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늘 찾아오는 궁금증
"새해 계획은 좀 세우셨어요?"
"뭐 별다른 이유는 아니고요 그냥 다른 분들은 어떻게 계획을 세우셨나 궁금해서요"
무료한 주말 오후였다. 다음 주 일정을 묻던 상대에게 문득 새해 계획을 세웠냐는 질문을 던졌다. 상대는 각 영역별로 정리된 계획을 적어놓은 다이어리의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우와...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계획을 세우시다니..."
"전 그냥 조촐하게 한, 두 가지만 생각해봤거든요"
메신저를 통해 전해온 계획이 담긴 다이어리의 사진은 반듯한 글씨로 정리되어 있고, 펜으로 꾹꾹 눌러 적은 그 모습에는 상대방의 삶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느낄 수가 있었다.
과거 (이 시국이 있기 한참 전) 한해를 마감하며 모임을 했던 자리에서 한해의 잘한 일 3가지와 내년에 할 일 3가지를 이야기해보자는 지인의 이야기가 왜 그렇게 가슴에 크게 와 닿았는지 모르겠다. 그저 한 해를 보내며 물론 무언가 정리를 하는 것도 필요하고, 계획도 필요하겠지만 그 해에 잘한 일은 뭐였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정말 중요하게 이루고자 했던 새해의 3가지 꿈들을 나누는 시간은 몇 해간 삶의 나침반과도 같이 작용해왔다.
가끔씩 돌아보면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왔던 시간들이 즐거웠던 적이 있었다. 과연 지금 하라고 하면 또 할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지만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자신을 갈아 넣었던 시간들이 지금은 정말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졌다.
"넌 방학이 있으면 안 돼~ 그냥 매일매일 학교를 다니는 게 더 좋겠어"
"방학이면 그냥 하루 종일 흥청망청 살고 있잖아, 차라리 학교를 나가면 뭐라도 하고 있을 거 아니냐"
어릴 적 방학 때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방바닥과 하나 되어 있는 모습을 보던 부모님은 저런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뭔가 지속해오던 일상이 사라진 날이면 한없이 뒹굴대고 싶었고 또 그런 삶들이 싫지 않은 나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왜 저런 이야기를 하셨는지 온 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연말과 새해로 이어지는 어른의 방학을 보내고 있는 동안 어느새 방바닥과 하나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람 참 쉽게 변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고, 누워있으면 자고 싶다고 했던가. 최근 나 자신은 너무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짧은 반성도 잠시, '뭐~ 이게 사람이지!' 라며 흔한 사람의 범주안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도 몇 가지 조그만 계획을 세웠고 지난 몇 년간 고민해왔던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누군가에게 다 드러낼 수 없는 소박한 계획들이 될 수도 있고, 이걸 이제 와서?라는 생각이 드는 계획 일 수도 있다. 아무렴 어떠랴, 다만 그 결과가 별 탈 없기만 바랄 뿐이었다. 길게만 느껴지던 시간은 지금도 쏜살과도 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금만 덜 표류하기를 그리고 한걸음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