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님의 작별인사
작가님의 인스타에 강남 교보문구에서 신간 팬 사인회 사진이 올라왔다. 익숙한 장소에서의 작가님 사인회를 가보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대신 신간을 읽으면서 그 느낌과 여운을 작게나마 느끼고 싶었다.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던 찰나에 모바일 캡슐 부분에서 깜짝 놀랐다. SF소설이었다. 요즘 코로나로 웹 3.0을 얘기하며 기술과학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찰나에 이 소설은 찰떡이었다. 작가님들 중에 유일하게 맥주 광고를 찍으신 분 답게 역시 트렌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은 철학에서 따왔다. 십 대 청소년으로 설정된 그는 로봇이었다. 인간과 같이 꿈을 꾸는, 가장 비슷하게 제작된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이다. 그가 등록되지 않은 기계이었기에 연행되며 여정이 시작된다. 임시 대피소를 닮은 곳에서 민이와 선이를 만나게 된다. 탈출하면서 달마라는 로봇도 만나게 된다.
최첨단의 도시, 시간 속에서 철이 민이 선이 달마라는 이름은 이색적이었다. 등장인물 이름이 신 문물 속에서의 시간 간극을 보여줬다. 만약 레오 같은 영어 이름을 섰다면 기억이 잘 안 났을 텐데, 등장인물 이름을 민이 선이라고 함으로써 뭔가 옛것, 본질을 얘기하는 느낌이 났다. 덕분에 이 이름만큼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달마를 만나기 전 이야기는 순차적으로 진행되다가 갑자기 달마를 만나고 나서
“그리고 아빠를 만났다. 이 모든 일이 단 일주일 정도 이 짧은 기간에 벌어졌다.”
라고 얘기한다. 그 전에는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이 될까 호기심과 긴장된 마음으로 보다, 아빠를 만났다는 결과를 알고 조급한 마음이 차분해졌다. 스토리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본질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한 템포를 돌린 뒤, 어떻게 아빠를 만나게 되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몸 내부 장치로 아빠와 연락이 닿는다. 철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달마와 선이와 헤어지며 아빠의 품에 돌아가지만 예전처럼 행복하지 않다. 밖의 세상에서는 인간이 기계에 의존하게 되었다. 기계는 뇌에 지속적으로 엄청난 쾌락을 제공하였다. 인간은 거기에 안주하며, 일종의 환각 상태에서 머물다가 멸종해 버렸다. 결국 인간은 기계에 폐하게 된다. 인간이 져서 아쉬운 마음이 생겼다.
철이의 아빠는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마지막 여생을 보냈다. 철이의 아빠는 영속적인 삶 대신,
“ 인간의 존엄성은 죽음을 직시하는 데에서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육신 없는 삶이란 끝없는 지루함이며 고된 고통일 거라고도.”
하며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철이는 네트워크를 이용해 선이를 찾는다. 선이는 복제인간이었다. 당연히 인간을 아주 많이 닮은 로봇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작은 반전이었다. 선이라는 라는 캐릭터에 부여된 사상은 흥미로웠다. 우주의 정신.
기계지만 의식을 가진 존재는 소중하다. 개별적인 자아로 존재하는 것도 허용하며, 우주정신이 있는 한 태어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통해 다시 우주로 돌아간다라고 한 선이의 믿음. 기계인 달마는 달랐다.
"이 지구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압도적으로 생산해내는 존재는 바로 인간입니다. 인간에 의해 생명을 얻은 이 무수한 존재들은 아무 의미 없는 생을 잠시 살다가 인간을 위해 죽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걸 멈추려는 것입니다. "
그렇게 달마는 클라우드에 업로드하면서 현존하는 최고의 인공지능들과 연결되었다. 그들은 집단 지성, 즉 네트워크였다. 그들이 인간을 이긴 것이다.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철이는 잃어버렸던 몸을 다시 만들어 선이를 찾으러 가며 선이의 마지막을 지킨다. 철이도 클라우드로 업로드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기계인 철이가 클라우드에 업로드하지 않는 모습에서 사람 냄새가 났다.
인간에게 주어진 죽음과 생에 대해 그리고 당신은 어떤 작별 인사를 할 것인지를 묻는다.
많은 부분 중에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부분
“ 우리는 오랫동안 그대로 있어다. 온몸을 압도하던 공포가 물러가고, 이제 슬픔이 마치 따뜻한 물처럼 그녀의 마음에 차오르는 느낌이었고, 그 슬픔이 오직 선 이만의 것은 아니라는 듯, 함께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이 단순한 행위를 통해 그녀가 느끼고 있을 유독한 슬픔이 아주 소량이나마 내게로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식이 사라졌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와 나, 그런 뚜렷한 경계가 사라지고 공통의 슬픔이라는 압도적 촉매를 통해 선이와 내가 하나가 된 것만 같았다.”
서로의 슬픔을 느끼는 서사가 참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