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생의 단 한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는 선택을 내려야 합당할까.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진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인생은 어차피 수없이 의미 없는 순간과 온갖 난관이 겹쳐 이룩된 세상이니까. 그냥 스치듯 옆을 뛰어다니는 생각 하나를 우연히 건진 것뿐이니까. 글쎄, 되돌리려면 그만큼의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보잘것없는 능력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것도 가능하지도 못한 이런 몹쓸 가정법을 애써 생산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는 나에게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고 포근한 말투로 물었다. 꺼져가는 양초 불빛 하나에 연명해가며 살아가는 막차 탄 인생에게 소원이 무엇이냐니, 그 질문에 어떤 분명한 대답을 내려야 할지 몰랐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최신 의학의 힘으로도 복구가 불가능한 중병에 걸린, 그러니까 희망이 존재했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노인에게 소원이라니 짜증이 났다.
“어떤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인가요? 당신이 신이라도 되나요? 당신은 마치 신이라도 된 듯이 자애로우면서도 인자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군요. 당신의 언어는 마치 오후의 보드라운 봄햇살같이 느껴지는군요. 죽어가는 영혼에게 과분한 일이지요. 언제나 소원을 빌고 기대는 일이란 건...”
“물론 당신이 예측한 것처럼 소원은 제한적입니다. 소원은 젊지도 신처럼 위대한 능력을 보여주지도 못하죠. 당신이 나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더 깊이 드러낼지도 모릅니다. 물론 나는 신비의 요정 지니도 아니고 무한한 능력을 지닌 전지전능한 신도 아닙니다. 아, 제 소개를 못 드렸군요. 저는 그저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당신에게 제안을 드릴뿐이랍니다.”
“당신의 제안이란 건 뭔가요? 당신이 신이 아니라니 제가 젊은 시절로 돌아가거나 다시 사는 것과 같은 전폭적인 지원은 불가능하겠군요. 네 잘 알았습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럼 다시 물을게요. 당신이 제안하는 소원이라는 것의 구체적인 모델은 대체 무엇인가요? 며칠이 남지 않은 비천한 몸뚱이를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해줄 수 있습니까?”
“네 제가 당신에게 해드릴 수 있는 걸 지금부터 말씀드리죠. 일단 제가 신이 아니란 걸 확실하게 아셨으니 다음에 제가 드리는 말들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저에 대해 소개를 드리자면, 음... 저는 뇌를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뇌를 연구하는 사람이라고요? 저는 폐에 문제가 생겨서 20년 동안 병원에서 식물처럼 살고 있어요. 저는 뇌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요. 치매는 더더욱 아니고요. 심지어는 일주일 전 아침에 먹은 메뉴까지도 기억한단 말입니다.”
“네 성격이 꽤 급한 분이시군요. 저는 오랫동안 뇌를 연구한 학자입니다. 제가 선생님에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은 선생님의 특정한 기억을 완벽하게 복원해드리는 것입니다. 복원된 기억은 시뮬레이터라는 장치에서 재연됩니다. 물론 선생님은 그 기억이 현실인지 가상인지 구분하실 수 없을 만큼 완벽할 겁니다. 심지어는 선생님과 헤어진 가족분들까지 다시 만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현재 의식이 분명한 상태로요.”
“아니 근데 그건 아무래도 사실이 아니잖아요. 일종의 환청이라고 봐야 하지 않나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그러니까 컴퓨터에서나 살아가는 가짜 영혼을 만나 무엇을 하란 말인가요?”
“저는 선생님이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사건, 말하자면 제대로 이별하지 못한 사람들과의 마지막 만남을 주선해드리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선생님에게 기회를 한 번 더 드리는 거지요. 그 일이 선생님을 다시 살게 하거나 희망의 다리를 다시 놓는 일이 되지는 못할 겁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마치 인생을 한 번 더 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리게 되지 않을까요? 우아한 이별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못다 한 인연들과 말이죠.”
“음 글쎄요. 저는 특별히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어요. 저는 아주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거든요. 빌어먹을 이 병원에서도 20년 동안 아내도 없이 친구도 없이 혼자 살아왔단 말입니다. 이런 비천한 영혼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원하는 사람을 만나, 그 시절의 과오를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요?”
“네 대다수의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게 무슨 쓸데없는 일이냐고 거부를 하십니다. 하지만 그런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도 결국 체험을 하시고 나면 생의 마지막 정리를 잘했다고 흡족해하시더군요. 그분들의 마지막은 결코 외롭지도 암울하지도 않았어요. 신을 영접하지 않아도 마음의 안식을 얻으신 것 같았어요. 게다가 비용도 국가에서 지원하는 일인데, 손해 볼 건 하나도 없잖아요. 선생님에게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이 될지 일주일 앞이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인생에게 선택이란 게 어떤 의미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선택의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니 그의 제안에 의지하기로 했다.
나는 하얀색 기계에 눕혀졌다. 귓속에 헤드폰 같은 뭉치를 끼워 넣더니 커다란, 그러니까 관처럼 생긴 둥그런 장치에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갔다. 셋을 세라는 뇌과학자의 말을 듣고 하나를 세자마자 나는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잠에서 다시 깨어났을 때, 나는 병원 침대가 아닌 30대의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평온한 주말이었고 평상시처럼 늦은 햇살이 안방을 휘어 감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 내가 30대로 돌아왔으며 70년의 인생은 어떻게 된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모든 게 정상으로 되돌려져 있었다. 그 미친 뇌과학자 나부랭이의 말이 맞은 건가? 나는 의심이 들어 볼을 꼬집어보았다. 아릿한 통증이 볼 가운데서부터 입 주변까지 번졌다.
