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충돌하고 있다

by 태국학연구소

저녁 5시 30분, 다소 이른 시간의 식당.
방 한곳을 채우고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70대와 80대의 친인척간 10여명이었다.

그들에게 이 시간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하루의 리듬에 맞는 자연스러운 식사 시간이다.

문제는 한 장면에서 시작되었다.
한 80대 남성이 여성 직원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불렀다. 그는 그것이 무례한 행동이라고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직원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왜 몸을 건드리느냐는 말이 돌아왔다.

신체적 접촉에 대한 사회적 기준은 분명 달라졌다.
과거에는 문제로 인식되지 않던 행동이, 이제는 명확한 경계 침해로 받아들여진다. 이 변화는 사회가 축적해 온 경험과 문제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그 변화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속도로 체화되지는 않는다.
특히 오랜 시간 다른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에게는 그 간극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40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가 오랜만에 가족들과 식사를 함께한 이 남성에게, 그 순간의 행동은 의도된 위반이라기보다 몸에 익은 방식의 연장선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행동이 현재의 기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간극이 실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또 어떻게 다루어지는가에 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일행 중 60대 여성이 얼른 나섰다.
그는 갈등을 키우지 않기 위해 먼저 움직였고, 자신의 책임이 아님에도 직원에게 대신 사과했다.

서로 다른 기준이 충돌한 자리를, 또 다른 세대가 임시로 봉합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식사가 끝나갈 무렵, 상황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게의 사장이 등장했고, 당사자뿐 아니라 중재자였던 여성까지 불려 나와 카운터 앞에 세웠다.

CCTV를 보니 명백한 성추행이다. 그리고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했다.

설명은 길어질 필요가 없었고, 선택지는 단순했다. 사과하거나, 아니면 법적 문제로 가거나.

‘성추행’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순간, 대화의 성격은 급격히 바뀌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보다 규정이 앞섰고, 설명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80대 남성은 자신의 행동이 왜 그런 문제로까지 이어지는지 충분히 납득하지 못한 채 방어적으로 변해갔다.

"사과하라면 하는거지 뭔 말이 많냐"는 업주는 "경찰 부르면 되지, 뭘 잘못한지도 모르는게"라는 말로

결국 경찰이 출동했다. "시비가 붙었다"는 말에 경찰은 12-3명 정도 출동을 하였다.


현장은 확인되었고, 양측의 이야기가 오간 뒤 상황은 사과로 마무리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질서가 회복된 셈이다.

다행히 더 큰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80대 남성은 결국 그 자리를 받아들이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과했다.

그가 완전히 납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는 현재의 기준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나 그 사과가 모든 것을 정리해 주지는 않았다.

사과 이후에도 업주의 태도는 충분히 가라앉지 않은 듯 보였다.
말투에는 여전히 긴장이 남아 있었고, 대응 역시 부드럽게 전환되기보다는 상황을 계속 붙잡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 과정에서 스마트폰 카메라가 들이대지는 장면은, 대화를 이어가기보다 상대를 기록의 대상으로 전환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이미 갈등은 끝났지만, 관계는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장면에서 특히 눈에 남는 것은, 상황을 정리했던 60대 여성의 위치였다.


그는 갈등을 줄이기 위해 먼저 나섰고, 책임이 없음에도 대신 사과했다. 그러나 이후의 과정에서 돌아온 것은 감사나 배려가 아니었다. 오히려 거칠게 남아 있는 긴장과 단절된 응대 속에서, 그는 조용히 자리를 떠나야 했다. 이미 끝난 줄 알았던 상황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 안에서 ‘왜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지’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 감정은 단순한 불쾌를 넘어선다. 그것은 결국 존중받지 못했다는 감각, 모멸감으로 이어진다.


이 장면에서 문제는 단순히 한 노인의 행동에만 있지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행동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었는가에 있다.

직원의 불쾌감은 정당하다. 업주의 개입 또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당한 문제 제기가 언제나 정당한 방식으로 수행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점점 더 ‘옳은 말’을 빠르게 꺼낼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말을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데에는 여전히 서툴다.

그날 식당에서 벌어진 일은 단순한 소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시간과 기준이 한 공간에서 충돌하고,

그 충돌을 다루는 방식이 또 다른 갈등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예의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서로 다른 기준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그 사이를 이어줄 언어와 태도를 우리가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데 있다.


사는 일이 참...고되다.





작가의 이전글타인의 전쟁, 우리의 기억: 한국전쟁과 태국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