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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산 Jul 31. 2019

한국인만 모르는
한국의 보물 '한의학'

고산/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한국문화 찾기

미국 국립 지리학회에 의해 창간된 『내셔널지오그래픽』은 탐험, 문화, 동물, 역사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월간지다. 

이 잡지 2019년 1월호에 동양의학을 집중 조명하는 기사가 실리자 세계 의학계에서는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였다. 오랜 세월 깊이 있는 탐사로 대중의 신뢰를 쌓아 오고 있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신년 특집이 한국에서는 이례적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사회로 보면 다소 늦은 감이 있다고 느끼고 있다. 한국에서는 소외당하던 한의학 등의 동양의학이 정작 외국인들 사이에서 미래 대체의학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2019년 1월호

『내셔널지오그래픽』은 기사에서 3D 프린팅 기술, 유전공학과 함께 ‘전통 동양의학’을 미래의 혁신을 일으킬 분야로 내다봤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3D 프린팅과 유전공학의 역할에 대체로 수긍하지만, 동양의학이 여기에 포함된 것에 의아해하는 한국인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약화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의학이라는 특수한 분야여서 정보에 대한 이해가 어려운 이유도 작용하고 있다. 거기에 추가로 효능이 검증되고 실용화되기까지 걸리는 데 많은 시간을 요구하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중요 뉴스로 떠오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의학에 매료된 세계의학계 


한국에서 이러한 흐름을 눈치채지 못하는 가운데 세계는 조용한 의학 혁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임상시험 결과가 나오고 과학기술이 이와 결합하면서 동양의학이 서양 의료계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대표적인 분야로 침술과 부항, 한약 등을 들고 있다. 이들 세 가지는 이미 그 효과가 검증되어 일부에서 이미 적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본문 기사에서도 미국 국립 암연구소에서 실시한 임상시험 사례와 그 효과에 대해 자세히 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예일대학교 ‘쳉 영치’ 교수 연구진이 항암 화학치료의 부작용으로 고통받고 있던 암 환자들에게 한약 추출물(PHY906)을 투여했을 때의 효과를 들었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자연에서 추출한 황금, 작약, 감초, 대추로 이뤄진 처방이 설사, 복통 등을 치료한다는 『동의보감』 기록이었다.

예일대학교 챙 영치 교수

실제 임상시험 결과를 보면, 이러한 약재들을 달여 만든 한약을 복용한 환자들에게서 메스꺼움, 설사 등 소화기계 관련된 부작용이 감소했다. 게다가 한약을 복용하지 않고 화학 요법에 의존한 환자보다 종양의 크기 감소가 눈에 띄게 빨랐다고 한다.

또 다른 사례로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해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중국 전통의학 연구원 ‘투유유’ 교수의 경우를 들고 있다. 그는 『동의보감』의 ‘학질(말라리아)’ 치료에 개똥쑥이 효과가 있다’라는 기록에서 힌트를 얻어 치료제를 개발했다고 한다.

