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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em Sep 12. 2023

[나는 기레기다] 나는 (가끔) 기자다(하)

겁많은 개가 크게 짖는다

겁많은 개가 크게 짖는다


“허위정보 유포 등으로 기자님께서 소송에 연루되고, 수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을 물게 될까 걱정돼 답변드립니다.”     


올해 들은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멘트다. 이 멘트와 비교하면 앞서 들은 말들은 정말 양반이었다. 답변 전문을 보면 답변이 아니라 그냥 협박이었다. 그것도 초등학생이 썼을 법 한 수준의 유치하고 이상한 허위협박. 이번에 취재를 한 곳은 유명 유튜버 겸 작가가 운영하는 회사였는데, 이런 사람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마치 선지자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유튜버가 하는 사업은 내 전공인 심리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고, 학계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심각했다. 큰 문제가 있음에도 이 회사가 버젓이 운영될 수 있는 이유는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심리학 관련된 법적 제재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짜들이 운영하는 야매 회사가 판을 친다.     

 

비슷한 예로 컨설팅 업체가 있다. 컨설팅이란 그럴싸한 말로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많은 업체가 유관경력이나 관련 자격증 없이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회사들의 특징은 ‘업계 1위’, ‘경력 몇 년’, ‘사업체 몇 개 보유’, ‘매출 얼마’, ‘XX상 수상’ 등 각종 있어 보이는 문구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하지만 정말 합법적이고 규모가 있는 제대로 된 기업이라면 전자공시(DART)나 채용 사이트, 하물며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기업정보라도 나오기 마련이다. 이 조차 없는 기업이라면 합리적으로 의심을 해볼 만하다. (개인적으로 애초에 기업 차원에서 경영컨설팅 수준이 아니라면,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최선의 상담은 심리 상담이라고 생각한다.)  


매출은 얼마든지 부풀릴 수 있으며, 사업체를 여러 개 보유했다는 대표는 말 그대로 사업가(목적은 오로지 돈)에 가까운 경우가 더 많지 실제로 해당 분야 전문가인 경우는 많지 않다. 물론 ‘내가 이만큼 버니 능력이 있는 거다’라고 주장할 순 있지만, 이런 논리는 마약유통업자나 사기꾼도 할 수 있다. 


또 이 유튜버 운영한다고 하는 모든 회사에는 수상한 점이 상당히 많았다. 위에 든 예시 중 상당수가 유튜버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실제로 자사 홍보에 사용되는 문구인데, 조사해 보니 퇴사율은 100%가 넘고, 직원들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며, 규모도 여러모로 심각하게 뻥튀기가 돼 있었다.


결과적으로 기사는 잘 작성됐고, 포털에 잘 노출되고 있으며, 아직까지 소송 관련해서 들은 말은 없다. 걱정을 빙자한 협박에 비해서 너무 조용한 것 아닌가 싶다. 이번에 소송이 진행될 경우 판을 키워서 그 유튜버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고 싶었는데 말이다. 겁 많은 개가 크게 짖듯이 거창한 협박의 끝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다. 


무책임 사회


기자생활을 하며 느끼는건, 우리 사회에는 책임감의 부재가 너무나 만연하다는 점이다. 미디어에 일부 좋은면만 노출되는 업계 유명인이나 인플루언서, 회장님들, 정치인들 까지. 자신의 잘못으로 논란이 발생하면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고 반성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진실을 숨기고, 아무도 믿지 않을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며 어물쩡 넘어가려고 한다.


이런 책임회피성 변명은 당시의 대다수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렇게 변명하는 이유가 있다. 그들이 말도안되는 변명이 공식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훗날 시간이 지나면 이들이 공식적으로 한 말 뿐이고, 이들의 말이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대체하게 된다.


이런 변명이 먹히는 원인 중 하나로 언론도 있다. 이들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정말 사회에 대세를 이루는 정도가 아니라면 이에 대해 팩트체크나 진위여부를 확인하지 않는다. 언론사가 이들에게 관심이 없거나 잘못을 깊게 다루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데, 이는 언론이 아닌 기업의 입장에서 손익계산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말이 얼마나 영향력 있을지,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지 보다는 이 이슈를 취재 했을 때 우리 회사에 얼마나 득이 될 지를 따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언론으로써 무책임함 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 하다.


책임감의 부재, 내가 기자생활을 하며 느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가장 큰 문제점이다. 무책임한 누군가의 언행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이런 병은 무관심을 타고 점점 퍼져나간다. 자유와 권력, 지위는 누리고 싶어하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은 지기 싫어한다. 자신의 행동에는 책임질 생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쉽게 말하고 행동하는 걸까. 이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내가 아직 그런 자리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일까. 


자신의 말과 행동에 더 책임감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 내가 기자생활을 하는 내내 놓지 않은 유일한 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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