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장으로 승진
회사에서 “future talent”라고 부르던 부사무장 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했던 게 2018년. 당시 프로그램을 끝낼 때만 해도 최대 6개월을 기다리면 시니어라고 부르는 사무장 포지션, 즉 기내에서 책임자가 되는 포지션에 올라가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회사에서 주력 기종으로 쓰려했던 보잉 기종이 장기간 운항 중단이 되면서 회사가 어려움을 겪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코로나로 인해 두바이 공항이 한동안 폐쇄되고 두바이도 도시 전체를 봉쇄를 했던 때가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항공업계가 어려움을 겪었다. 한땐 한 달에 한번 비행을 갔던 때도 있었고, 회사는 무급휴가나 순환 무급휴직을 통해서 넘쳐나는 인력을 줄이고 비용을 아끼려고 노력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런 시간들을 거치면서, 더 이상 여기서 위로 올라가는 건 어렵겠구나 거의 포기를 한 상태였다. 어쩌면 어려웠던 시간 잘리지 않고 회사에 붙어 있게 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렇게 미워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했던 애증의 도시 두바이 덕분이었을까, 공항을 다시 오픈하면서 회사는 다른 어느 곳보다 빠르게 비행을 회복했고, 운항 중단이 되었던 기종도 운항 중단이 풀리면서 비행이 갑자기 많아졌다. 코로나가 오기 이전보다 더 바빠지면서 요즘은 승무원이 모자란 상황까지 왔으니 예상했던 것보다 회복이 빠른 덕에 회사는 사무장 승진 공고을 내었다.
처음 공고가 났을 때 지원하지 않았었다. 막상 지원을 할 수 있게 되자 마음속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머릿속에 가득 찼고 비행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생각나면서 상처로 다가왔던 많은 순간들이 생각이 났다. 또 8년 동안 마음속 깊이 터놓을 곳 없이 지내왔던 타지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것도 한몫했기 때문에 모든 걸 끝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게 첫 번째 공고가 닫히고 얼마 안돼서 두 번째 공고가 났다. 처음 며칠 동안은 내가 과연 되겠어라는 마음이 여전히 컸기 때문에 지원하려는 마음은 역시 없었다. 어느 날 4년 전 부사무장 교육 동안 내 멘토 선임승무원이 내 비행에 동승했다. 사실 그 비행에 나땜에 탄 줄 몰랐는데, 브리핑 때 오늘 나를 보려고 비행에 왔다는 것이었다. 아뿔싸, 뭐 제대로 준비한 것 없이 비행에 왔는데, 특히 바쁜 인도 비행에 따라오다니!! 많은 걱정을 가지고 비행을 시작했지만 그날 같이 비행하는 동료들도, 승객들도 모두가 너무 좋았던 비행이었고 모든 게 순조롭게 끝났다.
사무장 포지션에 지원했냐는 멘토의 질문에 지원하지 않았다는 대답에 멘토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유를 묻는 그에게 사실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짧게 줄여서 “나가 리더로서 자질이 있는 사람인지 사실 스스로 의문이 든다”라고 답했다. 사실 저 의문이 내가 매 비행마다 내 스스로에게 하던 질문이고 거기에 자신감 있게 “YES”라고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 대답을 들은 멘토 선임승무원은 "그런 마음 같지 않아도 된다. 오늘 긴 하루 동안 너를 지켜본 나의 경험은 너는 충분히 자질이 있다.""물론 오늘 비행엔 큰 문제없이 대부분 순조로웠지만 그렇다고 쉬운 하루는 아니었다. 두바이에 갈 때 , 현지에 도착해서 그리고 두바이에 돌아올 때까지 계속 만석 비행이었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난 네가 차분하게 다른 동료들과 소통하면서 일을 해내는 걸 보면서, 넌 카리스마가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라고 답해주었다. "물론 동료와의 문제가 생기거나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이 생기면 힘들겠지만, 그건 시간과 경험이 더 쌓이면 자연스럽게 배워갈 문제들이다. 두려워하지 말아라"라는 당부를 해주었다.
