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문동 가족들의 마지막 이야기
"응답하라 1988"
익숙한 것과의 작별은 언제나 마음에 긴 아쉬움의 빈 자리를 남긴다. 빈 자리는 쓸쓸한 뒷맛을 남긴 채 고요하게 저물어 간다. 사라져버린 가족간의 은은한 정을 떠올렸던 <응답하라 1988>이 한편으론 꺼림칙한 이야기를 남긴 채 막을 내렸다. 숱한 화제를 뿌렸던 <응팔>, 나에겐 88년 어두운 그 시절의 잊힌 기억들마저 단순하게 울고 웃으며 시원하게 풀어버릴 수 있는 깊은 감동이었다. 다시 한 번 사랑하는 가족들, 내 주변의 가족 같은 사람들을 가슴속에 품게 한, 윤기 나는 행복 드라마였다.
<응팔>의 주 관점 포인트는 가족이다. 그리고 가족이 더 큰 다른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향기 나는 얘기다. 인간은 참 나약하고 의지 박약한 존재다. 혼자서 인생의 문제들을 풀고자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가지만, 때로는 누군가에게 의지할 불가피한 상황이 연출이 된다. 가족들은 옆에 든든히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우군이 된다. 그런데 같은 피도 아닌 쌍문동의 다른 가족들은 서로에게 물보다 아득하게 진한 존재였다.
사실 14회 까지가 이 드라마의 백미였다 생각한다. 남편 찾기에 골머리가 빠지지 않아도 이야기에 충분히 맛깔 나게 빠져들 수 있었던 건, 가족간의 뭉클한 위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4화 이후 쪽 대본의 영향인지 플롯이 허물어지긴 했지만, 가족간의 이해, 배려, 감싸 안음,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갈비탕 집에서 벌어진 즉흥 결혼식은 나의 눈물과 콧물을 모두 쏙 빼놓고 말았다.
"가족이란?"
단절되고 대화가 사라진 우리의 가족들을 본다. 부모와 자식간조차 이분법으로 갈라진, 메마른 대화의 단절을 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족들은 각자 살기 위해 흩어지려 애썼지만, 다시 모이는 것을 스스로 회피한 것은 아닌지, 서로에 대한 의지를 멈춰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드라마는 작은 가족들을 꾸준하게 한 자리로 모이게 만들었다. 서로가 오롯이 한 방향을 바라보며 눈물 한 방울, 뺨에 흘러내릴 수 있는 부끄러움조차 교감할 수 있는 것이 애틋하기만 한, 나의 가족이다. 영롱한 눈물 한 방울, 숨기고 싶었던 남자의 자존심은 가족의 이야기 앞에서 한 없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난 행복했다. 굳이 숨기고 싶었던, 감추고 싶었던, 메말라서 더 이상 짜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 마지막 눈물의 토로를 지켜봤으니 말이다.
불현듯 기억이 떠올랐다. 희미하고 아득한 먼 과거의 그 시절.. '아 그때는 정말 그랬지..' 밥 한 톨도 나눠먹고 물 한 그릇 조차 함께 했었지, 지금은 사라져 흔적조차 보기 힘든 분리된 가족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정봉, 선우, 덕선 그들에게 등불이 되어준 그런 아버지, 나는 멋지고 근사한 구두를 선물해 주고 싶어도 신겨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정환"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너의 그 마음을 이젠 떠나리
내 자신보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널 아끼던 내가 미워지네
정환은 아니 해야 할 '정팔'의 이미지 같은 짓거리를 저질렀다. 정팔은 우정이라는 미명하에 사랑을 스스로 등졌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불같이 끓어오르던 덕선에 대한 이끌림을 양보했다. 나는 분노한다. 왜 어리석은 양보를 해야 했는가? 그는 왜! 어떤 연유로! 링에 올라가 상대와 스파링조차 하지 못하고 기권 패를 스스로 선언 해 버린 것일까? 주저했던 옛 시절의 나와 비슷했기에 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작가는 수 많은 플롯들에서 정환과 덕선을 이어주는 장치를 끈끈하게 연출하고 있었다. 분명 정환과 덕선은 택이 보다 사랑의 중심에 서있었다. 두 사람은 첫사랑을 나누고 있었고, 시청자들만 느끼는 것이 아닌 덕선도 분명히 정환의 마음을 속에서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과할 정도로 정환의 사랑을 시청자에게 보여줬으며 정환의 설렘을 구체적으로 연출했다.
