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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r 26. 2021

일간 공심을 마치며

새롭게 주간 공심 뉴스레터를 시작합니다.

일간 공심을 마치며


안녕하세요 일간 공심 뉴스레터의 작가 이석현입니다. 오늘 일간 공심 마지막 발행 날입니다. 벌써 뉴스레터를 발행한지 4주가 지났네요. 4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개근하듯이 열심히 글을 썼습니다만, 과연 이 행동이 여러분과 저에게 어떤 동기부여와 결과를 초래했을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재미도 없는, 별다른 감동도 없는 흔하디흔한, 장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글을 써온 것은 아닌지 문득 후회가 밀려옵니다.


사실 4주간 매일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것은 저는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 때문이었습니다. 오로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무력함과 공허함을 눌러가며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의 발목을 잡기도 했네요. 어느 순간, 글 쓰는 일이 의무가 되고 약속이 되는, 내가 과연 재미있어서 쓰는 걸까,라는 의문이 별안간 튀어나왔기 때문이죠. 과연 이 일이 재미있고 신나는가?라고 생각했더니, 의외로 대답이 싱거웠어요. 재밌는 건 분명했으니까요. 일상의 탈출구였던 것도 분명했으니까요. 그런데, 글을 나 좋자고 쓰는 건가? 이건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닌가 싶었어요. 엄연히 읽히는 글을 써야 하는 입장에서 내가 얼마나 독자를 배려했지?라고 물어보니, 저는 또 주저하고 있더라는 거죠.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저와 가까워지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멀어지는 일이기도 한 것 같아요. 왜 그런지 아세요? 내가 원하는 글과 독자가 원하는 글의 간극 때문이에요. 고집 피우듯이 내가 좋아하는 글을 열심히 쓰면 언젠가 독자들이 알아서 내게 찾아와서 내 글을 두 팔 벌려 반겨줄 거라는 어떤 근거 없는 희망? 그런 보이지도 않는 희망에 취해서 사는 사람이 작가라고 생각했어요. 아, 그래서 나는 나름 자부심을 느끼며 글을 쓰는구나, 무엇을 얻겠다는 욕망보다는 어느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재밌게 읽어주고 라이킷을 해주고 댓글을 달아주면 감격하는 사람이구나, 그 맛에 나는 피곤함도 잊는 사람이구나,라는 이상한 결론 말이에요. 그럼에도 책을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이 읽어줬으면 하는 역설적인 바람을 가진 사람이기도 합니다. 저란 인간은……


그럼에도 저는 평범한 인간이죠. 힘이 들면 힘이 난다고 글을 쓴 적도 있지만, 어쨌든 힘들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의욕상실에 빠지는 편이기도 하거든요. 그럴 땐, 그냥 다 놓고 싶죠. 저도 인간이니까요. 그런데 그걸 견디고 글을 썼어요. 약속이니까요. 제 글을 지지해 주시는 독자분들에 대한 신뢰의 표시이자, 저를 지탱하는 자존감들에 대한 신뢰의 징표였으니까요.


회사에서든 또 커뮤니티에서든 피곤한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테죠. 그런 면에서 글감은 끝도 없이 나타나겠네요? 글감이 없어서 글 못 쓴다는 건 핑계가 되겠네요? 그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열심히 글만 발행하면 되겠네요? 맙소사, 이 글도 의식의 흐름대로 쓰고 있군요.


저의 트레이드 마크는 어쩌면 여전히 회사인의 직함을 유지하면서도 커뮤니티도 운영자이자 글을 쓰는 작가이며 또 남들 앞에서 강의하는 강사라는 정체성이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대체 그 많은 것들을 어떻게 한꺼번에 해내요?라고 묻는 분이 계시겠지만, 그게 뭐 아이디어가 기발하게 뛰어난 것도, 여러 개의 일을 한꺼번에 해낼 능력도, 특별한 관리 기법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거든요. 그냥 인간 이석현이, 공심이라는 부캐를 뒤집어쓴 호모 파베르가(호모 파베르 : 도구적 인간) 어느 날 그냥 그렇게 된 것뿐이거든요. 그냥 이렇게 저는 생겨먹은 거예요.


