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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디 PADDY Nov 22. 2023

순간의 어지러움

나는 웃옷을 벗고 누워있다. 따듯한 침대장판의 온기가 등으로 느껴졌다. 커튼을 벌컥 열고 한의사가 들어왔다. 그는 상체의 혈자리 여기저기를 누르며, 상태를 진단했다.


"자, 그대로 움직이지 마세요" 


머리에 침이 하나씩 들어갔다. 그는 매우 능숙하게  머리와 얼굴에 수많은 침을 놓기 시작했고, 나의 머리는 검은 머리카락과 새로 심어진 은색의 침으로 가득했다.  


이번엔 상대적으로 하얗고, 차가운 분위기로 가득한 흰색 방. 간호사는 나에게 여러 가닥의 전선이 연결된 안대를 씌웠고 동시에 내 머리를 움켜쥐었다. 


“자, 머리를 크게 움직여 볼게요”


머리를 휘저을 때마다 기록되는 전기신호들을 읽은 의사는 원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주일 뒤에도 증상이 여전하면 재방문하라는 진단을 했다. 


머리가 아팠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머리는 돌면서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듯 방향감각이 무뎌지면서 이명과 함께 현실과 동떨어진 멍한 기분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증상은 심해졌고 가만히 있어도 멀미가 났다. 머리 속 작은 생명체가 보여줄 게 있다며 가자고 보채듯 이명과 함께 어지러움은 지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서울 사는 황유택입니다” 


아무래도 이때부터였다. 요즘 자기소개를 한다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유는 내가 하는 다양한 레이어 중 어떤 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어떤 것을 숨기며, 어떤 것으로 마무리 지을 것인가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마치 영작을 할 때 말하기 직전 머릿속에서 수많은 단어와 배열이 오가는 것처럼 말이다. 


“So what kind of art did you do?”

그럼 어떤 작품을 했는데?


그 때도 같았다. 

야심차게 떠난 세계유랑, 떠나 길고 긴 대륙의 끝에서 드디어 마주한 바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파도, 부서지는 달빛 윤슬이 말하는 친근함과 차갑고 냉정한 회색으로 가득한 입국심사대와 단정한 유니폼을 입은 무표정의 심사대 직원이 대비되고 있었다. 


고개를 들지 않고 의심스러운 눈을 치켜들며, 무표정으로 말하는 그의 엄숙한 공기는 유리벽을 그대로 뚫고 다가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직업이 예술인이라 말했을 때 그는 증명을 요구했다. 인터넷이 안되는 상황이라 페이스북이나 웹 포트폴리오에 접근할 수도 없었다. 


"Do it yourself here” 

여기서 직접 해봐.


"저는 배우가 아니고 연출인데..”

I'm not an actor, I'm a director...


"Just as I thought. The next time you come, 
 you have to prove yourself to us clearly.

다음에 올 때는 너를 명확하게 증명할 수 있어야 해.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최대한 누리는 듯 고압적인 태로 나는 고양이를 발견한 쥐처럼 잡아먹힐지, 무심히 지나칠지 긴장하며 꼼짝하지 못했다. 마침내 도장이 찍히고 날카로운 심사대를 지나쳐 영국으로 가는 페리에 몸을 실었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다는 듯이 배 안은 한없이 따뜻했다. 쇼파에 짐을 내려놓고 앉으니 긴장도 내려갔다. 머리가 어지럽게 아파져 왔다. 그래, 이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존재하기 위한 동기를 수없이 찾아다녔다. 분노, 설렘, 신기함, 재미, 자랑, 돈, 사랑, 연민, 막연함, 성취, 효능, 인정  어느순간 이런 단어들로 동기를 만든다는 것에 약간의 고충이 생겼다. 이들은 모두 순간적인 것들이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미해지며 지치는 감정이다. 꾸준함과 지속성이 없다. 순간의 감정은 뒤로 갈수록 지치고 자신을 스스로 갉아먹는다. 감동이 끝나면 냉혹한 현실을 다시 직시해야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직업적 기술이자 과정이다. 하지만 그 기쁨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자기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졸업하기 이전에 나는  우연79%, 의지 21%로 삶의 방향을 정하며 외부의 환경에 따라 삶을 살았다. 


 긴 여정을 끝내고 귀국 후 나는 말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안전한 실패'를 강조하는 발언을 많이 했다. ‘안전한 실패’는 문화예술계 안에서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견고한 그들만의 세상에 부디 안전하게 부딪혀가며,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해 드디어 예술인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단어이다. 하지만 마이크를 내려놓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최대한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아님 실패하더라도 최대 30% 내외로 스스로 적당히 좌절을 용납할 방법을 수없이 고민하는 모순적인 존재다.


 얼마 전, 출연한 토크쇼에서 '우주로 가겠다'는 작은 결심을 선언했다. 허무맹랑해 보이는  프로젝트로 거대한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나 자신을 기록하고 싶었고, 동시에 시간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정해진 항로가 아닌 정처 없이 떠도는 것처럼, 현실의 우주에서도 길을 잃고 유영하며, 떠도는 어떤 이가 있다면 구급상자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영하는 존재를 발견하는 것이 나를 발견하는 일과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 우주를 선택했어?” 


라고 물으면 


"그야 제일 머니까!" 


라고 대답하고 싶다.


 "우주에 도착하면 그다음은?”

 "글쎄.. 뭐 그래도 대단한 거니까 유명 방송에 한 번쯤은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건 너무 일회성인데..“

 "그렇지만 황유택이 공식적으로 기록되는 거니까!”

 "쯧쯧, 참 안쓰러운 친구군..”


 그렇다. 

나는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 최근 갖게 된 어지럼증과 혼란은 나의 성장과 변화의 징조, 또는 성장통일지 모른다.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나는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 갑자기 찾아온 이 짜증나는 어지럼증은 언제 사라질지 아니면 계속 갖고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순간순간 찾아오는 이 증상에 존재를 실감한다. 


 증명을 고집스럽게 요구하는 심사관, 마이크에서 말하는 안전한 실패, 유영하는 삶, 빨려 들어가는 어지러움. 이것들은 현상으로 마주하고 있지만, 실제론 끊임없이 나 자신이 나에게 외치고 있는 메아리와 같다.  


“어지럼증 검사비용 다해서 10만원입니다. 할부하시나요?”


무표정한 얼굴로 병원창구직원이 이야기했다. 


비싸기도 하지. 씁쓸하게 웃으며 뜻밖의 지출 후 병원을 나섰다. 다시 일상의 풍경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옷을 여미며 머릿속 어지러움의 그림자를 뒤로 한 채 내 인생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나는 여전히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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