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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정이 Nov 06. 2019

당신은 1++ 등급인가요?

한우가 아닌데 말입니다...

"에너지 소비 효율 등급, 1등급에 가까울수록 에너지가 절약됩니다"

저녁에 뭔가 먹을 게 없을까 하고 냉장고를 열어보다 문득 문 앞에 붙어있는 “에너지 소비 효율 등급”이란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등급이란 단어를 평소에 소고기 살 때 한우 1++등급이나 있는 줄 알았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우연히 눈이 들어온 스티커 덕분에 “내 등급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등급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것, 수능 시험이 떠올랐다. 인생에서 언제 그렇게 등급에 민감했던 시절이 있었을까? 한우도 아니고 전국에 수험생을 일렬로 줄을 세워 등급으로 구분하고 있었으니, 어떤 등급을 받게 되느냐에 따라 인생의 희비가 엇갈리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막상 생각해보면 수능이 끝나더라도 등급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힘들게 들어간 대학교 안에서는 ABC 등 학점이 등급이 되었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상반기, 하반기 일 년에 두 번 받는 인사고과 점수로 인해 등급이 구분되었다. 이렇게 보니 등급을 한우에만 매기던 것이 아니고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다고 해야 맞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어찌 등급표 대로만 평가받을 수 있을까? 수능에서 높은 등급을 받아서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을 들어갔다고 할지언정 그 사람의 인생이 모두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취업과 연결시키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대학교에서 높은 학점을 받아서 졸업을 하더라도 취업이란 관문을 통과하는 데는 학점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요인이 될 수도 없었다. 직장에서도 등급의 모순은 늘 존재했다. 승진 대상자들과 경쟁해서 성과를 인정받아 승진을 한 후 내게 돌아왔던 등급은 최하위 등급이었다. 그 당시 사내 분위기는 흔히 승진을 했으니까 고과점수는 바닥을 깔아줘도 되지 않냐는 게 일반적이었고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성과를 내서 승진은 시켜줬지만 등급은 깔아주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그 밖에도 멀리 지사에 근무하여 눈에 잘 띄지 않는다거나 인사권을 갖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서 직장 내에 인사고과 등급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있었다.

사실 이런 등급에 대한 사회의 부조리, 시스템에 대해 토로하기엔 벅차기만 하다. 다만 이미 죽어버린 한우가 받는 등급이나 완제품으로 공장에서 만들어져서 판매되는 냉장고가 아닌 이상 현재의 등급이 나를 결정짓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결과야 어찌 되든 현재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그 결과가 맘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생은 길기 때문에 뭐든 할 수 있을 것이고 변화될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할 테니까 말이다.

달력을 보니 이제 수능 시험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수험생 여러분, 수험생 가족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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