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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아르 Nov 18. 2016

반지성에 물든 기독교

지금은 잊혔지만 벤 카슨은 트럼프를 누르고 공화당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카슨은 정치적인 면보다 상식에서 벗어난 주장으로 더 유명합니다. 일례로 그는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무덤이 아니라 거대한 쌀 창고였다 주장합니다. 카슨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은 파라오의 꿈을 해석하고 이집트의 장관이 됩니다. 그리고 7년 풍년 동안 이후 있을 7년 흉년에 대비해 쌀을 모아둡니다. 그 엄청난 양의 쌀을 어디다 저장했을까? 창고를 만들었을 거다. 그것도 큰 걸로. 이집트에서 그렇게 큰 구조물은 피라미드 밖에 없으니 피라미드가 바로 요셉이 지은 쌀 창고일 수밖에 없다는 해석입니다.


카슨은 그의 탁월한 해석을 위해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외면합니다. 예를 들어, 피라미드 주위에는 항상 제단이 같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최종 형태의 피라미드 이전에 벽돌실 단층 무덤과 계단식 피라미드가 지어졌습니다. 이를 짓기 위한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무시한다고 해도, 피라미드가 요셉이 만든 쌀 창고일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카슨에게 별 문제가 안되나 봅니다. 성경에 적혀있는 내용에 역사적 사실을 끼워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반지성과 반지식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반지성과 반지식은 약간 다릅니다. 반지성은 지성에 대한 반감이나 불신을 말합니다. 문화, 철학, 예술, 과학 등에서 이루어진 성과를 평가절하하거나 지성인을 사기꾼이라 여기는 경향입니다. 현실과 괴리된 책상물림 지성인을 비판할 필요는 있겠지만, 반지성은 대부분 안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반지식은 지식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게다가 요즘은 정보가 넘쳐나다 보니 주워들은 말로 전문가의 지식을 거부합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이 실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냐 평가절하하는 게 반지성이라면, "내가 보기에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 같아"말하며 전문가의 지식을 거부하는 모습은 반지식입니다. (편의를 위해 반지성과 반지식을 합쳐 반지성이라 부르겠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지만 한국교회는 갈수록 반지성적 모습을 보입니다. 아니 반지성이라 퉁치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악의적인 왜곡도 넘쳐납니다. 주일마다 검증되지 않은 (창작된) 예화들이 강단에 넘쳐납니다. 카톡이나 페북에서 돌아다니는 찌라시는 왜곡과 거짓으로 충만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전한다는 미명 하에 기독교인이 이교도를 불태우는 장면이 기독교인의 순교로 바뀌어 전해집니다.


검증? 그런 것 없습니다. WCC의 공동선언문 한 번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WCC는 종교다원주의에 빠진 사탄의 계략이라 확신에 차서 외칩니다. 교회에서 배운 게 전부입니다. 더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정보는 차단해 버립니다. 십일조 내지 않으면 암에 걸린다는 목사의 말에 아멘 하는 광경을 보며 목사만 탓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한국 교회 반지성의 정수는 창조과학에서 나타납니다. 이들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창조 기사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과학적 사실로 믿습니다. 하지만 지질학, 생물학, 천문학을 비롯한 과학의 연구 결과를 부정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지구의 나이가 만년이 되지 않았다는 젊은 지구론을 살펴보지요. 젊은 지구론이 맞으려면 지구뿐 아니라 우주의 나이가 만년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먼 별의 거리는 131억 광년입니다. 이는 지구에 도달한 그 별의 빛이 131억 년 전에 출발했음을 의미합니다. 만년이 안 되는 우주에 131억 년을 떠다닌 빛이 있을 수는 없지요. 그래서 그들은 그 빛이 (131억 광년 떨어진 별의 모습이지만) 만 년 전에 출발해서 지구에 지금 도착하도록 우주 어딘가에서 출발했다 생각합니다. 신묘막측하지요?


이 해석이 맘에 안 드는 젊은 지구론자는 천문학이나 물리학의 기본 원리를 무시하는 것으로 해결합니다. 지구의 나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성경 말씀 다음으로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동위원소 측정법의 오류입니다. 하지만 연대측정은 한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지구의 나이는 연대측정을 기반으로 지질학과 천문학의 관측 결과를 사용하여 교차 검증되었지만, 이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저 진화론자들이 진화에 시간이 필요하기에 지구 나이를 길게 잡았다는 음모론이 전부입니다. 진화론이 나오기 전에 이미 지질학자들은 지구 나이가 몇 억년은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무시해 버리죠. 이쯤 되면 믿음이 아니라 범죄입니다.


과학 이론의 기본은 반증 가능성입니다. 어떤 이론을 지지하는 수많은 증거가 있어도, 반대되는 하나의 증거로 그 이론은 폐기될 수 있습니다. 젊은 지구론을 믿는다면 지구 나이 46억 년이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기록이다" 이런 말만 하고 있죠. 그리고 반대되는 증거와 설명되지 않는 증거는 다릅니다.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이론으로 관측 결과가 매끄럽게 설명이 안되기에 우주상수를 가정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이론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이후 허블이 발견한 우주의 팽창으로 우주상수는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진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이 가진 신비는 너무나 큽니다.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아는 부분까지 말하는 것이 과학입니다. 그런 면에서 과학자들이 창조과학자보다 훨씬 겸손합니다. 젊은 지구론자는 신념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이 모르는 부분까지 안다고 말하니까요.


과학이 (아직) 설명하지 않는 부분을 들어 설명된 부분까지 부정합니다. 무엇보다 비판을 하려면 제대로 알고 비판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통용되는 과학에 관한 주장들은 너무 한심합니다. 짧게는 십 년 길게는 몇십 년 전에 이미 설명이 되어 과학자들은 더 이상 질문조차 하지 않는 문제를 심각한 오류인양 소개합니다. 이를 순진한 성도들은 믿음으로 받아들이지요.            


진리에 근거하지 않은 믿음은 자기 최면입니다. 그리고 사실을 부정함으로 유지되는 진리란 없습니다.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지식을 접할 때 우선 그 새로운 지식이 믿을 만 한가 살펴봐야 합니다. 믿을만하다면 기존에 가졌던 믿음에 잘못된 것은 없는지, 기존의 믿음과 새로운 지식을 어떻게 조화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이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두렵기도 합니다. 창조과학자들이 그 주장의 허접함에도 불구하고 활동하는 이유는 이 두려움 때문입니다. 진화를 관찰된 사실로 인정한다면, 그리고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물질적으로 크게 차이가 없음을 인정한다면, 창세기 1장은 상징이 되고 이는 자신들이 소중히 간직해 온 믿음을 깨뜨리는 결과가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에 대한 가장 쉬운 해결책은 부정입니다. 관찰된 사실도, 이에 기반한 검증된 이론도 순수한 믿음이라는 명분을 걸고 부정합니다. 창조과학을 비롯한 근본주의자들이 과학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과학을 공부한다고 약해질 믿음, 사실을 부정함으로 유지되는 믿음이라면 제대로 된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믿음이라면 빨리 무너지는 게 본인에게나 주위 사람에게나 유익합니다. 자기 최면으로 이어가는 신앙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신앙은 분명히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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