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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an 15. 2016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김정운 교수

가끔은 정말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김정운 교수는 책 제목과 같이 우리에게 "외로워야 해!"라고 서두부터 고독을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뜩이나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아닌가? 젊은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포기하고, 독신으로 혼자 지내고 있으며, 그나마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사람들도 서로 바쁜 나머지, 얼굴 보고 밥 한끼 먹을 정도의 여유 없이 밥상의 대화가 사라진 각박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삼시세끼와 같은 단순히 밥해먹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도 자세히 분석해보면, 외로움에서 벗어나고픈 열망과 가족들끼리 단란하게 함께 준비하고 식사하며 대화하는 소박한 행복을 원한다는 뜻의 반증이 아닐까? 그런데 더 외로워야 한다? 외로움이 땅에 꺼져 바닥까지 뚫고 들어갈 시국인데, 여기서 더 외로우면 어쩌란 말인가? 실제 삶에서 외로운 나는 사이버 세상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 위해 "좋아요"를 구걸해가며 고독한 심연을 달래고 있는 와중인데 말이다.


"나는 이미 충분히 외롭다."


살짝 삐뚤어진 시선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 "이미 나는 충분히 외롭거든!" 이라고 그가 던진 화두에 정면으로 맞서며 삐딱한 자세로 앉아 나의 가치관의 저항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그의 의견에 일단 동조하지 않을 태세지만, 원래 나는 김정운 교수의 열혈 팬이며 그의 사상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듬쑥한 영향을 받고 있으며, 또한 그 동안 그의 의견에 심연 속에서 동조해왔으니 그의 얘기들에 고스란히 녹아 내리도록 노력했다.


김정운 교수가 얘기하는 "격한 외로움"은 다음과 같다. 바쁜 현대인들은 일분 일초의 시간도 허비하지 않고 정해진 규칙적인 삶을 저마다 꽉 찬 일정으로 살고 있다. 신나게 놀아야 할 초등학생마저 방과 후 각종 보습학원에서 또 다른 공부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어른보다 더 치열한 스케줄로 하루를 메우고 있으며, 대학생들은 졸업 후 취업과 결혼 스트레스, 직장인들은 장기불황으로 접어들지도 모를 저 성장기의 어두운 경제 상황에서 언제 잘릴지도 모를 불안감으로 이 나라를 탈출해야 하는 물결에 동참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직장에 살아 남아 저질스런 실적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 스트레스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마디로 외로움을 만끽 할 만한 
빈틈의 여유 없이 총알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격하게 느끼는 외로움의 감정은 잠시 쉬어가는 스포츠의 '타임' 같은 찰나를 의미할지도 모른다. 바쁜 현대인에겐 그마저도 쉬이 허락되지 않는다. 외롭기 위해서 필요한 장치와 주변의 환경들은 내가 외로움에 빠져들지 못하도록 늘 방해공작을 펼친다. 잠시 멍 때리며 아무 생각 없이 지낼 자투리의 여유시간 조차 우리들은 스마트폰이라는 신종 괴물이 펼치는 세상 속에 중독되어, 내 몸을 잠시 잠깐이라도 쉬도록 스스로 방치하지 않는다.
 
김정운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정상이 아니라는 전제를 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위와 같은 문제로 쉴 타이밍을 놓친 현대인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외로움을 자각할 수 있는 상념의 시간이 필요하다.



외로움은 잃어버린 나의 원기를 다시 회복시키고
나의 자아의 정체성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최적의 시공간적 특성을 가진다.



"나는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다."


P. 37 한국 남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회적 역할을 떨어내고 차분히 앉아 생각할 수 있는 배후 공간이다.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사실 나는 김정운 교수의 의견대로 이미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주말이면 내 방에 홀로 처박혀 책상에 앉아, 책들을 잔뜩 벌려놓고 노트북 하나의 화면엔 에버노트를 실행하고, 또 다른 모니터 화면엔 블로그에 접속하여 바쁘면서도 외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만반의 멀티태스깅 모드를 갖춘다.


남자라는 동물은 '동굴' 속으로 늘 들어가고 싶어한다. 아내에게 혼나서 내 방으로 쫓겨가는 것이 아니라 내발로 자발적으로 동굴로 들어가는 것이다. 갇힌 공간에 굳이 집착하려는 이유는, 주중에 회사에서 보내는 삶은 진정한 나의 무대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 동굴'은 나에게만 주어진 소유의 의미다. 나만의 한정된 공간에서 보내는 삶은 내가 원하는 취미되고 싶은 것배우고 싶은 것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제공한다.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에서는 남자들이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말 하기를 거부하고 자기 동굴속으로 들어가서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나타낸다. 이 동굴은 남자 혼자만이 거주하고 외부와 차단된 채 생각하기 위한 완벽하게 외부와 독립된 공간이다.
 