2015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투유유

동양의학에 관한 연구는 이러한 사례 외에도 미국의 듀크대나 옥스퍼드대뿐만 아니라 유럽의 주요 대학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은 암, 당뇨병, 파킨슨병 등 난치성 질병에 대한 치료에서 전통 동양의학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으로 믿고 있다. 서양의학의 부작용과 한계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상대적으로 한의학에 대한 세계 의학계의 비상한 관심과 믿음이 확산하는 추세다. 이러한 흐름에 의학계가 기대하는 것은 과거 의학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던 상황과 흐름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의학이 새로운 도약은 대부분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거나 사회가 변동할 때 크게 발전했다. 천재적인 과학자들이 실험실 속에서 이끌어낸 것은 그 중 극소수에 불과했다.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던 시점에서 유럽은 의학에서 암흑기에 접어들지만, 이슬람은 고대 의학에 자신들의 것을 결합해 새로운 의학 혁명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슬람 문화에서 발전된 의학은 르네상스와 함께 유럽으로 다시 유입했다. 문화와 문화가 만나 새로운 세계를 연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 각지에 의과대학이 설립되고 이전까지는 금기시하던 신체 연구와 해부학이 본격적으로 나타났고, 근대에 와서 항생제와 세균이 발견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사실 르네상스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의학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시대 흑사병의 공포에서 드러나듯이 의학에 대한 무지는 엄청난 희생을 부르기도 했다. 당시 모든 것이 신으로 통하던 때라 최고 지식인은 가톨릭 사제들뿐이었다. 의학이라는 학문조차 제대로 없던 시기에 의사의 역할을 사제가 도맡아 했다. 이들은 효과가 거의 입증되지 않은 허브류의 약초 등으로 아픈 환자를 치료했다. 그런데도 이들은 사제라는 이유만으로 환자들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다 유럽을 죽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흑사병이 번졌고, 이 무시무시한 재앙 앞에 사제들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들의 무지는 교회 안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기도하게 해 바이러스들의 잔치를 벌여주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학살’이나 다름없는 끔찍한 상황으로 몰아간 것이다.

흑사병은 학살이나 다름없는 끔찍한 상황으로 몰아갔다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천년을 버텨온 교회는 이 엄청난 사건으로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흑사병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 신’에 대한 믿음을 거둔 것이다. 

이때부터 유럽 사회는 각성하게 되었고, 문화와 문화가 만나는 르네상스를 통해 의학도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이다.

인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17세기에 해부학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했다. 그 배경에는 현미경(1590년대)의 발명이 있었다. 의학자들 사이에선 실험으로 자연현상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으며, 이들을 통해 많은 책이 출판되면서 학문의 교류가 촉진되었다. 

그래도 풀어야 할 과제는 끝없이 남아 있었다. 의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바이러스성 질환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난공불락이었다. 


100년 전만 해도 인간 평균 수명은 마흔 살을 넘지 못한 것을 보면 갈 길은 너무도 멀게 느껴졌을 것이다. 오늘날 인간의 평균 수명이 80에 가까운 걸 보면 절반 정도밖에 살지 못했다. 실제 1900년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 중 첫돌을 지난 아이는 네 명 중 세 명 정도다. 바이러스에 의한 사망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대를 바꿀만한 발견이 이루어졌다. 1930년대에 페니실린이 발견된 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수명은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페니실린을 개발해 1945년 노벨의학상을 받은 영국 의학자 알렉산더 플레밍

이후 서양의학은 인간의 건강과 장수의 꿈을 이루어줄 ‘메시아’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과학에 대한 지나친 자만과 기계적인 치료법, 자연의 반격으로 서서히 무너져갔다. 미국의 경우 의료 분야에 어마어마한 예산과 인력이 지원되고 있지만 평균 수명은 한국보다도 낮다. 환자 간의 개인차를 고려하지 않은 이유가 가장 크다. 이러다 보니 약물에 대한 내성만 키우고 있다. 


사라져가는 전통 의학


미국의 일부 의학계에서도 그동안 환자의 물리적인 측면에만 집중해 온 것 때문이라는 반성이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동양의학에서 환자를 보는 관점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서양의학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에 직접 대응하는 반면, 동양의학은 인체 내의 조화와 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과 화학적 치료에 의존해 온 그들의 한계와 일부 부작용을 해소할 대체의학으로 동양의학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동양의학의 중심이 되어야 할 한국에서는 오히려 ‘찬밥신세’로 전락해 한의학에 대한 수요가 줄고 있다. 또한, 한의학의 과학화에는 소홀히 하면서 서양의학 중심의 의료정책으로만 지원하다 보니 한의학이 설 땅마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국만 세계 흐름과 거꾸로 가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가 급격히 산업화, 서구화하면서 전통 의학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것도 한 원인이 있지만, 한의사들이 자초했다는 일부 지적도 있다. 수익만을 생각하던 한의사들이 한방 의료의 건강보험 적용 확대나 한의약의 과학화 등에 소홀히 한 탓이란 것이다. 그러는 사이 열매는 서양의학이 차지하는 일이 많아졌다. 

