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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정이 Aug 06. 2020

밤 9시면 귀신이 나온다

어쩌면 그 시절엔 정말이었을지도 모를 이야기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어릴 적 듣고 자랐던 동요 중에 이런 가사가 있었다. 동요 가사 속에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혹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린이'라는 문구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기억이 남는다.


하지만 그 시절 새나라의 어린이는 되지 못했었나 보다. 어린 시절엔 잠이 참 많았다. 학교를 안 가는 아침이면 보통 10시까지도 잠을 잘 수 있었고, 아침 일찍 학교를 가야 할 때면 왜 그렇게 일어나기가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분명 등교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눈을 떠보니 꿈이었고 아직 이불속이었던 순간 밀려오는 당혹감과 아쉬움이란 차마 말로 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밤 9시면 귀신이 나온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아이들은 잠잘 준비를 서둘렀다. 보통 저녁 8시가 넘어가면 으레 잠자리에 드는 것이 당연했기에 어둠에 둘러싸인 바깥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든 아랑곳하지 않고 이른 시간에 잠이 들곤 했다. 그렇게 아이들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부모님이 외출했던 어느 날, 두 아이는 저녁을 먹고 난 후 8시가 넘도록 잠잘 생각을 하지 않았다. 특별히 하는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일찍 자야 한다는 압박도 없었으니 그냥 이런저런 놀거리를 찾고 있었고 외출한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밤 9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밤 9시면 귀신이 나온다"

평소에 부모님에게서 들었던 이 이야기는 9시가 다가오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초조함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9시가 넘어갈 무렵, 아이들은 이불을 둘러쓰고 그대로 납작 엎드렸다.

"(이불)밖에 한번 나가봐"

"안돼 무서워"

두 손에 꼭 쥐고 있던 손전등을 이불속에서 켜고 함께 붙잡고 들어온 시계를 들여다보던 두 아이들은 그 안에서 바깥세상을 향한 꼼지락 거림을 계속하고 있었다.

결국 둘 중 한 명 누군가는 이불 밖으로 등 떠밀려 나왔으리라, 혹은 '내가 나가볼게!' 하며 두려움을 벗어나 귀신이 나올지도 모르는 밤 9시 이후의 세계로 거친 발걸음을 내딛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떠랴, 결국 그날 밤 아이들은 다행히도 귀신을 만나지는 못하였다. 밤 9시가 넘어선 세상에 귀신이 득실득실거릴 줄 알았던 상상 혹은 몽상은 그렇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고,  밤 9시가 넘어도 귀신이 나오지 않는다며 일찍 잠들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어느 날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다녀왔습니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며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방안의 조명을 켠다. 시간은 이미 밤 9시를 훌쩍 넘어 10시를 향해가고 있는 시간이었다. 씻고 나와 간단하게 뭔가 집어 먹으며 컴퓨터를 켠다. 일하느라 정신없이 보내버린 하루를 보상받기라도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집에 돌아온 후 또 다른 자신의 일상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열두 시를 넘어 새로운 어느새 다음날을 맞이하고 있었고,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자리에 들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 12시를 넘어 잠을 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밤 9시를 넘어 귀신이 나올 줄 알았던 세상은 귀신이 아니라 밤 9시, 10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하고 있는 눈이 퀭한 좀비 같은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이었고, 밤 10시가 넘어가더라도 술과 음악 속에서 취해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


오늘도 그렇게 귀신이 나올지 모르는 세상 속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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