조용하게 혼자서 독서를 하기 위해, 그 어떤 방해도 받기 싫어, 음악 조차도 틀지 않고 책에 온통 정신을 집중하여 책과 나의 정서가 하나로 일치되는 경험을 갖는다. 독서 시간에는 그 어떤 인터럽트도 없이 나만의 독립된 공간에서 온갖 공상을 하고, 허황된 공상에서 파생된 생각들을 아이디어들로 정리하는 기쁨을 누린다. 아내가 나를 바라보는 관점에선 혼자 고립된 섬에서 답답하게 갇혀 탈출 시도조차 안 하는 정체된 인간으로 비춰질 수 도 있지만, 무인도에 갇힌 남편은 무한한 자유를 통하여 즐겁고 신나는 경험을 맛보고 있으며, 반대로 아내가 바라보는 부담스러운 시선이 이해가 안되어 답답함을 느낀다.

 
김정운 교수가 얘기하는 외로움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 사는 사람일지라도, 쓸쓸하게 외로움을 맛볼 수 있는 고독한 시간적인 여유를 보내야 한다는 얘기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쁘게 경황없이 지내다가 그냥 한방에 인생 훅 갈 수 도 있다는 경고의 뜻인 셈이다.


"그대는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김정운 교수는 또한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대는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우리에게 지금 당장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바로 대답할 자신이 있는가? 평상시에 우린 일상을 벗어나고픈 도망자의 삶을 꿈꾸지만, 정작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명확하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일단 한 가지 대답은 할 수 있다.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고
더 잘 쓰기 위해서 또 쓰고 싶고더 많이 공부하고 싶다
그리고 수 많은 책들을 읽으며 다른 사람의 경험을 
고스란히 나의 경험으로 만들고 싶고
지금은 프로그래머를 주업으로 살고 있지만 
언젠가 프로 글쟁이가 되고 싶다." 


그렇게 살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꾸며 차근차근 내가 꿈꾸는 삶을 실현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P. 22 우리 문화에서 '고독'은 실패한 인생의 특징일 뿐이다."


71년생인 나의 세대는 앞으로 100세까지 살 확률이 높다고 한다. 평균 수명이 100세라고 하니 즐거워서 만세를 불러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나이를 먹으며 점차 예전 재미있는 것들이 식상해지고 모든 것에 덤덤해지는 상황에서 늘고 병든 채 몇 십 년을 더 산다고 하니 공포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소망하는 것처럼 아프지 않고, 병들지 않고 무사하게 100세까지 무병장수하면 얼마나 좋겠나?
 

늙을 수록 주위 사람들과의 이별에 점차 적응해야 할 것이고, 혼자 있는 것을 차분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남은 인생을 '고독'함에 떨다 우울한 채 생을 마감하는 비참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우리는 고독을 이제 겸하하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P. 55 세상사가 내 맘대로 안 된다고 화내는 것
자체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중년의 사내들은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돈다 생각한다. 참 딱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무실에서는 며칠 전 임원 한 명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람들이 따라주지 않는다 불만을 품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한 분노를 표출한 적이 있다. 

회사의 일이세상의 일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화내고 분노로 감정을 폭발시킨다고 해서상대방이 그 분노에 긍정적인 답변을 주거나 그의 감정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이와 같은, 중년 사내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극도의 분노를 표출하는 상황에도 내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짐을 경험했다. 임원의 분노는 그의 과제의 영역이지 나의 책임 또는 과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의 분노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때로 나의 감정선을 지키는 것에 도움이 된다.


"P. 100 창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그 문제로부터
몸과 마음이 일시적으로 떠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프로그래머다. 

프로그래밍은 고도의 집중력과 논리적 사고를 통하여 오랜 시간 동안 자리에 끈기 있게 앉아있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몰입하다 보면 몇 시간을 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해결 가능성이 보이지도 않은 일에 지나치게 집착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김정운 교수는 어떤 문제의 해결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계속적으로 일에 집중하여 매달리는 것보다일하던 자리에서 벗어남을 통하여 그 일에서 잠시 멀어지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문제에서 잠시 떨어진 객관적인 상태를 갖게 되면 다른 생각을 하다 고민했던 문제가 의외로 쉽게 해결이 된다는 얘긴데, 실제 프로그래밍하는 상황에도 비슷한 케이스가 발생한다. 문제에서 멀어지는 구체적인 방법은 산책걷기명상 등의 방법이 도움이 되며, 해당일에서 완전하게 멀리 떨어져 독립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P. 102 인간은 사물을 지각할 때 사물의 각 부분을 따로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형태, 즉 '게슈탈트'로 형태를 파악한다.


