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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Dec 28. 2017

꼰대에 관한 고찰? 성찰?

나는 꼰대인가 아닌가.

꼰대에 관한 고찰


초등학교 교장님이 훈시하는 운동장 한가운데서 벌을 서고 있습니다. 
뙤약볕은 내리쬐고 그늘도 없는 흙바닥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반갑지 않은 손님 하나가 귓속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 
왕벌처럼 윙윙 날아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환청에서 깨어나 보니 꼰대 한 명이 옆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습니다. 한 번 말을 시작하더니 좀체 끝날 줄 모르네요. 내가 왕년에 얼마나 고생을 했느니, 이런 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건 틀린 거라느니 입 놀리는 모양새가 참 가볍네요. 마치 단어들이 꼬리를 매달고 하늘에서 뱀처럼 몸을 비비 꼬는 모양새입니다.

저에게도 발언 기회를 좀 주면 안 될까요. 그에게 귀를 유린당하고 입을 차단당했습니다. 저는 그가 시키는 대로 복종만 하면 되는 존재인가요. 제가 자기 부하도 아니고, 기계도 아닌데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합니다. 저도 배울 만큼 배웠고 알만큼 아는 사람인데, 제 의견도 좀 경청해주면 안 될까요. 몇 시간 동안 같은 소리만 반복하는데 저 인간은 입도 안 아픈가 봅니다. 

배가 좀 고프네요. 밥이라도 좀 먹었으면 좋겠는데, 입이 아니라 귀로 음식을 먹는 기분이 이런 걸까요. 귀로 들어오는 것들이 소화되지 않아 머릿속 회로 어디쯤에서 꽉 막힌 기분이 듭니다. 이것들을 밖으로 배출하고 싶지만, 입은 더 굳게 다물어 버려서 굶주린 뱃속을 채울 수가 없어요.




꼰대의 특징


꼰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반복하는 사람입니다. 기본적으로 말을 능수능란하게 하는 사람이 많죠. 자기 멋에 취한 나르시시스트 같은 사람이 꼰대가 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피곤함이 배로 증가합니다. 꼰대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지식이나 말주변을 자랑하고 싶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말로써 사람을 압박하려는 경우가 많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폭력을 함부로 휘두를 수 없잖습니까. 죄를 지은 사람은 그것에 응당한 법적 책임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입으로 대신 폭력을 행사하는 겁니다. 쉴 새 없이 나쁜 언어를 토해냅니다. 듣고 있는 귀에서 피를 토할 지경입니다. 

꼰대는 대개 경력이 화려한 경우가 많아요. 아는 지식도 방대하고 현장에서의 경험도 풍부하지요. 꼰대가 겪은 경험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그 경험이 무기가 되어 부하 직원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가 문제입니다. 꼰대의 언행이 과장된 형태로 지속되는 경우, 부하직원의 창의적인 사고는 추락합니다. 들을 권리뿐만 아니라 직원은 말할 권리도 있습니다. 배움은 상사가 내뱉는 말에 모두 담겨있지 않습니다. 상사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배우도록 유도해야 꼰대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왕년에 내가 말이야


꼰대가 하는 말 중에서 듣기 싫은 것은 '왕년에 내가 그랬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와 같은 말투입니다. 뭐 어쩌란 말인가요. 자신이 과거에 희생만 하고 살았고 고생하였다 하여 재래식과 같은 문화를 우리가 답습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과거는 과거입니다. 지나간 것은 대부분 쓸모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의미가 있는 것들도 있지만, 낡은 습관을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통하지 않습니다. 

제 직업의 경우를 한번 볼게요. IT 업계에서 먹고사는 것을 유지하려면 구 시대를 풍미했던 기술보다 미래를 리드할 트렌드에 예민해져야 합니다. 20년 전쯤에 배운 언어가 있습니다. 한때 IT 업계를 평정한 언어였고 마이크로소프트의 Visual C++(MFC) 만큼이나 각광받는 언어가 있었는데, 얼마 전 해외의 조사 결과를 대하고 참담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언어(Delphi, Pascal)는 씁쓸하지만 이제 개발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언어로 최상위 랭킹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언어로서의 막강한 기능, 간결한 문법, 뭐 그런 것들은 더 이상 개발자에게 매력을 주지 못하고 새로운 언어에게 급속히 자리를 뺏기고 있습니다.



위아래로 정렬하다.


