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외주화 시대
나는 오늘도 염불처럼 중얼댔다.
"이 코드 리팩터링 해줘." "이 내용으로 이메일 답변해 줘." "이 데이터 분석해 줘." 아침부터 밤까지,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의 절반은 AI를 향해 있다. 주어는 언제나 '나'이고, 동사는 언제나 '~해줘'다. 나는 생각하지 않고, 마치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던 흥미롭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일에 대해 얘기하듯 무심하게 명령만 전달할 뿐이다.
2,400년 전, 소크라테스는 문자가 기억력을 퇴보시킬 거라 경고했다. 문자는 퍼졌고, 암기력은 퇴화했으며, 인류는 비판적 사고라는 새로운 능력을 얻었다. 계산기가 암산을 죽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언가를 잃고 무언가를 얻는 것. 그것이 기술의 역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계산기는 암산을 대신했다. AI는 사고를 대신한다. 인간은 AI에게 대체되고 말까? 아니, 우리는 자발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권리'를 투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몇 달 전까지 두 달이 걸리던 개발 프로젝트를 클로드 코드 덕분에 이틀 만에 끝냈다. 출판 목차를 짜는 데 이틀씩 끙끙대던 것이 이제는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시장분석, 이메일 작성, 자동화 스크립트 — AI가 하고, 나는 외주를 맡길 뿐이다. 시작은 내가 하지만, 과정에는 내가 없다.
처음에는 경이로웠다. 그것은 기면증에 빠질 만큼 편안했다. 나는 그 맛에 길들여져 버렸다. 이제 AI 없이는 일할 수 없다. 술에 맛 들인 사람이 자신의 의존을 알아채는 순간과 같다. 알고 있지만 멈출 수 없다. 마치 잃어버린 기억을 억지로 구겨 넣듯이 나는 AI의 결과물을 내 성과로 채워 넣기 바빴다.
2개월이 2일이 되었을 때, 남은 58일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시간을 도랑 위에 쌀뜨물 버리듯 그냥 흘려보냈다.
절약된 시간으로 더 깊이 사유하겠다고,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겠다고, 더 의미 있는 창작에 몰두하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켰고 숏폼에 빠졌다. 뉴스를 훑었다. 다시 클로드 코드를 켜고 또 다른 '~해줘'를 던졌다. AI가 벌어다 준 시간을 도파민이 잡아먹었다. 해방이 아니라 또 다른 감금이었다.
누군가 이것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인지적 부채'. AI에게 맡길수록 뇌의 연결이 약해진다고 한다. 기억력, 집중력, 글에 대한 주인 의식 — 전부. 개발자라면 기술 부채를 안다. 일정에 쫓겨 대충 짠 코드가 나중에 이자를 물리는 것. 인지적 부채도 같다. 지금의 생산성은 미래의 사고력에서 빌려온 것이다.
이 빚은 장기어음의 결제일처럼 나중에야 슬그머니 들이닥친다. 어느 날 문득 빈 페이지 앞에 앉았을 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겨울 가지처럼 앙상한 머릿속을 마주하는 형태로 청구된다.
쓰면 쓸수록 무뎌진다. 과정이 사라지면 경험이 사라진다. 경험이 사라지면 성장이 사라진다. 코드를 직접 디버깅하며 "아, 이래서 이게 안 되는구나" 하던 순간, 빈 화면 앞에서 끙끙대며 첫 문장을 짜내던 고통 — 그것이 없으면 이해의 깊이도 없다. 칼질하다 손을 베어본 사람만이 칼의 무게를 안다.
여기서 마치 인체 해부도의 사진처럼 적나라한 사실을 하나 더 고백해야겠다.
이 글을 나는 AI와 함께 쓰고 있다. 주제를 잡는 것도, 자료를 모으는 것도, 목차를 짜는 것도, 문체를 분석하는 것도 — 전부 AI와의 대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생각의 외주화를 고백하는 글을, 생각을 외주화하여 쓰고 있다. 이 글은 과연 내가 쓴 것일까. 이 역설을 나는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 자체가 증거이므로.
나는 AI를 끊자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야 할 이유도 모르겠다. 다만, 남는 시간을 직시하자고 말하고 싶다. AI가 벌어다 준 58일 동안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그 시간은 당신을 성장시켰는가, 아니면 마치 나른한 분홍색 잿더미를 침대 삼아 잠들어 버린 것처럼 당신을 가라앉혔는가.
나는 작업을 멈추고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책상 위에 커피 한 잔. 이미 식었다. 적어도 이것은 내가 직접 내린 것이다. 분쇄된 원두의 쓴맛이 혀끝에 남아 있다. AI는 이 쓴맛을 모른다. 아마. 어쩌면 곧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식은 커피를 끝까지 마셨다. 오늘은 싱크대에 붓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