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오늘 한 가지만 해도 충분합니다.

by 태국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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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아무 일도 없는 오늘, 위빳싸나 | 배수경 | - 예스24



전부 다 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수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흔히 '완벽한 시간'과 '완벽한 장소'를 찾습니다. 행선 30분, 좌선 30분이라는 시간표를 지키지 못하면 실패했다고 자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30년의 세월을 통해 제가 깨달은 것은, 수행은 정해진 규격에 나를 끼워 맞추는 작업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날은 마음이 번잡해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억지로 좌선을 고집하기보다 사원의 개를 씻기던 마음으로 집안일을 하거나 가벼운 산책을 하며 '행선'으로 전환해도 좋습니다. 하나를 건너뛰었다고 해서 수행이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의 상태에 맞춰 도구를 고르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에피소드 한자락] 길은 나누어지고, 마음은 남는다.


1. 나의 다정한 길잡이, 너이 언니

사원 생활이 낯설고 태국어 법문이 막힐 때마다 곁에서 조용히 그 뜻을 풀어서 설명해 주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보다 앞서 수행의 단계를 밟아나가던 너이 언니였습니다. 그녀는 영리했고, 제가 보지 못하는 마음의 결을 짚어주는 섬세한 안내자였습니다. 그녀가 있었기에 저의 수행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2. 찰나의 흔들림, 그리고 떠남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수행에 정진하던 그녀가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흥분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 강력한 현상이 그녀를 덮친 듯했습니다. "이제 다 알 것 같아." 짧은 선언과 함께 그녀는 홀린 듯 사원을 떠났습니다. 수행의 길에서 마음의 중심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수행의 부작용이라며 혀를 차는 이들도 있었지만 저에겐 큰 충격이자 슬픔이었습니다.

3. 람푼의 그 집, 여전히 평온한 그녀

그 후 저는 람푼이라는 곳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사람들의 앞날을 봐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타락'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제가 마주한 그녀의 눈빛은 예전 사원에서처럼 맑고 평온했습니다. 그녀는 세속적인 부를 탐하지도,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찾아오는 이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자신이 보는 대로 길을 일러주며 그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수행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4. 각자의 리듬, 각자의 길

그녀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위빳싸나라는 거대한 강물에 몸을 담갔을 때, 어떤 이는 강을 건너 저편으로 가고, 어떤 이는 강물에 몸을 씻으며 그 자리에 머뭅니다. 정통의 길은 아닐지라도, 그녀는 수행을 통해 얻은 맑은 눈을 타인의 슬픔을 닦아주는 데 쓰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다 안다"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스님은 사원을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도, 람푼에서 누군가의 운명을 읽어주는 지금의 모습에서도 그녀만의 리듬을 읽고 계셨던 건 아닐까요.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각자가 선택한 삶의 모양대로 깨달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람푼의 작고 소박한 집에서 그녀를 마주했을 때, 나는 비로소 안도했다. 그녀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모양으로 세상을 안아주고 있었으니까.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루앙뿌 텅 스님의 미소 안에 머물고 있었다."


나만의 리듬과 스피드를 찾는 법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타인의 속도에 맞춰 달리는 법만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위빳싸나는 나만의 고유한 리듬을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남들보다 늦게 걷는다고 해서, 혹은 남들만큼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고 해서 조급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하는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깨어 있는가'입니다. 단 1분을 하더라도 온전히 나만의 속도를 느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1분이 모여 30년이 되고, 그 30년이 모여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삶의 뿌리가 됩니다.


지하철역까지의 행선, 잠들기 전 5분의 좌선


수행의 장소는 왓람뻥 사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출근길 지하철역까지 걷는 동안 발바닥에 닿는 지면의 감각을 느끼는 것, 점심 식사 후 커피 잔의 온기를 온전히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잠들기 전 배의 오르내림을 딱 세 번만 지켜보는 것. 이 모든 것이 위빳싸나입니다.

오늘 하루, 그 수많은 찰나 중에서 단 한 가지라도 정성껏 수행해 보세요. 그 작은 시도가 당신의 불면을 깨우고, 꽉 막힌 일상의 흐름을 순리대로 돌려놓는 기적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수행 노트] 오늘 당신이 선택한 '단 하나의 알아차림'


명상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 중 가장 마음이 가는 동작 하나만 골라보세요.

컵을 드는 손길,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 혹은 깊은 한숨 뒤에 찾아오는 짧은 고요.

그 한 가지에만 온전히 머물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훌륭한 수행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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