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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em Oct 08. 2023

[나는 기레기다] 내가 언론사를 그만 둔 이유

언론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내가 언론사를 그만둔 이유     


첫 연봉협상에서 내 계약 연봉 인상률은 30%, 여기에 수당을 더하면 실수령액 50%가량 증가했다. 이 연봉인상률을 다르게 표현하면 나는 '일을 잘 못하진 않았다'는 말이다. 나를 잘 아는 몇몇은 내 천직은 기자라고 말했다.      


내가 단순히 성과를 내는 것만 좋아했다면, 인정받기만을 바랬다면 나는 계속 언론계에 종사했을 것이다. 위선적인 대표와 답도 없는 임금체계 때문에 현 직장을 그만두기로 한 건 사실이지만, 다른 언론사에 취직을 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언론계를 완전히 떠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언론사에서 기자로 종사하기 전, 나는 언론에 특별히 관심이 없었다. 뉴스도 거의 보지 않았고, 아는 언론사의 숫자도 네다섯 개에 불과했다. 또한 기사에 대해 편협하고 전문지식 없이 쓰인 토막글에 불과하고, 자극적이고 가십거리만 전달하는 뉴스만 눈에 띄어 읽다 보니 언론이 없어도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언론계에 종사하며, 언론은 민주주의를 유지시키는 핵심요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어떤 사실도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 사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실과 다름없다. 모 대기업의 불법행위가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모 정치인의 비리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다면 이들을 향한 '신뢰'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이들은 전과 다름없는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인간사회에서 신뢰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고, 이 신뢰는 가만히 있는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신뢰의 대상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입에서 오르내릴 때 형성된다. 이와 더불어 부정적인 이야기가 없어야 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이야기에 더욱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껏 언론이 힘을 가진 이유였다. 언론은 감시견이라 불린다. 언론의 주요 역할은 자본세력 및 정권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고, 이들의 부정적인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것을 이들은 두려워했다. 즉,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형성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우리나라의 언론인들은 목숨을 걸고 독재정권에 맞서며 그들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리고 언론이 목숨을 걸고 독재정권과 맞선 이야기는 언론을 신뢰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했다. 사회부와 정치부가 언론의 꽃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이런 영향이 크다.


하지만 자생력을 잃은 언론사는 감시견이 아닌 애완견의 길로 돌아섰다. 대다수의 언론사가 언론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모습을 하게 됐고, 사익을 위해 언론사를 설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자본에 대한 비판은 회사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변했다. 돈 받고 기사 내리는 비즈니스가 주요 모델로 자리 잡았고, 사회부나 정치부는 없어도 산업부는 있는 언론사가 수없이 생겨났다. 또한 정말 사회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기사를 직접 발굴, 기획, 취재하려는 노력보다 돈이 되는 기사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나는 작은 언론사에 근무하며 자생력을 잃고 언론이 아닌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형태로 변해가는 언론계의 모습을 최전선에서 경혐할 수 있었다. 대형 언론사들은 기존 언론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내부의 경각심과 함께 친자본화되는 모습에 대한 경계를 내부에서 하고 있지만, 작은 언론사에선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고민을 해도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은 언론사에서 이런 고민을 하는 기자들은 기자를 관두거나, 제대로 된 언론이 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인 채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택한다.


그리고 나는 전자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 자본의 애완견으로 전략한 채 젊은 기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위선자들의 배를 불리는데 일조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이런 회사들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는데 일조하고 싶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한층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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