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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우나고우나 Mar 18. 2024

무채색 대지의 겨울

아이슬란드

 유난히도 검던 대지 위에, 아주 두텁게 쌓인 흰 눈. 세찬 바람에 의해 드문드문 눈이 쓸려간 자리엔 잿빛 땅이 보인다. 긴 도로 위에, 시선 끝까지 보이는 거라곤 검은색과 흰색 그리고 잿빛뿐. 


아이슬란드의 겨울은 무채색이다.


디르홀레이 (Dyrhólaey)



 위엄 있다 못해 위압적이고, 실로 웅장하여 공포감마저 든다. 상상을 압도해 버리는 이 자연을 보면, 지구에 이런 비현실적인 장소가 존재해 왔구나. 폭포를 보고 되돌아가는 길, 그 찰나에 날씨가 또 변덕을 부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휘청이는 눈바람, 아니 눈 폭풍이 분다.


 남겨졌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려가고, 이정표가 눈에 덮여 되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온 세상이 하얘 감각을 상실해 버리고 방향성도 잃게 된다. 고립될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힐 뻔하다, GPS에 의지해 겨우 돌아간다. 아이슬란드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더라.


'if you don't like the weatehr now, just wait 5 minutes.'

(지금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5분만 기다려봐)



싱벨리어 국립공원 (Thingvellir National Park)



 헌팅이다. 말 그대로 오로라 헌팅. 오로라 투어, 오로라 여행이 아닌 오로라 헌팅.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간혹 나타나기도 하고, 준비된 자에게조차 잡히지 않기도 하다. 이 환상을 쫓아 아이슬란드에 왔냐고 물으면, 그럴지도 모른다.


 구름도 없고, 그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을 가장 어두운 곳으로. 5분마다 바뀌는 아이슬란드의 날씨를 넘어, 인터넷의 성공 후기 글들을 쫓아 추적한다. 오로라 지수가 3 이상이면 볼 수 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오로라가 걸려 있는 이 숙소 사진처럼, 여기라면 우연히라도 보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오로라 헌팅 투어를 이용하면 선명한 초록색의 빛의 오로라를 만나게 되진 않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계속 애매한 대답이라고, 그래서 어쩌란 거냐고 물어도 어쩔 수 없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는 걸.



오로라는 아닌 어느 멋진 풍경



 아이슬란드 여행이 다른 나라 여행보다 재밌는 이유는, 혼자 여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투어를 이용하던, 일행을 모아 팀을 꾸리던. 불과 얼음의 대륙을 헤쳐나가기 위해선 타인이 필요하다.

 

 어른들께 지겹도록 들었던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라는 말이 새삼 생각난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신념과 가치관이 부딪히고, 생각과 습관이 어울리지 못하다. 상대의 시간은 나의 28년과 동화되지 못하며, 고작 얕은 공감으로 감히 서로를 이해해 보려 한다. 요즘 세대의 개인주의라고? 그것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행에 서로가 필요한 점은 마냥 비싼 물가의 부담을 나누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혼자라면 하지 않았을 즉흥적인 충동을 질러버리기도 하고, 광활한 자연 앞에서 단순하고도 유치한 미사여구로 너의 감상과 나의 감정을 나누기도 한다. 얼어버린 도로에서 엔진 브레이크를 사용해야 된다는 점을 배웠고, 빙하 트래킹을 하며 같이 렛 잇 고(let it go)를 불렀다. 나에겐 없는 선곡 센스에 감명까지 받았다.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에 어서 와보라고 손짓하며 소리친다. 빨리 이 자리에 서서 포즈 잡아보라고. 매 저녁 도란도란 식탁에 둘러앉아 오늘의 여행을 되짚고, 내일의 일정을 나누고. 게다가 식당에서 혼자 못 먹던 런치세트를 같이 주문해서 나눠 먹을 수 있는걸.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라서', '개인은 미성숙한 객체라서'라는 그런 심도 있는 이유가 아니다. 그저 낯선 곳에서 이 재미를 같이 나눌 누군가가 있어 내 여행은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의 여행과 어느 날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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