일간 공심은 다음 발행부터 주간 공심으로 바뀝니다. 한 주 쉬고 다시 연재를 시작하겠네요. 글은 매주 금요일 오전에 발행될 예정입니다. 어떤 글을 쓸까 여전히 고민이 돼요. 에세이를 쓸까, 정보성 글을 쓸까, 시를 쓸까, 말이죠. 모두 제가 건드려볼 만한 녀석들이에요. 그러니 고만고만한 녀석들이기도 하죠. 더 내실 있고 더 깊이 있는 글을 보내드리고 싶긴 해요. 욕심 같아선 정보와 감동, 재미까지 모두 담은 글을 보내드리고 싶지만 그렇게 되긴 힘들겠죠. 아무튼 기다려 주신 분들께 감사해요. 늘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도 정말 감사드려요. 4/6(금)부터 새로운 포맷으로 만나 뵐게요.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팩션 : 예측하지 못한 변수에 대하여



지난 화요일은 출근하지 않는 날이었으나 국책 과제 발표 때문에 대전으로 출장을 가야 했습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은 집에서 재충전하면서 떨어진 당도 채우고, 물론 먹는 것보다는 책 읽고 글 쓰는 날이 더 많은 편이지만…… 그날은 예측하지 못한 변수(정부 과제 발표) 탓에 저만의 루틴이 무너지고 말았어요. 뭐, 쉬는 날이야 다음날로 바꾸면 되고, 덤으로 목요일까지 이틀 연속으로 쉬게 되는 셈이니, 화요일 하루쯤이야 아무렇지 않게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오랜만에 SRT를 타러 수서로 향했습니다. 가방엔 노트북 하나 사업 계획서 한 부, 무거운 배터리 같은 비즈니스맨에게 잘 어울리는 물품을 담은 채로요. 저는 평소에 공부를 잘 안 하는 스타일인데, 그날은 부담이 좀 되니, 공부 모드가 자동적으로 발동이 되더군요. 이것도 자동적 사고에 해당될까요?


시간을 확인해보니 약 1시간 정도가 남았길래 뭘 할까, 궁리하다, 사업 계획서 한 부와 발표 자료를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엔제리너스에서 주문한 아아 한 잔, 옥수수 스콘 한 개를 받아놓고 빈 테이블 위에 털썩 주저앉았지요. 주저앉은 이유는 가방이 무거운 탓도 있었지만, 이른 시간(오전 8시)에 깨어 있으려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탓도 있었죠. 공부하기 싫은 사람이 새벽(?)부터 집중하려니 이거 영 첫 페이지부터 바로 때려치우고 싶더군요. 게다가 회사일이라니요. 월급 루팡에게 가당키나 한 일이랍니까. 놀고먹으면서 대전역에 도착한 후, 느릿느릿 성심당이나 들르려던 계획이 무산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이 가사 아시나요? 이 노래를 아신다면 음, 연식이 꽤 되셨다는 것을 증명하겠습니다만…… 어쨌든 집중하기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아아를 벗 삼아 억지로 졸음과 사투를 벌여야 했고, 지루함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온통 적뿐이었네요. 게다가 마스크 쓰지도 않고 침까지 튀겨가며 잡담하는 빌런까지……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생소한 숫자며, 이상한 단위며, 정량적 지표며, 예비 연구 결과가 어쩌고저쩌고, 차년도 돈 많이 받고 싶으니 꼭 그렇게 해달라는 온갖 읍소 어휘들과 체계적인 연구 절차와 계획까지, 제가 쓰지도 않은 사업 계획서의 이상한 문구들과 수치들을 달달 외워야 했습니다. 왜 외웠냐고요? 그게 말입니다. 발표야 연식이 있어서 별다르게 준비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담쟁이덩굴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넘어가면 그만인데요.(또 자랑질…) 질의응답 요 녀석이 늘 문제를 일으키거든요. 평가 위원들이 어떤 예측하지 못한 질문을 던질지 모를 테니, 적어도 사업 계획서의 핵심은 꽤 차고 있어야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요. 평가 위원들이 난감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사업 계획서 더미를 주섬주섬 넘겨가며, 한 10 페이지쯤 넘기다, 8페이지와 9페이지가 실수로 공중으로 날아가, 그만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는 상황은 펼쳐 지 게 할 수 없잖아요. 그런 건 전혀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대전역에서 바로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습니다. 호텔이라고 이상한 상상하는 분들은 안 계시겠죠? 코로나 때문에 호텔에서 발표를 하게 됐나 봐요. 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호텔에 도착하여 막 현장(?)을 덮치려는 순간에 갑자기 참여 기관 교수님이 “잠깐만!” 하고 어깨를 붙잡습니다. 저는 “교수님 늦었어요. 이제 10분밖에 안 남았습니다”라고 말했죠.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한 말씀을 하셨어요. “이사님, 아무래도 이거 안되겠어요. 솔직하게 평가 위원들한테 과제 포기하겠다고 털어놓는 게 낫겠어요” “나니? 난 데스가?” 아. 일제 불매운동 중에 죄송합니다만, 하도 황당해서 저도 모르게 당시에는 하지도 않은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네요. “저는 속으로 이 새…. 아니 이 교수님이 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하시는 건가, 생각했는데, 그때는 정말로 시간이 멈춰진 것 같았다니까요.


