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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산 Apr 11. 2019

황홀한 비행은 충격의 불시착으로

황홀한 비행은 충격의 불시착으로     


상징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 우리에게 ‘악의 꽃’으로 잘 알려진 그는 시에서 마약의 황홀경을 너무도 아름답게 표현한다. 

‘내 머릿속에는 예쁜 고양이가 산책을 한다’고 표현한, 그리고 ‘구름은 술과 마약 같다’고 말한 시인 보들레르는 아편 중독 때문에 금치산자 선고까지 받았다.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은 삶은 지옥이라고 했던 시인 아르투르 랭보, 그런 랭보에게 총을 겨눴던 시인 폴 베를렌도 술과 마약에 절어 자신을 내팽개치듯 살았다.     


<멋진 신세계>의 작가이자 유럽의 대표적 지성인이던 올더스 헉슬리는 그의 나이 60에 <지각의 문>이라는 책을 쓴다. 

올더스 헉슬리

스스로 마약을 복용한 뒤 8시간 동안 경험한 세계를 글로 옮겼다. 그가 복용한 마약은 메스칼린이란 것이었다. 이는 선인장의 한 종류에서 추출한 물질로 오랜 기간 인디언들의 종교의식에 사용되었던 것이었다.     

과학과 이성, 계몽주의로 상징되는 지식인 집안 출신의 그에게 어울리는 체험은 분명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주목받은 것은 메스칼린으로 인한 감각의 놀라운 변화를 너무도 생생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일상적인 지각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게 되면 잠깐 동안일지라도 초월한 시간 속에서 언어나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아무런 조건도 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헉슬리는 이후 더 깊이 마약에 빠져들었고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마약을 놓지 못했다. 

죽음을 앞두고 말도 못하는 상태에서도 그의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건네준 것은 “LSD(환각제) 100mg을 근육주사로 놓아주시오”라고 적힌 종이쪽지였다. 그에게 마약은 온전한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라고 스스로 믿고 있었다.     


우리가 마약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뇌와 척수 등에 작용한다.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을 제어하는 중추신경계가 뇌와 척수에 의해 연결된다. 마약은 신경을 따라 그 작용을 증진시키거나 억제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마약이 의존성이 있는 물질이라는 것이다. 


그 의존성으로 인해 끊었을 경우 호흡곤란과 동공확장 등의 약한 증상에서 시작해 심한 경우에는 환각, 환청, 망상 등의 증상까지 나타난다.      

환각, 환청 등의 증상은 고대 그리스의 아폴론 신전을 지키는 델포이의 무녀 퓌티아에게서 나타났던 대표적인 증상이다. 실제로 무녀가 신탁을 내릴 때면 늘 환각상태에 있다고 한다. 그녀는 삼족의에 앉아 중얼거리듯 신의 뜻을 전한다. 

콜리어, '무녀 퓌티아'

무녀 퓌티아의 이러한 중얼거림은 중독 상태에서 나온다. 신전의 지하에서는 화산가스가 올라오는데 이 가스 역시 독성을 지닌 ‘향정신성’ 물질로 이 가스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다.

몽롱한 상태에서 중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접신’이라고 불리는 상태로 비쳐 사람들의 신비감을 더욱 키웠을 것이다.      


퓌티아가 흡입한 화산가스가 천연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인공적인 형태로는 진통제로 개발된 모르핀이 대표적이다. 양귀비의 열매껍질로부터 채취된 ‘모르핀(Morphine)’이다. 그래서 양귀비는 ‘기쁨을 주는 식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 물질은 1800년대 초 독일인 제르튀르너에 의해 양귀비로부터 분리되었다. 그가 그리스 신화의 ‘꿈의 신(Morpheus)’에서 따오면서 지금까지 ‘모르핀(Morphine)’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꿈의 신(Morpheus)’

모르핀은 처음 진통제로 사용되다 점차 마취와 동공축소, 항이뇨호르몬 분비 촉진에 사용되었다.     

초기에 모르핀은 환자들이 고통은 줄어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약물에 중독되어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중독의 문제가 떠오르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곳이 독일 제약사 바이엘이었다. 그들은 모르핀을 합성해 영웅(hero)이란 거창한 이름이 들어간 헤로인(heroine)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역시 중독은 여전했다. 오히려 악마의 마약이란 오명을 얻기까지 했다.     

이후 다양한 종류의 마약이 등장하고 그들의 유혹은 멈춤 없이 질주했다. 


죽음을 부르는 손짓 이란 걸 알면서도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또한 그 유혹은 다양한 얼굴로 찾아온다. 건조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등등.     

