관적이고 도전적인 인사이트를 얻으니 좋은 자극이 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되기도 했고요. 좋은 파트너가 주변에 있느냐 없느냐가 창업 초기에는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사업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물적 자원의 지원을 넘어, 도전적인 인사이트 한 마디 한 마디가 외로움을 극복하는 힘이 되었죠. 


Part4: 불확실성을 이기는 힘
“고기를 포기하고 살아남을 것이냐, 아니면 죽음을 무릅쓰고 태풍과 맞설 것이냐”


Q. 지금까지 노틸러스를 이끌어오시면서 창업가로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요?

초기 스타트업의 주적은 ‘불확실성’이에요. 투자받았으니, 급성장을 이룰 것 같다가도 다시 힘들어지고, 또다시 성장의 기미가 보이는 일들의 연속이죠. 불확실성으로 인해 흔들리는 멘탈을 다잡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영화 퍼펙트스톰 중 (출처=네이버영화 스틸컷)

조지 클루니 주연의 <퍼펙트 스톰>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스타트업이 느끼는 불확실성을 시각적으로 정말 잘 표현한 영화에요. 영화의 주인공인 빌리 타인은 어선 ‘안드리아 게일 호’의 선장인데요. 어황이 늘 신통치 않아요. 빈 배로 돌아오는 거죠. 어느 날, 어장이 풍요롭다고 소문이 자자한 해안으로 진출해 정말 많은 수확을 거두는데요. 하필이면 그날이 역사상 가장 완벽한 거대 태풍이 몰려오는 날이었어요. 태풍을 피해 후퇴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얼음이 녹아 오늘 잡은 고기를 모두 버려야 하는 상황이에요. 자 이제 선장은 선택해야 합니다. 


고기를 포기하고 살아남을 것이냐, 아니면 죽음을 무릅쓰고 태풍과 맞설 것이냐. 
선장은 항해를 계속하기로 결심해요. 


결국 빌리 선장의 어선은 엄청난 타격을 받고 무너집니다. 영화 마지막에 카메라는 동시간대 다른 지역 상황을 보여주는데요. 초거대 화물선 하나가 태풍을 뚫고 지나가는데, 컨테이너 몇 개가 우르르 떨어지는 것 말고는 아무런 타격이 없죠. 이게 바로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차이입니다. 스타트업은 어느 정도 성장 곡선에 오르기 전까지는 늘 불확실성과 싸워야 해요. 


Q.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핵 잠수함 노틸러스 선장으로 도전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있다면요?


세상의 창업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면 엄청나게 스케일업이 가능하고 많은 돈을 벌어 세상을 바꿀 수 있어!’, 그리고 ‘죽기 전에 이걸로 창업하지 않으면 무덤에 편하게 눕지 못할 거야!’ 두 가지로요. 저는 후자입니다. 어떤 부류의 사람이 창업가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지는 알 수 없어요. 어차피 스타트업은 높은 확률로 실패하거든요. 이왕 실패할 거면 그냥 내가 정말 사랑하는 걸 하다가 실패하는 걸 선택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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