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2019.4.29.

by 트윈픽스의 빗치

점심을 먹고 조용히 양치질을 하던 남영은 문득 키스에 대해 생각했다.


여고 시절 남영과 친구들은 키스의 느낌이 너무나 궁금했다.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부비면 그 느낌이라더라, 팔뚝의 제일 여린 부분에 가만히 입을 대 보면 그 느낌이라더라 소문이 무성했다. 아무리 따라해 봐도 그게 진짜 키스의 느낌일지 알 수가 없었다.


남영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좋아했던 옆 학교 동갑내기에게 키스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서울로 대학을 갈 거고 너는 여기에 남을 것 같으니 우리 졸업하기 전에 한 번만 키스를 해보자. 첫키스는 너랑 해야만 할 것 같아. 어차피 헤어질 건데 괜찮잖아?"

동갑내기는 크게 싫은 내색을 보이진 않았지만 그다지 호응 하지도 않았다. 아마 그 애는 이미 키스를 해 본 경험이 있어서 남영의 제안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으리라. 남영은 그 동갑내기와 입 한 번 맞춰보지 못하고 그대로 졸업했다.


그렇게 고대하던 첫 키스의 기억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귀에 종소리가 들린다고 하던데 다 헛소리였다. 대학 때 사귄 첫 남자친구와 남영 모두 인생의 첫 번째 키스를 서로와 했다. 소파 칸칸이 야시시한 커튼이 쳐진 학교 근처 한 카페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키스에 열중했다. 숨은 어떻게 쉬어야 하고 흘러내리는 침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던 둘은 재생지 색깔의 카페 휴지를 갖다놓고 침을 닦아가며 키스를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세 시간 정도 흘러있었다.


이상하게도 두 번째 만난 남자친구와의 키스는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 뒤로도 어땠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성한 수염 때문에 많이 따가웠다는 정도밖에.


가장 예상치 못했던 키스는 만난 그 날 밤에 기습적으로 당한 키스였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던 중 지인에게 소개 받은 남자와 메시지를 주고받게 됐다. 야근이 끝나면 밤 12시가 가까운 시각인데도 남자는 그 날 당장 회사 옆으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하루하루가 재미 없었던 남영은 조금 고민하다가 만나자고 했다. 어쩌다가 홍대 뒷골목으로 2차까지 갔다. 집에 가는 택시를 잡으려고 길가에서 기다리는데 소나기가 쏟아졌다. 허겁지겁 근처 건물 유리문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갑자기 남영을 끌어안더니 입을 맞춰왔다. 나쁘지 않았지만 점점 입술이 목으로 내려가기에 집에 돌아가겠다고 하고 달려오는 택시를 잡아 탔다. 그 뒤로도 그 남자와 세 번 정도 데이트를 했다. 그러나 둘은 그냥 아는 사람으로 남았다.


그러고도 쭉 키스를 해 왔다. 적당히 술을 먹으면 그 다음 순서인양 이어지는 무덤덤한 키스가 지겨워졌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키스를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할 무렵,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어떤 남자와 두 번째 만난 날, 종로 3가 근처에서 와인과 하이볼을 마셨다. 거미줄 같은 골목에서부터 걸어나온 남영과 남자는 큰 길로 나가자며 비틀거렸다. 거나하게 취한 둘은 길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그러다 남영의 눈에 길가에 세워진 길쭉한 모양의 지도 입간판이 들어왔다. 지도 앞에 달려가서 바짝 붙어선 채 길을 읽던 남영이 "우리 제대로 가고 있어!"라고 말을 하며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그 순간, 언제 가까이 왔는지도 모를 남자가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춰왔다.

하지만 그렇게 적극적이던 남자는 시간이 갈 수록 도리어 부끄러움을 탔고, 어쩌다 길 위에서 입이라도 가볍게 맞출 때면 온갖 호들갑을 떨었다. 그 뒤로 그 때만큼 설레는 키스는 없었다.


키스. 남영은 키스라는 단어가 괜히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그러고보면 키스의 우리 말인 입맞춤이라는 단어도 재미있다. 입을 맞춘다니. 일본어로도 구치즈케. 입을 붙인다는 뜻이다. 셋뿐이라고도 한다. 입술을 접한다는 아주 직관적인 글자 조합이다. 그럼 영어 kiss는 어디서 온 걸까. 사랑 고백을 하던 한국인 남녀가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케이. 아이. 에스. 에스"라고 하던 이동통신사인지 핸드폰인지 광고도 떠올랐다.


"우웩!"

딴 생각을 하며 칫솔로 혀를 닦다가 너무 깊숙이 넣었는지 헛구역질이 나왔다. 구강 안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게 이렇게도 부자연스러운 일인데, 입 안에 다른 사람의 혀와 타액이 들어오는 지저분한 행위가 어떻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로맨틱한 감정 확인 절차가 되었을까. 남영 스스로 생각해도 유난히 깔끔을 떠는 자신이 지금까지 그 행위를 어떻게 해 올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남영은 헹굼물을 퉤 뱉은 후 수도꼭지를 틀어 세면대를 한 번 씻어내린 뒤 화장실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