 

우리에게 익숙한 예술가들 또한 그 유혹에 빠진 사람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유대인 출신의 이탈리아 화가 모딜리아니다. 하얀 시트 위에 누워 뒤를 돌아다보는 이 누드화는 1917년 그의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나부(裸婦)’ 시리즈 중 하나다. 누드에 대한 인식이 보수적이었던 당시로 봐서 이 작품은 상당히 외설적으로 보이는 작품이었다. 이 때문에 전시되자마자 큰 논란도 일었지만 몇 년 전 이 작품은 뉴욕 소더비의 경매에서 1억5000만 달러(약 1621억 원)에 낙찰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작품의 벌거벗은 채 누워있는 여인은 하얀 시트에 대비되는 건강한 피부가 인상적이다. 모딜리아니는 그런 여인의 비스듬한 뒷모습을 극적으로 잡아내고 있다. 마네의 ‘올랭피아’가 관객에 대해 도발적인 시선을 보내듯 그녀 역시 고개를 돌려 관객과 시선을 맞추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방금까지 반듯하게 누워 있다가 누군가 들어오자 몸을 돌려 확인하는 듯한 자세, 사슴처럼 긴 목, 모딜리아니의 특색이 잘 드러나는 우수에 찬 갸름한 얼굴과 긴 코, 말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꾹 다문 입의 묘사에서 우리는 아프리카 원시조각을 떠올린다.     


모딜리아니는 이 원시성을 찾아 헤매왔다. 그러한 그의 여정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데 그의 원시성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한 것이 술과 마약이었다. 19세기 미술의 전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의 행보는 충돌과 부조화였다. 


그 부조화를 견뎌내기 위해 시작한 술과 마약은 그를 중독으로 이끌었다. 결국 그는 이 그림을 그린 지 3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마약에 의지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끈 또 다른 작가가 있다. 모딜리아니만큼이나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 바스키아다.     

바스키아 작품에는 크게 두 가지의 키워드가 자리잡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는 흑인과 평생 그를 따라다닌 죽임이다.

그를 따라다니는 죽음의 이미지는 인체 장기와 해골이다. 그가 죽기 전에 그린 ‘죽음을 타고’라는 작품을 보면 이미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듯 어둠 속을 치달리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릴 즈음 그의 정신은 이미 황폐해져 있었다.      

그의 정신이 황폐해진 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급격히 얻은 명성을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워했고, 각종 구설수와 추문까지 그를 괴롭혔다. 이때 시작한 마약은 친했던 앤디 워홀과 사이가 멀어지면서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앤디 워홀이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도 전에 사망하자, 좌절한 바스키아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워홀이 죽은 지 1년이 지나 그 역시 급격한 약물 중독으로 사망하게 된다. 이때가 그의 나이 27살 되던 해였다.     

 

예술가들의 마약에 의한 약물중독은 문학이나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과 행위예술 등 예술계 전반에 확산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한국 사회에서 예술가나 연예인뿐만 아니라 정, 재계의 사회지도층과 그 자녀들, 일반 회사원, 심지어 가정주부들까지 파고들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한때 마약 청정국이란 지위를 자부하던 한국이 어느 순간 마약공화국으로 바뀌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중독이 개인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넘어 사회 문제까지 일으킨다는 점이다. 마약에 의한 중독은 사회적 비용이 다른 어떤 비용보다 크다. 그만큼 그 유혹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인 프로그램이 가동된다.      


한국 사회가 여기에서 막지 못하거나 방치한다면, 사회를 넘어 국가의 미래마저 파괴할 수 있다. 가까운 예로 중국의 경우 마약으로 인해 국가의 운명마저 몰락으로 기운 적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아편전쟁’이 그것이다. 


영국은 중국산 차(茶)의 수입으로 청나라와 무역에서 막대한 적자가 발생하자 그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중국에 아편을 밀수출하기 시작했다. 영국산 아편은 정부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동안 순식간에 중국 대륙 내 모든 지역, 모든 계층으로 파고들었다. 아편이 수입된 지 불과 40년 만에 중국의 아편중독자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아편이 수입된 지 불과 40년 만에 중국의 아편중독자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사람들 사이에서 아편은 기호품 정도로 취급되었다. 그러다보니 중국의 사회, 경제 시스템은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결국 중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아편을 싣고 온 영국 상선을 불태워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아편전쟁을 불렀고, 중국으로서는 자국의 영토를 빼앗기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후 일본과의 전쟁에서의 패배하고 서구와 일본의 반(半)식민지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      

아편전쟁

지금 한국 사회가 이러한 청나라 말기의 중국의 모습을 일부 닮아가고 있다. 중국의 사례는 한국에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청나라 말기, 마약으로 인한 경제 위기, 성 문란 현상, 관리들의 타락으로 국운이 기울었던 전철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는 정부 차원에서 이를 막을 예방적 조치가 필요하다. 문제는 단순히 처벌하고 공급을 끊는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개인에서부터 접근해야 한다. 마약에 한번 발을 들인 사람은 그 중독성으로 다시 그 세계를 찾게 된다. 지속적인 의존은 장애와 부작용을 낳고 결국 사회로부터 밀침을 당한다. 사회로부터의 소외, 이는 결국 삶 자체를 더 망가뜨리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


사회가 나서서, 정부가 나서서 이들의 소외를 막아야 한다. 이들은 범죄자가 아닌 사회의 구성원이고, 단지 정신이 아플 뿐이란 걸 인식해야 한다. 

환자는 병원에서 가족의 보살핌을 받고 간호사의 도움과 의사의 처방을 받는다. 정부에서는 의료보험으로 이들의 파산을 막아준다. 


이들 역시 환자이고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범죄자라는 인식보다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절실한 것이다.     


그나마 예방·재활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통합기구를 설치와 마약 유통 근절과 마약중독자 치료를 위한 입법 작업에 대한 한국민의 요구가 높아진다는 점에서 작은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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