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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산 Mar 18. 2019

훔쳐보고 싶은 욕망

관음의 시대, 인간 욕망에 대하여

관음의 시대다. 

뉴스를 접하다보면 사회에 팽배한 관음증(觀淫症)이 인간 지성을 파괴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앞에서 개탄하면서 뒤로는 탐닉하는 이중성은 스스로가 가해자라는 인식조차 없다. 


감추고 싶은 은밀한 부분을 파헤치거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싶은 욕망은 오랜 인간의 본성이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스크린에 집중하게 하는 영화 또한 관음의 매체다.     


이러한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 ‘피핑 톰’은 11세기 영국 코벤트리의 영주 레오프릭의 부인 고디바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19세기 화가 존 콜리어의 그림 속 젊고 아름다운 고다이버 부인이 알몸 상태로 백마를 타고 마을을 지나가고 있다. 황금 재갈을 물린 멋진 백마와 고급스런 자주색 안장, 사자와 방패 무늬의 문장에서 그녀의 출신을 짐작할 수 있다. 


벗은 몸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머리카락으로 애써 그녀의 몸을 가려보려하지만 여의치가 않다. 


그녀가 이렇게 벌거벗고 말을 타고 가는 것은 영지 내의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영주인 레오프릭 백작은 가혹한 세금 징수로 코번트리 사람들에게 큰 원성을 사고 있었다. 그는 백성들의 하소연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결국 백성들은 백작의 아내 고다이버에게 부탁하게 된다. 그들의 처지를 알게 된 고다이버는 남편을 찾아가 그들의 세금을 줄여달라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레오프릭은 단호히 거절하다 아내의 반복된 청에 질려 그녀가 들어줄 수 없을 정도의 제안을 했다. 세금을 줄이고 싶으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자신의 영지를 한 바퀴 돌고 오라는 것이었다.     


품위를 목숨보다 중하게 여기는 아내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아내 고다이버는 엄청난 수치심을 감내해야함에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소문은 급속히 퍼져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그들은 고다이버가 알몸으로 마을을 지나는 동안 모두 집 안에 있으며 그녀를 위해 모든 문을 닫기로 했다. 

존 콜리어의 '고다이버 부인'

백마 위에 올라 탄 채 동네의 어귀로 들어섰지만 거리에는 단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모든 집과 가게의 문과 창문은 닫혀 있었다. 백작 부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대한 존중과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였다. 그런데 거의 한 바퀴를 돌며 마무리 할 쯤 재단사였던 톰은 문 틈으로 고다이버의 나신을 훔쳐봤다. 아름답기로 이름난 여인이었기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몰래 본 것이었다.      

흑심을 채운 톰은 장님이 되었다고도 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고도 한다. 고다이버 부인의 숭고한 행위를 단지 호기심만으로 더럽힌 톰을 아무도 동정하지 않았다. 


또한 그의 행각은 ‘피핑 톰(Peeping Tom)’이라는 관용어로 정착돼 관음증과 엿보기를 표현하는 말이 되었다.      


이러한 고다이버 부인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은 실제하지만, 발가벗고 말을 탄 이야기는 13세기 이후의 문헌에서 최초로 발견된다.      


‘피핑 톰’은 훗날 영화의 소재로도 쓰인다. 

마이클 파웰의 1960년 영화로 원제가 ‘피핑 톰’인 <저주의 카메라>는 관음증의 도를 넘어 여자를 연쇄 살인하는 한 남자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가 당시 관객들을 그토록 당혹케 한 이유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훔쳐본다는 행위를 즐긴다는 걸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는 숨어 있고 내가 보고 있다는 걸 상대방이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분명 변태의 행동이지만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런 변태의 행위에 동참케 하고 흥분케 한다. 


그로 인해 이 영화는 저주를 받고 만 것이다. 

이 영화의 포스터는 열쇠 구멍 뒤에서 흥분과 긴장으로 가득한 채 뭔가를 바라보는 눈을 커다랗게 확대해서 보여준다. 