“이사님, 아무래도 중복성 시비에 휘말릴 것 같아요. 다른 기관에 제출했던 사업 계획서와 내용이 90% 이상이 똑같아요” 아 전 속으로 대답했죠.”아니 교수님 제가 전날에 그래서 문제 삼지 않았어요. 다른 사업 계획서와 내용이 거의 유사하다고요. 그래서 문제 삼을 때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다가 대전까지 내려와서 게다가 택시를 30분 타고, 또 옆 유성 온천이 지금 용광로처럼 사람도 없이 혼자 들끓고 있는데, 지금 제 뜨거운 가슴을 놓고 그 말씀이 나와요?. 아니 다른 팀은 실적이라도 거둬서 포기해도 그만이겠지만, 저는 여기에 목숨 걸었단 말이에요”라고 거칠게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사실 목숨 건 적도 없었지만……


하지만 저는 힘없는 일개 이사에 불과할 뿐, 저명한 연구자이신 교수님의 결정에 어찌 반박 성명을 외치겠어요. 그냥 ‘고!’ 하자고 강하게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저도 나중에 생길 문제에 회피하고 싶었나 봐요. 결국 교수님의 선택에 엄지 척을 시연해드리고, 담당 간사를 조용히 불러 과제 포기에 대한 당사의 의견을 통보했지요. 철저한 통보, 상의도 아닌 협상도 아닌 통보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그리고 현장에 끌려 들어가 발표를 진행했지만, 실패를 이미 결정한 상태에서 그 어떠한 기대도 없는, 몇 시간 동안 공부했던 저의 모든 노고를 한 방에 날려버릴 발언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가 위원들은 줄곧 하마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었어요. 우리의 연구 실적과 발표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어떤 회사가 과제를 미리 포기하겠다고 당찬 선언을 할 수 있는지 감격이라도 한 것처럼요. 하지만 우리 회사는 그런 절망적인 빌런 중에 하나였죠. 10억쯤이야 다이어트하듯이 간단하게 포기해버리는.


도대체 왜 우리는 예측을 하려 할까요. 이렇게 보기 좋게 어긋나고 마는데,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열심히 계획을 세우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수서역에서 대전역까지, 또 성심당에 들러 모처럼 튀김소보로를 맛있게 먹은 것도, 유성까지 택시타고 넘어온 것까지도 비교적 제가 새벽에 예측한 대로 문제없이 아주 완벽하게 잘 굴러갔거든요. 근데 왜 별안간, 그런 생각 하지 못한 변수가 튀어나오냐는 거죠.


변수는 물론 변수일 테죠. 변수가 변수답게 행동했는데 녀석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그래도 변수 때문에 저는 발표를 완전히 망치고 말았어요. 꿈같은 실적도 날아갔죠. 아, 발표를 잘 못했다는 건 아니에요. 실패를 기정사실로 결정해두고 발표하는데 무슨 희망적인 결과를 꿈꿀 수 있겠어요.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어차피 망하는 일인데요. 담당 간사도, 평가 위원도, 저 조차도 납득할 수 없었죠. 대체 왜 우리가 이곳, 대전까지 와서, 완벽하게 끝날 수 있었던 하루를 망쳐버린 건지, 누구의 잘못인지 원인을 분석해봐도 뚜렷하게 문제점을 찾을 수 없겠더라고요.


아무리 계획이 있어도, 빈틈없이 변수들에 대비한다 해도, 변수는 불연속적으로 예측하지 못할 높은 확률로, 우리의 일상을 별안간 덮쳐올 테죠, 오늘처럼요. 이 세상에 완벽한 계획은 없을 테니까요. 발표를 끝낸 후, 호텔을 뜨며 저는 가방에 들어있던 서류 뭉치들을 쓰레기통에 처박았어요. 그리곤 대전역 성심당에 들러서 느긋하게 빵이나 먹자고 결심했죠. 이왕 이렇게 망쳐버린 거 홧김에 기차표 시간까지 뒤로 미뤄가면서요. 어차피 계획해봤자 뜻대로 안되는데, 오늘은 그냥 제멋대로 흘러가게 두 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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