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흑심, 작은 연필 가게에서 사소한 행복을 사 오

밤에 연필 가게 방문하는 마음

by 지원로그



6시에 회사 문을 나선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 중 한 번. 서교동에서 연남동 끝까지 부지런히 걷는다.

해가 많이 길어져 짙고 흐린 파랑의 하늘을 바라보며 바람 냄새도 맡으면서.

연남동 이자카야와 파스타집들이 노란 조명을 밝힐 때, '여기에 연필 가게가 있어?'라는 생각이 드는 건물에 착했다. 이름도 정겨운 삼천리 자전거 위에 위층. 3층까지 계단을 올라 철문을 열면 누가 꼭 숨겨둔 듯한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연남동 흑심, 작은 연필 가게 흑심
KakaoTalk_20210225_125716827.jpg 연남동 흑심, 작은 연필 가게 흑심

철문을 여는 순간 향 냄새와 연필 향기가 코에 닿는다. 알록달록한 연필 색들을 바라보면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 들어간 어린이의 마음을 한 어른이 서있다.


이 작은 연필 가게 연필마다의 역사과 스토리를 찬찬히 살피며 연필을 고른다. 종이에 사각사각 이름을 적어보기도 하고, 내 나이보다 더 긴 세월을 보낸 연필들을 바라보며 있지도 않았을 추상적인 시간에 향수를 느낀다. 그리곤 정말 신중하게 골라온 빈티지 연필과 지우개를 어쩜 이렇게 포장해 줄까 싶은 종이봉투에 왁스 씰을 붙여 집으로 데려온다.


KakaoTalk_20210225_110224749_01.jpg 이제는 생산하지 않는 DIXON ADROIT 310


책상 앞에 앉아 점원이 해 준 연필 이야기를 생각하며 연필을 깎는다. 집에 전동 연필깎이가 있지만, 연필은 꼭 내가 손으로 돌려서 깎는 연필깎이를 사용하거나, 칼로 깎아야 그 향과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제는 단종되어서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연필, 미끄러지는 듯 부드러운 필기감의 연필, 지금의 파버카스텔이 되기 전 회사의 연필까지 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떨어진 연필 가루도 사랑스러운 것을 보면 이건 분명 연필 이상의 무언가다.


KakaoTalk_20210225_110224749_02.jpg 떨어진 연필 가루와 초록색 연필이 사랑스럽다
KakaoTalk_20210225_110224749_03.jpg 연필깎이 비우기

오늘의 불편한 마음과 내일의 준비로 연필 가게에서 연필을 사 오는 건 분명 멋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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