삶은 계속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어제의 나를 지우고 오늘은 다른 나를 만나야 한다. 새로운 나날이 시작되면 그 동안 지속했던 과거의 구태의연했을지도 모를 삶의 습관에서 벗어나야 하며, 삶의 맥락이 바뀔지라도 새로운 삶에 순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늘 만나던 사람에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고, 어제 생각했던 태도를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깨치기 위해 배움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P. 114 행복 하려면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구체적으로 기분이 좋아야 한다."


나는 직장에서 행복한가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 집은 사실상 내가 잠을 자기 위한 하숙집 같은 장소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우리 집을 에어비앤비(Airbnb) 사이트에 등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하숙생을 다루는데 도가 튼, 내 아내는 그 어떤 까다로운 하숙생이라도 능히 견뎌낼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을 갖췄다.
 
아내는 나에게 하숙비를 받아야겠다고 난리다. 회사에 다녀오는 건지, 집에 다녀오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회사는 집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자, 많은 사람들과 호흡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벗어나고픈 욕구만 꽉 차있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단순히 버티라고 그 어떤 직장이나 비슷하다고 위로를 해주는 건 당사자에게 더 탈출하겠다는 열망만 키워줄 뿐이다.


"P. 153 늙어갈수록 뒷모습이 폼 나야 한다."
"P. 156 나이 들면서 삶이 재미없어지는 이유는 
도무지 흉내 낼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삶이 지루해지는 이유도 
도대체 더는 모방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관심의 대상이 줄어 든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호기심의 활동이 왕성한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이 배울 대상을 창조해낸다. 난 아직도 배가 고프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세상엔 내가 배울 만큼 뛰어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인 벤자민은 나이를 먹을 수록 오히려 점점 젊어진다. 육체와 정신이 젊어지며 점점 또렷한 삶을 살게 된다. 나는 벤자민처럼 육체가 젊게 변화하고 있진 않지만, 정신은 벤자민처럼 젊어지고 있다.
 
삶이 지루한 것이 아니라, 더 재미있는 일들이 펼쳐질 것 같아 긴장되고 흥분 될 지경이다.  은퇴 후 긴장 속에 삶을 사는 것은 나이 먹는 것조차도 망각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누군가를 모방하고 흉내 내도록 계속해서 닮고 싶은 대상을 찾을 작정이다.



P. 165 모든 종류의 금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주체로서의 삶은 바로 끝난다.
P. 166 심각한 문제는 금지가 반복되고 지속될 때 생긴다.
심리에 저항하고 분노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금지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외적 금지가 없어도 스스로 금지하고 
체념하는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금지는 사람의 의지를 박약하게 한다. 허물 수 있는 벽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다. 저항을 포기하면 마음이 편하지만 금지라는 전염병은 다른 사람에게 너무나 쉽게 감염을 일으키고 금지를 전파한다. 처음에는 금지에 저항하던 사람들이 계속된 억압과 강요에 동화되어 어느 순간 체념하고 금지를 받아들인다는 심리학자 브렘의 실험도 있다.
 
자유로운 의견을 환영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 생각한다. 금지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반대하는 문화를 가진 사회에서는 창조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지며정체된 학습의 무기력증이 발병될 확률이 높다. 먹고 살만해졌다고 지금 이 순간에 안주하고 순응하지 말아야 한다고 김정운 교수는 얘기하고 있다.



"결론"


김정운 교수는 '느리게 걷고천천히 말하며기본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충분히 열심히 살아왔고, 현재도 오버페이스로 무리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 삶이 각자에게 처한 환경과 개성에 따라서 모습이 다르지만, 

하나로 의견이 통일되는 것은 행복이라는 주제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바삐 살았고,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과거 수렵채집 시절의 본성이었던, 불을 지피고 앉아서 오순도순 정답게 대화하는 그림을 그토록 그리워 원했던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이 대화를 통하여 
상호작용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내면화된 진정한 ''를 발견한다.

 
우리는 서로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파편화된 삶의 굴레 가운데에서도 ''의 주체를 찾아야 한다. 잊힌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간절함은 외로움이라는 약간은 쓸쓸한 감정을 찾고 있으며, 외로움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누군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주체적인 삶을 찾는 여정을 돕는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까지 뿌리쳐가며 주인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라 김정운 교수는 경고한다. 삶의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을 분명한 대상과 목표를 정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고그것이 주체적 삶이라는 뜻이다.


문화심리학자로서 그가 교수직을 포기하면서까지 일본에서 그림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선택에 많은 고심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교수를 포기하고 선택한, 제 2의 인생의 길을 평범한 우리도 똑같이 따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수 있다. 다만 도전하는 자가 성공의 열매를 맛볼 수 있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행복하기 위해서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
그리고 되어야 할 대상의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외로움의 도가니 속으로 한번 빠져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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