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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Nov 12. 2020

글로벌리즘, 범지구적 부자들을 위한 이데올로기

글로벌리즘에 대한 오해들

우리는 흔히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말을 듣는다. 커뮤니케이션 학자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 1911~1980)이 처음 사용한 이 말은 본래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해 지구적 차원의 소통과 담론이 가능해진 상태를 표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촌’의 개념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뛰어넘어 인간, 물건, 정보의 신속한 이동으로 인한 시공간의 지구적 수축을 표상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지구촌’은 ‘세계화된 세계’를 말한다. 

신자유주의에 비해 지구촌나 글로벌리즘이 주는 어감은 다소 긍정적이다. ‘지구촌’이라는 말은 세계인이 조그만 마을을 이루어, 오순도순 평화롭게 사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글로벌리즘’도 세계인들이 서로 협력하고 의지하는 국제 관계의 표현쯤으로 생각된다. 이런 어감 때문인지 진보적인 사람도 글로벌리즘을 옹호하는 경우가 있다. 세계적인 규모로 진행되는 환경 파괴나 빈곤과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구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며 글로벌리즘을 옹호하는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모순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환경파괴, 빈곤, 실업의 심화의 주된 원인이 바로 세계화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제의 원인을 곧 해결책으로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글로벌리즘을 ‘국가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 즉 반국가주의나 아나키즘의 일환으로 보고 옹호하는 경우도 있다. 그 역시 커다란 오해이다. 왜냐하면 국가로부터 일탈한 권력의 몫이 개인이나 시민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이탈한 권력의 몫은 개인이나 시민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이나 초국적 자본 같은 대자본으로 이전된다. 글로벌리즘은 반국가주의나 아나키즘의 실현이 아니라, 정치적 독점 권력으로부터 경제적 독점 권력으로의 이동을 의미할 뿐이다.     

 

달러 경제의 확장으로서의 글로벌리즘

역사적으로 글로벌리즘은 신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1970년대 자본주의 체제의 본원적 축적위기를 맞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출현했다. 그 주장의 핵심은 ‘세계를 단일시장으로 통합하자’는 것이었다. 서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세계는 자본축적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당연히 자본주의 시장으로 통합되려 하지 않았고, 옛 식민지 국가들이었던 제3세계 역시 옛 제국주의 국가들이 주도하는 시장으로 편입되기보다는 경제적 독립성을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1989년 공산권 붕괴가 시작되고, 1992년 소련이 몰락하자 상황은 일변했다. 미국에서는 월 스트리트,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싱크탱크, 정치경제학자 등 유력 인사들이 모여 냉전 이후의 세계질서를 논의했다.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였다. 이로부터 각국의 국민경제의 보호막을 걷어내고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시키는 세계화가 본격화되었다. 

글로벌리즘으로 가장 많은 혜택을 보는 것은 미국이다. 1944년 열린 ‘브레튼우즈 회의’에서 기축통화 발행국이 된 미국은 달러경제에 편입되는 국가가 많아질수록 더욱 큰 ‘세뇨리지(seignoiorage, 화폐주조차익)’의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다. 미화 1달러 인쇄비는 3센트이므로, 미국이 1달러를 찍어내 외국 상품―주식, 농산물, 공산품, 채권, 부동산 등―을 구매하면, 97센트만큼의 시뇨리지를 얻는 셈이 된다. 그로 인해 미국이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수지 적자 속에서도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부당한 혜택이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다. 대규모로 달러가 세계에 공급될수록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의 신용도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마침내 과잉 공급으로 달러화가 아무 쓸모없는 종이쪽지로 전락한다면? 달러 경제는 붕괴하게 된다. 

한미FTA에서 보듯이 국가가 쥐고 있던 경제통제권은 다국적 기업이나 초국적 자본의 손아귀로 넘어가고 있다. 국제교역은 대규모 생산과 복잡한 수송․유통과정으로 이루어져 있고, 거기에 엄청난 기계적, 공정적 에너지가 요구된다. 그것은 중소기업이 아니라 대자본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글로벌 기업들은 전세계 도시인들이 소비하는 상품과 서비스 대부분을 제공하고 있다. 개인들은 거대한 수송체계, 기름 값, 국제금융 변동 같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힘들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삶의 의존성이 극적으로 증가되었다. 

글로벌리즘은 경제적 독립성 뿐 아니라 정치적 독립성도 훼손한다. 세계 경제가 하나로 통합됨에 따라,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나, 유럽연합(EU),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같은 지역 블록이나 무역협정, ‘다보스 포럼’ 같은 글로벌 자본가들과 엘리트들의 사교모임의 정치적 영향력이 각국 정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국제기구, 모임, 협정들은 사실상 ‘정부 위의 정부’로 군림함으로써 국민국가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각국의 국민들은 이 같은 기구나 협정의 영향을 받을 뿐, 반대로 그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서민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글로벌리즘

글로벌리즘의 논리에 따르면, 자유무역은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고 생산성을 높이며 가격을 낮춘다. 그리고 더 많은 일자리와 더 많은 상품, 더 높은 생활수준을 보장해준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1950년 이후 지금까지 세계무역 규모는 12배 증가했고, 그 결과로 경제는 5배 성장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제3세계 민중의 빈곤과 실업은 오히려 전례 없이 크게 늘었다. 

자유무역체제 하에서 제3세계 산업시설들은 국내시장보다는 해외시장을 겨냥해 건설된다. 그런데 해외시장은 국내시장보다 훨씬 예측이 불가능하다. 세계시장은 각국의 정치경제적 지형의 변화, 기업과 개인의 행동, 전쟁과 평화, 기술의 변화, 다른 분야의 혁신, 원자재 가격의 변동, 소비자와 투자자의 반응. 자본의 급속한 이동, 금융시장의 변화, 기업 간의 인수합병 등에 의해 영향을 받고, 이런 요소들의 복합에 의해 급변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걸핏하면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이 되어 사람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수출 품목 옆에서 굶어죽는다. 

우리는 흔히 수출이 잘되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수출 호조로 돈을 벌어들이면 그 만큼 시중에 돈이 넘쳐나게 된다. 그러면 당연히 물가가 오른다. 물가가 오른다는 건 그 만큼 화폐가치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화폐가치가 떨어지면 환율도 오른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 가격도 오르게 된다. 수입 가격 역시 물가를 끌어올린다. 그렇게 물가가 오르면 환율이 따라 오르고, 다시 물가가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수출기업은 돈을 벌지만, 가계는 더 가난해진다. 자유무역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무역업에 종사하는 주변부 국가들의 소수 자본가와 선진국 기업 그리고 저가로 필요한 물건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선진국 국민들이다. 자유 무역은 국가 경제를 종속적으로 만들고, 종속된 경제는 외부의 상황이 어려워지면 쉽게 붕괴된다. 그 결과 선진국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해도 그 타격은 열악한 종속경제를 기반으로 한 제3세계 민중에게 가장 먼저 전달된다. 

글로벌리즘은 물자와 돈이 자유롭게 이동한 결과로 이윤이 늘면 자연히 인류의 복지가 증대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글로벌리즘은 세계적으로 경제적 아파르트헤이트를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리즘은 세계를 20여개의 선진국, 10여개의 중진국, 140여개의 빈국으로 분화시키고, 국적을 불문하고 세계 인구의 1/3은 글로벌 부자가, 2/3은 글로벌 가난뱅이로 만들고 있다. 글로벌리즘은 한 마디로 범지구적 부자들의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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