의도적으로 연출했던 정환과 덕선의 복선들마저 작가는 깡그리 무시하고 망쳐버렸다. 정환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덕선과 택의 중간에서 느꼈던 비참한 감정들을 제대로 추슬러주지 못했다. 섬세하게 처리해야 할 감정의 선을 놓쳐버리는 바람에 정환은 이 드라마에서 그냥 아무 말 없이 조용하게 사라져버리는 비운의 남주가 되고 말았다. 두고 온 반지는 버려진 정환을 의미한다.
남편도 아닌 친구를 왜 굳이 자세하고 친절하게 아니, 넘치도록 조명한 것일까? 정환이 덕선에게 향한 사랑은 단지 설레는 외사랑 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을까? 서툴렀던 사랑에 실패한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을까? 난 이해할 수 가 없다.
음모론 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본다면, 박보검이라는 연기자의 언론을 통한 집중 조명 탓과 그의 출세를 위하여 류준열이 희생된 것은 아니었을까? 박보검의 가치가 더 빛 날것이라는 기획사의 파워 싸움에 류준열이 밀려난 것은 아닐까? 바보 같은 상상을 한다.
"응팔은 끝났다"
생각해보니 따로 주인공이 없었다. 원래 주인공들의 카리스마가 부족하여 자연스럽게 가족 드라마로 변질 된 것인지는 새삼스런 궁금함 조차 사라진 지 오래다. 드라마를 통해서 단지 인생은 즐겁고 또한 슬픈 것임에 애써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의 슬픔일터, 허전하고 쓸쓸한 빈자리는 다시 따뜻한 차 한잔 같은 이야기들로 채워질 것이다. 가족은 사랑이라는 깊은 깨달음을 기적같이 소생시켜준 <응팔>에 다만 감사할 따름이다.
의미 없는 한낮 이름으로 잊혀질지도 모르는 한편의 드라마가, '나'와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함으로 미완성에서 완성품으로 성장했듯이, 각자의 영역에서 해피엔딩을 맞길 바래본다. 쌍문동의 가족들이 그리워 질 것 같다.
마지막으로 덕선과 택의 결혼식 장면이 안 나온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
마지막으로 정환에게 이 노래를 바친다.
힘들게 보낸 나의 하루에 짧은 입맞춤을 해주던 사람
언젠간 서로가 더 먼 곳을 보며 결국엔 헤어 질 것을 알았지만......
너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 나를 어렵게 만드는 얘기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너를 잊겠다는 거짓말을 두고 돌아오긴 했지만......
언제 오더라도 너만을 기다리고 싶어 다시 처음으로 모든걸 되돌리고 싶어
이제는 어디로 나는 어디로 아직 너의 그 고백들은 선한데
너를 닮아주었던 장미꽃도 한 사람을 위한 마음도
모두 잊겠다는 거짓말을 두고 돌아오긴 했지만......
*너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 나를 어렵게 만드는 얘기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너를 잊겠다는 거짓말을 두고 돌아오긴 했지만......
언제 오더라도 너만을 기다리고 싶어 다시 처음으로 모든걸 되돌리고 싶어
이제는 어디로 나는 어디로 아직 너의 그 고백들은 선한데
너를 닮아주었던 장미꽃도 한 사람을 위한 마음도
모두 잊겠다는 거짓말을 두고 돌아오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