의식은 확실히 있었다. 내가 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설사 내가 죽어서 기계 속에서나 살아가는 바이러스에 지나지 않더라도 분명히 나를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이해하고 있다. 이 순간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그는 내가 얼마나 이 세상에서 기거하게 될지 아무런 정보도 들려주지 않았다. 오직 나 혼자, 이 순간을 견디고 헤쳐나가야 한다. 대체 오늘 어떤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어떤 사건이 나에게 닥쳐서 나는 그 사건을 이전과 다르게 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때였다. 문자가 도착한 건
“아들아, 컴퓨터가 켜지질 않는구나. 쉬는 날 미안한데, 나중에 한가할 때 집에 좀 들러주지 않으렴?”
아, 그래 기억이 나고 말았다. 이 문자가 도착한 날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래 나는 그날 이 문자를 보고 꽤 크게 짜증을 냈어. 힘들게 일하다가 쉬는 날인데, 컴퓨터가 뭐가 중요하냐며 사람을 귀찮게 한다고 아버지에게 통화를 했지. 꽤 크게 신경질을 부린 것 같아. 아 몹쓸 기억이 전부 돌아오네.
2.
“아니 아버지 컴퓨터 안 되는 게 무슨 중요한 일이라고 쉬는 날에 문자에 전화까지 하시는 거예요. 저 주 중에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아세요? 매일 야근하고 그제는 철야까지 했다고요. 아, 그리고 지난주에 용돈도 두둑하게 보내드렸잖아요. 그 돈으로 친구분과 술이라도 한 잔 사드시면 얼마나 좋아요. 친구분끼리 어울리세요. 옆집 106호 아저씨는 탑골 공원에 출근한다고 하시던데요. 아버지도 거기에 어울려보시는 게 어때요?”
“아니 내가 좀 어지러워서. 밖에 나가는 게 이젠 너무 힘들구나, 게다가 이젠 기력도 떨어져서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나마 이놈, 그러니까 컴퓨터를 네가 놔줘서 심심하지 않았는데, 이놈이 지난주부터 켜지지를 않아서. 내 너 바쁜 거 알아서 고민 고민하다 오늘에야 문자를 넣었잖니.”
“하, 뭐가 어떻게 안 되는데요?”
“어, 켜지질 않아. 이거 전원 버튼 있잖냐. 그걸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네”
“설마 멀티탭 꺼 놓으신 건 아니죠?”
“그럼, 그건 아냐, 이 애비가 아무리 컴맹이어도 그건 알아. 네가 지난번에 친절하게 알려줬잖아. 내가 이 바둑 사이트 들어가서 바둑왕이라는 놈을 눌러줘야 하는데, 이게 켜지지를 않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구나. 미안한데 잠깐이라도 와주면 안 될까”
“아버지 저 바쁜 사람이에요. 주말에도 바쁘다고요. 당장 할 일들이 많아서요. 노트북 싸 갖고 집에 왔단 말이에요. 월요일까지 제안서 작업 마무리 못하면 저 회사에서 잘려요. 그럼 아버지한테 용돈도 못 보내드려요. 네? 아시겠어요? 다음 주에 여유 좀 생기면 그때 제가 갈게요. 암튼 오늘은 안 돼요. 다른 거라도 하고 계세요. 그리고 바둑판도 있잖아요. 신문 보시면서 복기라도 하세요”
“그래 알았다. 이 애비가 미안하다. 나중에 여유되면 그때 꼭 확인 좀 해주라. 끊는다.”
“네 알겠어요. 들어가세요 아버지”
그 통화가 아버지와의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아버지는 정확히 일주일 후, 심근경색을 일으켰고 집안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시고 말았다. 마침 어머니까지 그날 이모와 경동시장에 방문한 날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나는 아무런 죄책감도 미안함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자신의 운명에 따라가는 것이라고. 아버지는 자신의 생을 살다 간 거라고.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물건을 정리하러 본가에 들러, 이런저런 물건을 챙겼다. 그러다 문제의 컴퓨터를 발견했다. 켜지지 않는다고 말하던 아버지의 기억도 함께. 찾아보니 컴퓨터는 메모리가 말썽인 모양이었다. 그래, 오래되면 메모리든 CPU든 말썽을 부릴 수밖에 없겠지,라고 혼잣말을 쏟아부으며, 쓸데없어진 컴퓨터를 버리기로 했다. 그러다 갑자기 궁금했다. 대체 아버지는 이 컴퓨터로 어떤 삶을 혼자 살아왔는지.
메모리를 갈아 끼우고 부팅을 했다. 아버지가 즐겨 쓰던 크롬 브라우저를 실행했다. 모든 기록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들춰보다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리고 바탕 화면 가득한 메모들을 발견했다. 그곳엔 아버지의 짧은 일상이 보관되어 있었다. 빽빽하게 들어찬 메모들엔 온갖 문장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호흡을 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열어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과거를 다시 복원하는 사람처럼, 지금은 재로 변한 아버지의 인생을 복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아버지가 미안해. 사랑한다. 내가 인생을 너무 낭비하고 살았어. 이제 와서 후회하면 무슨 소용일까. 그래도 아들한테 이 말은 꼭 해야 하는데…”
3.
문자를 받고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사람처럼 눈앞이 번쩍거렸다. 정신없이 아무 옷이나 주섬주섬 챙겨 입고 문을 나섰다. 아내는 주말 아침부터 어딜 가냐고 물었다. 나는 회사에 볼일이 있다고, 좀 늦을 거라고 말하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나에겐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자동차는 지하주차장을 벗어나 햇살 가득한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