심지어 한약을 부정하는 분위기에 편승해 천연물 신약이라는 이름으로 한약 정제를 양약으로 둔갑시켜 처방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일어난다.


한국 속담에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서양 의학의 역사라고 해봐야 기껏 100여 년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영향력은 막강하기만 하다. 


세계 어디에도 자신들의 전통 의학이 이렇게 빨리 자취를 감추는 경우는 드물다. 심지어 서양의학의 효시인 히포크라테스의 나라 그리스에서도 전통의학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테네의 약국에는 한국과는 달리 전통 약학에 기반한 다양한 종류의 차(tea)와 올리브 등이 약품 진열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감기 같은 가벼운 질환에는 조제약을 먹는 것이 아니라 기름 몇 방울을 마시거나 향을 맡는 것으로 치료를 대신한다. 


또한, 아테네 약국의 간판에서는 녹색 십자가와 함께 뱀이 그려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 신화에서 뱀은 의사나 약사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병을 신이 내리는 것이라 믿어 의학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을 세웠다. 신전에서는 사제들의 의료행위가 이루어졌는데, 그들은 뱀에 특수한 치유력이 있다고 믿어 치유 의식에 뱀을 이용했다. 실제로 뱀이 상처 부위를 핥으면 낫는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에 대한 전통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동의보감의 시대


한국에도 그리스처럼 다시 살려낼 전통 의학의 흔적이나 유물은 무수히 남아 있다. 그 첫 번째가 국보로 새로 지정된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인 『동의보감(東醫寶鑑)』을 뽑을 수 있다. 미래 의학계의 새로운 돌파구로 동양의학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떠오르는 한국의 자랑거리이다. 

『동의보감』은 선조의 명을 받아 국가 차원에서 전통 의학을 집대성한 것이다. 현대 의학에서 중요한 예방의학과 공중보건 관리시스템을 구현해 내 시대를 앞서간 책이다. 또 해부학, 생리학, 자연과학 등 다양하게 다루어 그 가능성 또한 무한하다 할 수 있다.


『동의보감』은 간행되자마자 중국과 일본 의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일본의 경우,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가 『동의보감』을 들여와 일본 전통의학의 표준으로 삼기도 했다. 중국에서도 『동의보감』을 수입해 중국판 『동의보감』을 편찬했다. 그 서문을 보면 “천하의 보물을 마땅히 천하와 더불어 하고자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연암(燕巖) 박지원이 ‘열하일기’에 기록한 베이징에서 본 『동의보감』이 바로 이 책이다. 이후 중국에서는 이를 더 발전시켜 다양한 판본의 책을 내놓기도 했다. 

세계기록문화유산 <동의보감>

이렇듯 동아시아 의학에서 『동의보감』은 독보적인 자리에 있었다. 허준은 이 책을 두고 말하길, “환자는 자신이 앓는 병이 무엇인지, 그게 몸에 허해서 생긴 것인지 삿된 기운이 지나쳐서 생긴 것인지, 곧 나을 병인지 아닌지, 예후가 좋아질지 나빠질지, 살게 될 것인지 죽음에 이를 것인지 명확히 알게 되리라.” 라고 했다.

이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그러면서도 의학 전체를 관통하는 저술을 목표로 했음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가 아끼는 보물이 되었고 군주에게는 백성을 아끼는 마음이고, 백성에게는 신선의 경전이었다. 그리고 잊고 있던 한국의 소중한 보물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동의보감의 정신과 수천 년을 쌓아온 방대한 처방에 대한 분석이 이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이제 동양의학이 비과학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한의학은 구시대의 퇴물이 아닌 실용학문으로 발전시키고 신비로 남아 있지 않고 실제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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