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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디 PADDY Feb 24. 2024

대기업에 잠입한 예술학도

놀이터는 창조적인 것

20대 초반, 휴학계를 신청하고 학교를 나설 때, 마음속에는 '큰 결단'이라는 무거운 단어 대신 '모험의 시작'이라는 가벼운 설렘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선택한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는, 예상치 못한 새로운 세계로의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운 좋게도 사무보조의 첫 시작을 유명 대기업인 H사의 총무팀에서 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나에게 단지 금전적인 목적을 넘어, 미지의 땅을 탐험하는 듯한 새로운 세계였다. 


매일의 업무는 우편물을 정리하고, 서류를 전달하며, 비서님의 책상에 아침 신문을 올려두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단순한 업무들은 나에게는 보통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일상에서 나는 무언가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내 인생에 사무실 근무가 없을 것만 같은, 설명할 수 없는 예감이었다. ‘내 인생과 이 회사는 큰 관련이 없다’라는 생각이었다. 이 생각은 오히려 이곳을 자유로운 놀이터로 만들어 주는 결과로 다가왔다.


내 자리는 사방이 남회색의 가벽으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분리된 소소한 나만의 나무집 같은 느낌을 주었다. 생각보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나만의 공간을 바라보며, 처음에는 이곳이 내게 주어진 작은 '놀이터'라는 엉뚱한 생각이 마치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심시티 게임처럼, 계속 나에게 텅 빈 공간을 꾸며달라는 속삭임을 하는 것과 같았다. 내 작은 책상 한편에 자리 잡은 화분 하나와 주황색 금붕어 어항, 사진 몇 장은, 매일 아침 나를 반겨주는 소박한 친구들이 되었다. 


나 예술학도야! 그 속삭이는 욕구를 해소해 주지! 


그곳을 꾸미는 것은 마치 빈 캔버스에 색을 입히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나는 그것을 집 꾸미기처럼 꾸몄다. 어항에 물고기를 키우고, 화분을 놓으며,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웠다. 나의 책상은 작은 정원이 되어, 사무실의 회색 톤 속에서 작은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나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묘한 즐거움이었다. 


아침이면, 사무실은 차분하고 조용한 태풍 전야와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 눈에 띄는 것은 부드러운 햇살이 먼지를 타고 창문에 가까운 부장님 책상 쪽으로 내리쬐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컴퓨터의 조용한 침묵 속 타자 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대화 소리들이 사무실을 채웠다. 나는 항상 1층에서 산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업무를 시작했다. 사무실은 점차 하루의 업무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면, 사무실의 분위기는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컴퓨터의 클릭 소리가 더욱 분주해지고, 전화기의 울림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이 시간대는 마치 하루 중 가장 역동적인 시간처럼 느껴졌으며, 각자가 마감 시간을 향해 질주하는 듯한 긴장감과 활력이 공존했다. 오히려 이 시간에는 약간의 여유가 생기는 시간인지 때로 시간이 남으면 비서형, 누나들과 1층 카페에서 수다를 떨기도 했다. 


물론, 이런 모습을 부장님과 과장님은 싫어했다. 아니, 싫어하는 것이 분명했다. 부장님은 나를 볼 때면 영어 공부를 하라고 하거나 과장님은 책상으로 불러, 우체국에서 오배송한 우편물에 대해 나를 타박하기도 했다. 


뭐 알게 뭐람! 

내 책상으로 돌아오면 이곳은 나의 공간인데. 엄마! 이게 내 번호야. 앞으로 휴대전화 말고 여기로 전화해!’ 사무보조 업무로는 걸려오지 않는 전화를 이용해 부모님께 내 회사 번호를 자랑스레 알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정적이고 유명한 대기업 아들의 번호라니 이것이 부모님이 바라던 삶이고 아르바이트지만 효자라고 생색을 내고 싶었다. (엄마아빠 미안..)


심지어 비가 많이 올 때 계열사에 서류를 전달해야 할 때면, 총무팀에서는 회사 차량을 배정해 주곤 했다. 이러한 순간들은 사장님 비서로서 총무팀이 가진 실권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바로 회사차를 배정해 주곤 했는데. 어서 차를 타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뒷자리에 앉아 임원 놀이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편안한 차량 앞자리에 앉아 기사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종일 일을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나를 기사님들은 귀엽게 봐주시기도 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우체국에 우편을 맡기러 갔을 때, H사의 로고가 박힌 임시 사원증을 본 우체국 창구의 아주머니들이 나를 대기업의 일원으로 여겼다. 호기심이 가득하고 금세 친해진 것만 같은 말투로 자기 아들, 딸도 이 회사에 취직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나? 와 같은 마치 취업컨설팅을 원하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 모습은 우리 엄마의 모습을 거울처럼 보는 것과 같았다. 아주머니들께 나는 의기양양하게 “공부 열심히 하고 자신감을 가져야 해요. 이게 제일 중요해요!”라고 조언했다. 지금 떠올려 보면 죄송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니.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사무직 이외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그때 함께 사무실에서 동거동락했던 물고기와 작은 화분은 그 배의 크기로 아직도 함께한다. 이들의 생명력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이 아이러니한 사실은 나에게 삶의 예측 불가능성을 깨닫게 해 주었다. 우리가 걸어가는 삶의 길은 때때로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놓이든, 그곳에서 우리만의 색깔을 찾고,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삶의 경험이 아닐까 싶다. H사의 총무팀에서 보낸 시간은 나에게 더 큰 세상을 보는 시야를 열어주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 연락하지 않는 멀어진 관계가 되었지만, 가끔 SNS를 통해 그때 그 사람들의 근황을 엿보며, 각자의 삶이 얼마나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한지를 실감한다.  우리는 알 수 있다. 삶은 때로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찾고, 자신만의 색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H사에서 나의 시간은 단순한 직장 경험 그 이상이다. 


(이 이미지는 글을 바탕으로 AI가 그린 그림입니다. 이미지 생성: OpenAI의 DA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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