저주의 카메라의 포스터

이 눈은 혐오스럽고 무섭지만 이것이 너희 인간이 갖고 있는 본성 중 하나라고 이 포스터는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러한 관음의 역사는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구약성서의 외경인 『다니엘서』 13장에 나오는 수산나와 나이든 원로의 이야기 역시 관음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수산나는 바빌론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았던 요하김의 아내였다. 그녀는 방문객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면 정원을 나와 산책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던 중 아무도 없는 정원에서 목욕을 하고 싶었다. 그녀는 하녀들에게 향유와 옷을 가져오라고 시킨 뒤 목욕물에 몸을 담근다. 그러한 그녀를 몰래 훔쳐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마을의 원로들이었다. 수산나의 아름다운 모습에 음심을 품어오던 그들은 우연히 수산나가 목욕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잠시 후 그녀에게 다가가 자신들과 통정할 것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이에 앙심을 품고 수산나가 정원의 나무 아래서 젊은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았다고 고발했고 수산나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때 유대 청년 다니엘이 구원의 손을 내밀었다. 다니엘은 두 원로들을 따로 불러 그녀가 관계를 맺은 게 어느 나무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한 사람은 유향나무, 한 사람은 떡갈나무라고 답하면서 거짓임이 드러났다.   

    

화가 틴토레토는 이 일화 가운데 수산나의 목욕 장면을 포착해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틴토레토의 '목욕하는 수산나'

그림에서 뽀얗게 빛나는 우윳빛 피부의 수산나의 알몸은 기품 있고 우아한 얼굴과 대비돼 더욱 돋보인다. 그녀는 지금 자기 집 정원에서 목욕하고 있기에 몸을 가릴 이유가 없다. 걱정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편안한 표정이다.      

아름다운 정원은 장미꽃 나무가 울타리 삼아 자라고 있어 바깥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다. 그녀는 지금 한가로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있다. 한쪽 다리는 물에 담근 채, 한쪽 다리를 모아안고서 거울 속의 자신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그야말로 심신의 무장해제, 그녀는 지금 평화롭다. 

하지만 영화라면 우리는 다음 장면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장로가 수산나에게 다가가 통정을 강요하며 협박할 것이다. 평화롭고 순진하던 그녀의 얼굴은 놀람과 공포로 변했을 것이다.     


훔쳐본다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다시 화제다. 


한국 사회에서 몰래카메라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은 1991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연예인들을 악의 없이 속여 넘기는 포맷으로 처음 등장한 몰래 카메라가 처음이었다. 이후 공익성 몰카 프로그램 ‘이경규가 간다, 양심냉장고’는 ‘몰카’라는 단어를 사전에 올리게 되는 계기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 단어가 뭔가 음습하고 비도덕적인 의미로 다가오게 된 것은 카메라가 초소형화되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도구가 되면서부터다. 기술의 발달이 착한 몰카에서 사악하고 음습한 몰카로 인식을 바꿔놓은 것이다. 카메라가 인간의 관음적 성적 욕망과 결합하면서 범죄의 수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에 SNS의 발달은 더욱더 관음을 부추기는 꼴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피해자의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다. 가해자가 특정되고 나면 사람들은 사냥개가 여우사냥하듯 피해자의 신상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그들의 잔인함이 공익인 양, 정의로운 것인 양 이야기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들도 동조자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성적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그 상처에 다시 소금이 뿌려진다.     

 

분노한 이들이 청와대로 달려가 ‘이게 나라냐’고 외치지만 결국 이것은 인식전환이 없으면 치료될 수 없는 것이다. 요즘 문제가 되는 정〇〇의 SNS 단체 대화방의 글을 보면 과연 이들에게 피해자의 인권이란 무엇인가?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고 외치는 이들의 소리는 들리는지 묻고 싶다. 

영상을 유포하는 이, 영상을 삭제해주는 일을 하는 ‘디지털 장의사’마저 한통속이었다는 기사는 우리를 아연실색케 한다. 피해자들은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고 싸우는데 그 심각성을 외면하거나 깍아내리기에 급급하다. 심지어는 역차별이란 주장까지 내놓는다.     


사회가 건전해지려면 모두가 나서야한다. 순수하고 인간애가 넘치는 톰이 되어 ‘피핑 톰’들과 싸워야 한다.               


고산_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 건축공학(학사), 환경대학원(석사), 공과대학 건축대학원(박사), 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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