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Feb 27. 2017

글은 기다림이다.

아픔을 차분히 견디면 꽃이 찾아온다.

기나긴 겨울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창가에는 다사로운 햇살이 봄의 향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 눈동자는 움츠려들었던 고개를 펴고 생동한 자연의 변화를 받아들인다. 또 이렇게 한 고개를 넘기고 평화를 되찾는다. 이 고비는 조금은 짧았으려나…… 아니면 좀 길었던가…… 얼어붙었던 강물은 깨졌고 잿빛의 하늘은 맑게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내 인생의 봄은 아직일까?"


'아픔을 차분히 견디면 꽃이 찾아온다'라고 하는데, 내 선물은 아직 멀었나 보다. 따뜻한 기운이 온누리에 가득하지만, 아직 내 가슴은 횅하다. 마음을 수확하기에 준비가 덜 된 걸까…… 가슴이 덜 영근 것일까……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점점 멀어지는 이상(理想)과 식어가는 열정…… 오래 살 수 있어서 더 많이 배우고 익힐 수 있다면, 꿈과 조금은 더 가까워 수 있을까……   


"내가 빠져있는 글쓰기, 그것은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내가 글과 인연을 맺은 것은 약 15년 전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첫 번째 글쓰기 과제는 '정부 제출용 사업 계획서'의 기술 부분이었다. 나는 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였다. 소스 코드의 해독은 쉬웠으나 남이 쓴 글을 읽고 분석하고 또 쓴다는 것은 과도한 스트레스였다. 엔지니어가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회사에서 주어진 과제였으니 해야만 했다. 연구원들이 도출한 아이디어에 살을 붙이고, 기술 트렌드를 분석하여 '구현하려는 기술의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나의 첫 번째 글쓰기 숙제였다. 당시에는 인터넷에 충분한 자료가 없었다. 도서관에서 잡지와 논문을 뒤져가며 직접 발로 뛰어다녀야 했다. 글쓰기는 아날로그 형태를 띠었다.



첫 번째 글쓰기 과제는 쓰라린 패배의 경험만 남겼다. 그저 남이 쓴 글을 베낀 것이 다였다. 내 생각을 담고 싶었으나, 지식도 부족했고 글의 방향을 결정지을 주체의식 자체도 없었다. 배우고 싶지도 않았고 잘 쓰고 싶지도 않았다. 연차를 더해갈수록 글쓰기는 더욱 나를 괴롭혔다. 그림자처럼 내 옆을 따라다녔다. 엔지니어라고 하여 글쓰기에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사업 계획서, 보고서, 발표 자료(PPT), 메일, 매뉴얼 등, 모든 일상의 업무에서 글은 넘어설 수 없는 큰 산이었다.


"벤처 창업 열풍과 글쓰기"


벤처 창업 열풍에 부푼 나는 정부 주최의 '창업 경진대회'에 도전하게 되었다. 성공을 확신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 위한 기술 축적과 인적 네트워크의 착실한 준비가 이어졌다. 또다시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VC는 나에게 사업 계획서 작성을 요구했다. 1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일부분 작성의 경험은 있었으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글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막중한 부담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이 작성한 모범적인 사업 계획서를 먼저 베껴 쓰기로 했다. 처음에는 베껴 썼지만 점차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갔다. 장점은 가져오고 단점은 버렸다. 근 한 달 동안을 미치도록 썼다. 주말을 버렸고 때로 찾아오는 나태함을 타이르며 글을 썼다. 쓰고 또 쓰는 반복이 전부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경진 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적지 않은 상금도 받았고 해외 연수도 다녀왔다. 꿈에 그리던 벤처 창업도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쓴 사업 계획서를 읽고 감탄했다. 엔젤로부터 적당한 투자도 받았다. 그때부터였을까? 글쓰기가 재미있어졌다. 내 업무 중에서 50% 이상이 글에 관련된 것으로 채워졌다. 내가 쓴 사업 계획서는 늘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 지인은 내가 쓴 사업 계획서를 보고 '소설'작품 같다며 칭찬을 했다. '사업 계획서 작성의 신'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으며, 현재 업무적인 글쓰기에 관해서는 나만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처음부터 한 번에 되는 것은 없다. 우리 대부분은 천재가 아니다. 목표에 닿기 위해서는 과정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과정 속에는 고비가 반드시 있다. 고비를 넘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같은 자리에서 반복을 해야 하고, 고비를 뛰어넘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된다. 위기는 우리를 쓰러뜨리기도 하지만, 더 단단하게 체질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자신도 모르는 능력이 어디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모습을 나의 전부라 판단하 미래의 한계를 그어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곰처럼 미련하게 자리를 지키고 고초를 견디어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미래의 당신도 있을 수 있다.


글이란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당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글이란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당신과 가까이 있을 수도, 멀리 있을 수도 있다. 당신의 하루를 차분히 들여다보자.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글은 어디에나 살아 있다. - 카카오톡, 인터넷 커뮤니티, 페이스북 등의 SNS - 나는 업무 속에서 글의 신비로운 힘을 찾았다. 그리고 지금은 업무를 떠난 또 다른 세상에서 글쓰기의 꿈을 키우고 있으며 그 힘을 믿고 있다. 나는 회사와 가정을 오가며 달콤한 이중생활을 누리고 있다. 직장 생활에 지친 나에게 글쓰기는 추락한 자존감을 치유시킨 면역치료제였다. 이제 업무의 영역을 뛰어넘어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하여 새로운 도전을 펼치고 있다. 자신의 삶을 글에 비추는 일, 왠지 멋지지 않은가?


그것은 이 공간 - 브런치 - 에서 계속 이어진다. 어쩌면 나는 지금 실패의 과정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브런치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지만, 내 삶은 이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월급이 전부인 직장인이며, 야근과 철야를 떠날 수 없는 엔지니어의 삶을 살고 있다. 꿈이란 것은 점점 흐릿하게 색채를 잃어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온갖 노력을 다해도 주목받지 못하는 비정한 논리는 이 세계에 여전하다. 출판 업계의 앞날은 암울하고 사람들은 거의 책을 보지 않는다. 나는 같은 자리에 묶인 채,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나는 과연 내 책을 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래도 쓴다. 어제를 뛰어넘으려고 지속적으로 글을 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커피에 때로 의지하며 글을 쓴다.


글은 기다림이다. 글은 무엇이 찾아올지 모르는 막연한 미래를 그리는 것이며, 언젠가 찾아올 '굉장한 세계'를 예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생각해야 하고, 꿈속에서도 글감을 마중 나가야 하며, 그것들을 현실 세계로 옮겨야 한다. 글은 환한 미래를 현재로 투영시키는 것이고, 슬픈 과거를 소생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누구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