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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아르 Oct 04. 2017

난 미안하다

올 11월이면 만으로도 50이다. (나이 체크) 세네 시간 자면서 공부해 서울대 갔다. (학벌 체크) 고등학교 때 지하 단칸방에 네 가족이 살았다. (고생 체크) 나름 일 일심히했고 지금은 미국에서 특허변호사로 살고 있다. (성취 체크) 이 정도면 꼰대 노릇해도 별로 꿀리지 않는다. '우리 때는 말이야' 이렇게 시작해서 열 시간은 떠들 수 있다. 하지만 난 미안하다.


헬조선이라 자조하는 청년들을 탓하는 대학교 선배의 글이 화제다. 우리 때는 훨씬 더 힘들었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 그런 이야기다. 페이스북에서 연결된 사이라 그분의 글을 읽어왔기에 이번에도 별로 놀랍지 않았다. 평소 하던 이야기였으니까. 그런데 솔직히 말해 보자. 서울대 힘들게 들어갔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공부 안 했다. (몇 명은 했다. 난 그 친구들을 존경한다.) 그럼에도 대기업 중에 골라갈 수 있었다. 영어니 스펙이니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회사 들어가 토익을 쳤는데 500 조금 넘었다. 그래도 높은 편이었다. 요즘 삼성 신입사원 중 800대도 없을 거다. IMF 오기 전까지 별문제 없이 승진했고, IMF 때문에 위세 대가 퇴직을 많이 해 우리 세대는 오히려 덕을 봤다.


보스턴 유학생들을 많이 접했다. 놀라울 정도로 열심히 산다. 스펙도 좋고 실력도 좋다. 그런데 힘들어한다. 미국에서 자리 잡기도 힘들고, 한국에 돌아가도 유학 출신이 워낙 많아서 어렵기는 마찬가지란다. 상위 5% 안에 충분히 들 친구들인데 이런 상황이다. 그러니 그중에서도 스펙이 딸리는 이들은 어떻겠나.


우리 세대 열심히 살았다. 많은 것을 이루었다. 하지만, 누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같은 것을 이루었을 거다. 지금 청년들이 80년대 학번이었다면 역시 열심히 일할 기회를 얻었을 테고, 같은 성취를 이루었을 거다. 청년들을 만나며 느끼는 건, 이들의 노력과 고민이 그 나이 때의 내 노력과 고민보다 더 하면 더했지 적지 않다는 거다. 아니 오히려 미안할 때가 많다. 그리고 인정한다. 난 참 좋은 시대에 태어났구나.


나이 든 사람을 무시하라는 건 아니다. 시행착오를 먼저 거친 사람으로 전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 이를 통해 배울 수 있다면 분명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지금 청년들 열심히 산다. 실력도 있다. 고민도 깊다. 이전 세대보다 절대로 모자라지 않다. 다만 시대가 다를 뿐이다. 생산성이 높아져 적은 인원으로 같은 일을 하고, 평균 수명은 늘어나 윗세대가 물러나지도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윗세대의 의무다. 그들을 조롱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위해 빨리 물러나 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면 최소한 공감이라도 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난 이들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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