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음으로 말하기:쁘랍다 윤, 25년의 우회로 8

8. 침묵이라는 격문: 왜 지금 쁘랍다 윤인가

by 태국학연구소

8. 침묵이라는 격문: 왜 지금 쁘랍다 윤인가


쁘랍다 윤의 25년 작품세계를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해왔다.’

2000년 『ความน่าจะเป็น』(쾀나짜뻰, 개연성, 확률)이 보여준 불확실성의 서사는

IMF 위기 이후 소외된 방코 청년들의 불안을 포착했다.

11년의 장편 공백기는 단순한 휴지기가 아니라

영화와 디자인을 가로지르는 전략적 ‘우회’였으며,

검열의 시대에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도 진실을 전하는 법을 익히는 수련의 시간이었다.

마침내 2018년 『베이스먼트 문』에 이르러,

그의 메타픽션은 고도의 정치적 상상력으로 진화했다.

그는 쿠데타를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 쿠데타 이후의 삶을 말하고,

검열을 비판하지 않으면서 검열의 조건을 드러낸다.

혁명을 선동하는 대신 혁명의 불가능성을 사유하는 것,

이것이 쁘랍다가 선택한 저항의 방식이다.


2024년, 영국 매체 WePresent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태국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선'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태국에서는 직접 말하는 것이 안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 했다.

그리고 “문학은 말할 수 없는 곳에서 말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직접적인 발언이 불가능한 구조속에서

은유와 상징이 어떻게 유일한 생존 전략이자 저항 수단이 되는지 덧붙였다.

결국 그에게 문학이란, 침묵이라는 가장 거대한 언어로 써 내려간 ‘지하의 격문’인 셈이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21년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상을 받았다.

아홉 번째 태국인 수상자였다.

그는 소감에서 이렇게 썼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이렇게 명망 있는 상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당혹스럽습니다."

그의 소감은 권위를 의심하고, 확정을 피하는 쁘랍다다운 겸손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그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의심하는 태도’에 있다.


21세기의 권위주의는 과거와 다르다.

노골적인 폭력보다는 미묘한 검열, 법적 제재보다는 자기검열,

물리적 탄압보다는 알고리즘 통제로 작동한다.

말할 수는 있지만 크게 말할 수 없고

저항할 수는 있지만 효과적으로 저항하기는 어렵다.

이런 시대에 쁘랍다 윤의 문학은 직접적인 투쟁이 불가능할 때,

형식을 정치화 하고 발화 조건 자체를 질문함으로써 새로운 저항의 모델을 제시한다.

그의 영향력은 태국을 넘어 아시아의 여러 나라,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작가들에게 닿고 있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말할 수 없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


그의 행보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2021년에는 넷플릭스 태국 시리즈 <Bangkok Breaking>의

총괄 프로듀서이자 공동 작가로 참여했고,

2022년 세상을 떠난 친구이자 동료 작가 Wad Rawee를 떠올리며

2023년, 영국 문예지 GRANTA에 에세이를 기고했다.

2024년에는 이탈리아 잡지 THE PASSENGER 태국 특집호에

태국 힙합 'Bangkok Legacy'에 대한 에세이를 기고했다.

일본에서 전시를 열고, 영어로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디자인을 계속한다.

그는 여전히 쓰고, 만들고, 실험한다.


쁘랍다 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의 방식대로라면, 아마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문학은 처음부터 "끝나지 않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의미를 유예하고, 해석을 열어두며, 확정을 거부하는 것.

어쩌면 그 영원한 미완결성이야말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완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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