그의 말을 듣고 집에 온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다 너무 늦은 밤이기에 일단 잤다. 푹 잤다. 몸이 피곤하기도 했고 일단은 너무 자고 싶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 뭐.. 어차피 지원자는 많고 자리는 한정되어 있을 텐데, 되겠어? 어려운 것도 아닌데 지원이나 해보자"라는 생각에 지원을 했고 그 이후로 내가 지원을 했다는 사실을 정말 잊어버렸다.
사실 1월에 한국을 가게 되면 하려던 계획들이 있었다. 그중에 온라인으로 면접을 봐오던 회사가 있었는데, 그 회사는 최종면접은 대면으로 보고 싶어 했고, 마침 1월에 휴가를 받은 게 있어 그때로 일정을 맞췄다. 하지만 오미크론 변이의 출연으로 한국 정부는 해외 입국자에 대한 격리를 다시 강화하고 또 12월 말부터 1월 초에 두바이에도 오미크론 변이로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게 되었다. 어느 날 비행을 갔는데 동료가 감기에 걸리것 같다며 내 옆에서 기침을 심하게 했고, 또 내 주변에 확진자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내 몸 상태도 나빠지기 시작했다. 몸살감기처럼 몸이 아프고 기침이 심하고 다음날 목소리가 조금씩 변하기도 했다. 나도 확진이 됐다는 걸 직감하고 나선 결국 한국을 가려던 계획을 다 포기하게 되었다. 최종면접을 보려던 회사에도 컨택을 해봤지만 이미 한차례 면접을 미뤘던 상태에서 언제 한국을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기약 없는 상황인데 나 하나만의 사정을 배려해 줄 수만은 없는데 또 회사의 입장이기에 결국 면접도 포기하기로 하였다.
몸이 회복되고 나서 두바이에서 우연히 기회가 되어 문재인 대통령이 두바이에 방문했던 두바이 엑스포 전시장에서 통역 아르바이트도 하게 되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하루 이틀 여유가 있었는데, 그래도 휴가인데 집에서만 보내기가 아쉬워 집 근처 영화관으로 스파이더맨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를 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고, 회사에서 메일이 와 있었다. 메일을 열어보니 사무장 지원에 관련한 매니저의 메일이었다.
Dear, Byungcheol
Congratulations, you have passed the first stage in your application for the SCCM position. We are excited to invite you to the SCCM promotion exams.
"헐! 맞아! 나 여기에 지원했었지!!!?" 정말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지원 사실을 깨닫고 난 후 나는 더 이상 영화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스크린에선 영화가 끝으로 갈수록 뭔가 화려한 액션이 왔다 갔다 하는데 내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뒤죽박죽이 되어갔다. "내가..? 내가..? 진짜 할 수 있을까..?"
영화가 끝나고 운전을 하는 동안 계속 머릿속에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만 맴돌았지만, 결국 결론은 그래. 해보자. 일단 해보고 안되면 그때 다시 가서 생각해 보자. 그렇게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 일단 해보지 뭐! 이것도 다 경험이잖아?" "9년의 존버의 세월을 보냈는데, 이제 한번 해볼 때 되지 않았어?
주변 지인들의 도움과 또 혼자서 열심히 스트레스받으며 시험 전날까지 매뉴얼을 열심히 봤다. 그사이 비행하면서 나보다 먼저 시험을 본 동료들이 안전규정(SEP)과 응급처치(AFA)는 매년 리커런트 때마다 하던 거라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지만, 서비스 시험이 조금 어려우니 꼼꼼하게 보라는 조언들을 해주었기 때문에, 회사 사내 공지 홈페이지에서 서비스 및 안전 관련 공지까지 쭉 다 훑어보고 시험 당일날 본사 건물로 시험을 보러 갔다.
나와 같이 시험에 초대된 부사무장들이 15명 정도 모여 있었고 시험은 3과목을 봤다. 안전규정과 응급처치는 만점으로 서비스 시험은 1문제는 틀렸지만 어찌 됐던 시험에 붙어서 통과하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회사에서 답신이 왔다.
Congratulations! We are pleased to confirm that following the selection process you have been successful in gaining the position ~
We look forward to seeing you onboard, leading our crew and being a great ambassador ~
그래 해보자. 일단 해보자.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