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
학기가 시작하면, 다양한 이메일을 받는다. 대학에서 보내는 홍보성 이메일이나, 컨퍼런스/세미나 관련 이메일, 업무 관련 이메일이 오기도 한다. LMS 이용과 관련한 알림 이메일까지 포함하면, 하루에도 수십 통씩 이메일이 쌓여간다.
문제는 이메일이 일과시간이 아니라 늦은 밤이나 새벽에도 온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메일 앱에 읽지 않은 숫자가 적혀있는 것을 광적으로 싫어한다. 일종의 알림 강박증인데, 이메일 알림이 오면 바로바로 확인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 중에서도 학생들에게 받는 이메일은 최대한 빨리 답변해주고자 한다. 아직은 이메일이 익숙하지 않은 대학생들이기에 교강사가 답변을 해주지 않으면 두려움에 떨곤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예의 없는 말투를 사용해서 교수님이 화가 났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 언제 답변이 오는 지 조마조마 기다리는 것 같다. 마치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보내는 대부분의 이메일은 당사자들에게는 급하고 중요하지만 담당 교강사의 입장에서는 별일 아닌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면접이나 외부 일정(면접, 개인 활동 등)이 있어서 전공 수업을 들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이거나 몸이 아파서 수업에 참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내용들이다. 결국 출석과 관련된 내용인데, 메일을 보내지 않더라도 후에 사유서만 제출하면 출석으로 인정해준다. 수십 명의 학생에게 출석 관련 이메일을 받는다고 다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답장을 해주기도 뭐하고 안 하자니 애매하다. 내가 답장을 안 한다고 아픈 몸을 이끌고 학교에 나올 수도 없을 것이며, 내가 가지 말라고 외부 일정을 안 갈 것도 아닐 터이다. 이메일을 보냈어도 사유서는 제출해야 하니까. 그럼에도 카카오톡에서 연인과 대화하는 것처럼, 학생들은 교강사의 답장을 기다린다.
학생의 입장에서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한다면, 밤늦은 시간을 피하려 하겠지만 이메일은 시간을 가리지 않는 편인 것 같다. 밤 11시부터 새벽 4시 사이에도 이메일이 도착한다. 교강사가 낮에 확인하겠거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교강사도 직장인이라 이메일을 굉장히 자주 확인한다. 핸드폰에 이메일 알림 연동을 해두기에 새벽에 이메일이 와도 알림이 울린다. 새벽에 이메일을 받으면, 뭐지? 이 시간에? 싶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얼마 전, 밤 11시 30분쯤에 한 학생에게 매우 신박한 이메일을 받았다. 수업에서 미국 기업의 표준화에 대해 설명했었는데, 약 70년 전에 해당 기업의 초창기 제품을 지금도 구입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메일의 내용은 간단했다. 수업을 듣고 직접 해당 기업의 제품을 구입해 보았는데, 수업에서 보여주었던 초기 제품과 형태가 조금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촌(동네) 형에게 보내는 것과 같은 느낌의 이메일이었다. 이런 이메일은 학기에 한~두 번 정도 받는데, 무어라 답장을 해주어야 할지 난감하다. 몇몇 선배 교강사는 사소한 연락을 자주 받을 수도 있으니, 이메일은 절대로 답장해주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었다. 자칫 잘못하면, 교강사와 학생의 관계가 무너질 수 있고 수업과 관련 없는 사소한 대화가 연속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강사와 학생의 관계가 무엇일까. 학생이 말도 걸 수 없는 권위적인 모습?
누군가는 해당 이메일을 보고 '요즘 MZ세대들이란 쯧'하고 혀를 찰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강사와 친해지기 위한 학생의 노력이라고 생각하면 불편한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내가 대학생 1학년 때를 생각해보았다. 학과 모임으로 술을 마시다가 돈이 모자라서 계산을 못하던 3~4학년 선배들은 학과장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었다. '학과 모임으로 후배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데 돈이 모자라서 빌려주시면 다음 주에 모아서 갚겠다.'는 말을 전했었다. 학과장 교수님은 크게 웃으며 학생 때는 그럴 수 있다고 돈을 보내주시고는 갚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셨다.
후일담이지만 오히려 교수님은 자신에게 전화를 해주어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처음 받는 전화였고 요즘 아이들은 그런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셨다. 그리고 이후로 진로 지도학생들이나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점심을 사주시고는 학생들의 말을 듣기 시작하셨다. 나는 교수가 아니기에 그때의 교수님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 물론, 교수였어도 똑같은 행동은 불가능하리라.
학생들이 교강사에게 보내는 '말'의 형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화'에서 이메일이나 카카오톡으로 변했다.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 사제관계라는 것이 무엇일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일까? 권위적인 사람과 떠받드는 사람의 관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