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회사를 졸업했다. 인생의 마지막 회사 졸업인 셈이니 꽃다발이라도 받았어야 했나. 그렇지만 꽃다발도, 기념촬영도, 기념식도, 아내의 환한 표정도 없었다. 그런 것은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과묵하게 내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조촐한 행사니까.
회사를 떠나며 구성원들을 찾아가서 친절하게 인사 따위를 남기는 촌스러운 짓은 하지 않았다. 물론 예의 따위가 없는 인간이라서 옹졸하게 혹은 매몰차게 누군가를 단념해 버리려고 벌인 짓은 아니다.
마지막 날마저 얄궂게도 재택근무였고, 내 방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마치 지구 종말의 아침을 맞이하는 남자처럼 그날의 햇살을 침착하게 맞이했을 뿐이다. 그 이유가 내가 누군가에는 배려심 없고 매너 없는 인간으로 비쳤을 것이리라. 그렇지만 이제 일어나거나, 혹은 일어나지 않을 미래까지 상상하며 세상의 모든 경우의 수를 미리 계산하려는 예민함에서는 벗어나고 싶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이제야말로 변칙적으로 살아갈 절호의 기회를 잡았으니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퇴사를 앞둔 시점에 사건은 터졌다. 물론 그 사건은 나에게 한정된다. 현대그룹 강의를 앞둔 전전날 39도의 고열과 함께 심각한 몸살이 찾아왔다. 아프니까 일단 본능대로 드러누웠다. 원인을 진단하려는 내 고유의 성향은 멀리 집어던졌다. 그래, 쉬어야 하는구나, 몸에서 시그널을 보낸 거야. 이제 쉴 때가 된 거야.
이틀을 내리 앓고 나서 새벽에 좀비처럼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머나먼 양평까지 무거운 배낭을 메고 기차와 택시를 오가며 말 그대로 군시절처럼 행군 없는 강행군을 펼쳤다. 이를 악물고 잇몸이 무너지면 턱으로 버틴다는 생각으로.
블룸비스타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침대에 뻗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도 없이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며 시간이 흘러가길 기다렸다. 30분, 1시간 그리고 3시간이 지나갔다. 온몸에서 모든 진액이 빠져나간 것처럼 흠뻑 땀을 쏟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강의 자료를 검토하고 수정한 후, 그 상태 그대로 온몸이 통나무처럼 경직된 채 잠들었다.
강의는 무사히 끝났다. 그리고 언제 아픈 사람이었는지 기억도 못할 정도로 하루가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니 채팅방에는 천 명 가까운 사람들이 여전히 자기만의 이야기를 바글바글 끓는 찌개 국물처럼 들썩거리고 있었다. 나는 누구고,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상하고 기묘한 생각이 스며들 때쯤, 입술 한쪽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며 거북해졌다. 포진이 하나둘 울툭불툭 돋아나더니 어느새 네 개로 번졌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여섯 개까지 늘어났다. 까탈스러운 여섯 쌍둥이의 탄생이 아닌가.
이런 일은 내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 이것이야말로 사건이었다. 퇴사를 축하하는 신의 전언으로 해석해야 될까. 그동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 보상이라도 받아내야겠다는 어떤 잔혹한 상흔이었을까. 퇴사보다 입술포진이 더 큰 사건이다.
입술에 다닥다닥 여섯 쌍둥이처럼 자라난 포진은, 오랜 시간 나를 얽매고 있던 견고한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는 결의이자 예견된 결과였다. 육체는 자신이 치러야 할 일을 이번에도 묵묵히 견뎌냈지만 뜨거운 통과의례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그래 이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날것의 졸업장임이 분명하다. 정해진 로직과 계산된 경우의 수로만 작동하던 과거의 문법이 39도의 열병 속에서 속절없이 녹아내린 셈이었다.
인생은 퇴사 이후에도 계속되겠지만, 이전과 이후의 질감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이제 내 앞에는 AI로 증폭된 그러니까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단 한 명의 주인공을 위해 마련된 무대가 놓여 있다. 기계의 언어를 손끝으로 타이핑하던 시절은 이제 기억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AI라는 거대한 지성과 동료로서, 직관과 철학으로 새로운 세계를 지휘하는 기묘한 실험 한가운데 서 있다고 믿는다.
예고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온 이 불청객 같은 포진들처럼, 솔로프리너가 마주할 세상은 통제할 수 없는 변칙과 우연으로 가득하겠지. 나는 이 낯선 무대 위에서 어떤 배역을 소화해 낼 것인가. AI가 직조해 내는 무수한 텍스트와 코드 속에서 나는 어떤 길에서 배회하게 되려나. 나는, 여전히 과거의 연장선에 있는 나일까. 아니면 이마저도 완전히 새롭게 렌더링 된, 스스로를 나라고 착각하는 또 다른 환영일까.
에라 모르겠다. 아프니까 잠이다. 잠이나 실컷 자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