꼰대는 나이가 최고라 생각합니다. 특히 직장에서는 나이와 경력으로 위아래를 구분 짓습니다. 어떤 직장에서는 직급 체계를 타파했다고 들었습니다. 영문으로 닉네임을 정하고 과거의 직급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며 모든 직원들이 존댓말로 소통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문화가 모든 회사에 통할까요. 저는 오너의 마인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너의 사고가 바뀌고 과거의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야 직원들도 따라 바뀐다고 믿어요. 오너는 바뀌지 않으면서 직원들에게 강요하는 것도 꼰대의 사고방식 아닌가요. 이건 마치 과거 일본에서 닌텐도라는 게임기를 개발했을 때, 왜 우리나라는 이런 걸 만들지 못하냐고 기술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던 것과 마찬가지의 사고방식입니다. 문제는 실무자가 아니라 언제나 최고위급에 위치한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꼰대는 자기 팀원이 잘난 것을 보지 못합니다. 팀원의 성과를 나쁘게 포장하거나 자신이 그 일을 해낸 것처럼 돌려버립니다. 그게 뜻대로 안되면 화가 나겠죠. 꼰대는 매일 화를 냅니다. 월요일 아침이 되면 화를 집에서 배달해왔는지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직원들과 회의를 하면서 불평불만, 부정적인 이야기들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우리의 제품이 시장에서 통하지 않을 거야, 고객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야', 와 같은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하여 직원들의 사기를 스스로 떨어뜨립니다. 그렇게 하여 직원들의 얼굴이 썩소로 변하면 쾌감을 느낍니다. 자신의 높은 위치를 자랑하려 하는 것이죠. 내세울 것 없는 꼰대의 가벼움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더 이상 가르치려 하지 마


꼰대는 일일이 가르치려 합니다. 사실 팀원이 꼰대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꼰대는 팀원의 역량 파악도 안되어 있고 팀원의 능력을 무시하는 경우도 많기에 무조건 자신이 더 많이 안다고 착각합니다. 작은 것부터 세세히 가르치려 들고, 가르치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변태 같은 족속들입니다. 

꼰대는 관심이 많습니다. 궁금해하지도 않는 사실까지 알려고 달려듭니다. 꼬치꼬치 캐물으려 하고 조금 듣다가 듣고 싶지도 않은 인생 코칭을 하려 합니다. 저는 꼰대에게 멘토가 되어달라고 한 적도 없고 상담을 들을 생각도 없었어요. 남의 사생활에 제발 끼어들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발 양치질이나 제대로 닦고 말하세요. 당신이 방금 마신 인스턴트커피가 남긴 냄새는 정말 참기 어려워요. 그리고 술이나 먹자고 제안하지 마세요. 전 일찍 퇴근해서 집에서 쉬고 싶어요. 당신이 하루 종일 회사에서 놀고 있을 때 저는 열심히 일했단 말입니다. 당신은 집에 가서 할 일이 없을지 모르겠는데, 저는 집에 가서 할 일이 의외로 많습니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괴롭혔으면 이제 나 좀 놓아주었으면 좋겠어요.



상사의 권위


꼰대의 권위는 나이와 직급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개입하고 싶으면 소리 없이 들어와서, 표 안 나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잘난 체하지 마세요. 하나하나 가르치려 말고 큰 그림을 보여주고. 영감을 불어넣어 줄 궁리를 하세요.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까 생각하고, 팀원에게 잘못이 있으면 꾸짖으려 하지 말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가이드를 해주세요. 상담은 팀원이 요청할 때 하는 것이고 먼저 나서서 잘난체하지 마시고요.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 한다고 말만 떠들지 말고 행동으로 먼저 보여 주세요. 이제 말은 그만하고 팀원들이 말할 수 있도록 귀를 여세요. 자유를 보장하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하세요.



자신이 꼰대인지 한 번쯤 의심해보세요. 내가 꼰대인지 판가름하는 기준은 나를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는 글쓰기만 한 것이 없습니다. 글을 쓰면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꼰대인지 아닌지. 일기라도 좋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알기 위해 내면으로 한걸음 다가서야 합니다. 면밀하게 자신의 상태를 진단해야 고칠 수 있는 확률도 얻는 것입니다. 꼰대는 나이에 따른 전유물도 아니요 자연스럽게 생기는 자연의 현상도 아닙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꼰대들이 득시글댄다고 하여도, 내가 꼰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고 하여도 자신이 꼰대가 되는 것은 자랑이 되지 않습니다. 부디 꼰대라는 망상에서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 유명한 꼰대는 아닌지 스스로 반성하기 위하여 쓴 글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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