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어로 보는 언어의 역전

모욕이 훈장이 되는 순간

by 태국학연구소

태국어로 보는 언어의 역전:

모욕이 훈장이 되는 순간

말은 뒤집힌다.

누군가를 비웃기 위해 던진 비수가 어느 순간 그 당사자들의 자랑스러운 정체성이 된다. 처음엔 상처였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 훈장이 된다. 이것은 태국어만의 현상이 아니다. 언어가 숨 쉬고 사람의 온기가 닿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태국에서 일어나는 이 ‘언어의 역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금 특별한 구석이 있다. 어떤 단어는 엄격한 학교 교칙에서 탈출했고, 어떤 것은 거친 인터넷 게임판에서 태어났으며, 심지어 어떤 것은 평범한 채소 바구니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이 모든 단어는 지금 태국 젊은이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뜨거운 언어가 되어 있다.


1. ติ่ง(띵) — 교칙이 가둔 단발머리, 팬덤이 되찾다

시작은 ‘귀밑 3cm’였다. 태국 학교는 오랫동안 여학생들의 머리 길이를 엄격히 규제했다. 딱 귓불까지만 허용되었는데, 태국어로 귓불을 ติ่งหู(띵후)라고 부른다. 여기서 유래한 ติ่ง(띵)은 단발머리 여중생을 가리키는 평범한 단어였다.

하지만 이 단어는 곧 비하의 화살이 되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철없는 여중생처럼 맹목적으로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사람"을 조롱할 때 ติ่ง(띵)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성을 잃고 빠져드는 모습이 마치 생각 없는 어린 학생 같다는 냉소였다.

그런데 팬덤이 그 화살을 손으로 잡아챘다.

2010년대 K-팝이 태국을 휩쓸며 팬덤이 거대해지자, 팬들은 스스로를 ติ่ง(띵)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ฉันเป็นติ่ง BTS (찬 뻰 띵 비티에스) 나는 BTS의 '띵'이야.

방어하거나 부정하는 대신, 그 단어를 정체성으로 내세운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뜨겁게 좋아하는데, 그게 뭐 어때서?"라는 당당함. 이제 ติ่ง(띵)은 비하어가 아니라, 자신의 열정을 증명하는 ‘팬덤’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한국어의 '덕후'가 걸어온 길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2. เกรียน(끄리안) — 빡빡머리에서 인터넷 트롤로

เกรียน(끄리안)의 원래 뜻은 아주 단순하다. "바짝 깎인, 짧은"이라는 형용사다. 태국 남학생들이 교칙에 따라 짧게 깎아야 했던 그 빡빡머리가 바로 เกรียน(끄리안)이다.

2000년대 초, PC방에 모여든 빡빡머리 남학생들 중 일부가 온라인에서 공격적으로 굴며 분위기를 망치자 사람들은 그들을 เกรียน(끄리안)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빡빡머리=무개념 초딩’이라는 연상 관계가 단어로 굳어진 것이다.


“อย่ามาเกรียนนะ” (야 마 끄리안 나) 트롤 짓 하지 마 / 분위기 망치지 마

재미있는 점은 앞서 본 ติ่ง(띵)은 긍정적으로 뒤집혔지만, เกรียน(끄리안)은 여전히 부정적인 의미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왜일까? ติ่ง(띵)을 가진 팬덤은 조직적으로 뭉쳐 단어의 의미를 재정의할 힘이 있었지만, เกรียน(끄리안)이라 불린 트롤들은 각자 흩어진 개인이었기 때문이다. 단어를 되찾아올 ‘집단의 힘’이 승패를 갈랐다.


3. เผือก(프악) — 욕설을 가리던 채소가 유머가 되다

이 단어의 여정은 조금 더 재치 있다. 태국어에는 ‘오지랖, 남의 일에 참견하다’를 뜻하는 아주 거친 속어 ’쓰악’이 있다. 일상에서 직접 내뱉기엔 민망한 발음이다. 그런데 이 욕설의 첫 글자만 살짝 바꾸면 เผือก(프악: 토란)이 된다.

처음엔 욕을 감추기 위한 ‘방패’였다. 온라인에서 직접적인 욕 대신 토란이라는 단어로 돌려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이 ‘토란’ 자체가 새로운 의미를 획득했다.


“สายเผือก” (싸이 프악) 오지랖쟁이 / 남의 일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

이제 เผือก(프악)은 거친 욕이라기보다 가볍고 귀여운 농담이 되었다. 욕설을 방탄조끼로 감싸서 쓰다 보니, 어느새 그 방탄조끼 자체가 패션 아이템이 된 격이다. 채소의 이름을 빌려오는 과정에서 비난의 날카로움은 무뎌지고 유머가 깃들었다.


4.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재의미화’의 마법

언어학에서는 이 현상을 재전유(Reappropriation) 혹은 재의미화(Semantic Reclamation)라고 부른다. 혐오의 대상이 된 집단이 그 공격의 언어를 직접 가져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다시 정의해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연대하는 집단: 팬덤처럼 서로를 의식하고 결속하는 강한 힘.

유머와 여유: "그래, 나를 그렇게 부르겠다고? 그럼 난 기꺼이 그렇게 불러주지"라는 당당한 태도.

시간: 단어의 의미가 뒤집히기까지의 인내.

영어권의 'Queer(퀴어)'나 'Nerd(너드)' 역시 한때는 모욕이었으나 지금은 당당한 정체성이 되었다. 언어가 살아 움직이는 곳이라면 이 역전의 드라마는 반드시 일어난다.


마무리. 단어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이 주인이 아니다. 그 단어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주인이다. 특히 그 단어가 ‘나’에 관한 말일 때, 당사자들이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결국 그 단어의 최종적인 의미를 결정한다.

ติ่ง(띵)은 ‘철없음’에서 ‘열정’으로, เผือก(프악)은 ‘비난’에서 ‘유머’로 탈바꿈했다. 태국어 슬랭을 들여다보는 것은 단순히 단어의 뜻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 단어를 둘러싸고 태국 사람들이 어떻게 싸우고, 웃고, 자신을 지켜왔는지에 대한 ‘살아있는 역사’를 읽는 일이다.


“ฉันเป็นติ่ง และมันก็โอเคมากๆ”

(찬 뻰 띵 래 만 꺼 오-케 막 막)

나는 '띵'이야. 그리고 그게 완전히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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