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했던 여자

2019.5.18.

by 트윈픽스의 빗치

잠시 혼자 살았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회사까지 매일 오고가는 게 너무 힘들다는 핑계였지만 진짜 이유는 부모님이 반대하는 연애를 하기 위해서였다.


내 연애를 알게 된 직후 아빠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한 달음에 달려왔다. 아빠는 _______를 했다.(이건 아직도 담담하게 쓰는 게 불가능하다. 나는 사실 아직도 아빠를 용서하지 못했다.) 나는 뛰어내리겠다고 베란다로 올라갔다. 엄마는 몸을 날려 나를 쓰러뜨렸다. 그 때 내 이로 아랫입술을 찧어서 피가 철철 났다.


적당히 사귀다가 헤어질 작정이니 그냥 내가 내 연애를 알아서 처리하도록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부모님은 나를 믿지 않았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그 연애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게 다 보였나보다.) 다 큰 자식의 결정을 두고 이래라 저래라 하고, 진지하고 차분하게 자기 의견을 피력해 보려는 자식을 막무가내로 협박하는 부모님 모습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우리 부모님은 언제나 내 결정을 존중하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었다.


엄마가 입술이 터져서 피를 흘리는 날 보고 울면서 말했다. 그 사람은 아니야. 그 사람은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야. 부모님의 방식은 잘못됐었지만 그 선견지명은 맞았다. 나는 그 사람을 해칠바에는 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했었다. 그런데도 내 연애의 상대방은 너무나 쉽게 이제 다시는 나를 안 만나겠다고 다짐했더랬다. 그것도 연애 상대인 나한테 이야기한 게 아니라, 나의 부모님에게.

나중에 그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물어보니 자기는 죽기 싫어서 그랬다고 했다. 그 역시 그의 선택이지만 너무 화가 났다. 나도 무서웠지만 용기 내어 우리를 지켰는데.


여튼. 나는 도저히 나의 부모라는 사람들과 더 이상 같이 살 수가 없었다. 그길로 당장 혼자 살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내가 그렇게 추진력이 좋은 사람인 줄 그 때서야 알았다. 우선 깨끗한 노트를 하나 꺼내어서 집 고르는 법 공부를 했다. 보증금과 월세의 적정한 수준, 수압 체크, 곰팡이 보는 법 등을 노트에 적어내려갔다. 나중에 누가 내 등을 쳐먹으려 하면 그 노트를 꺼내어 당당하게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인터넷에서 본 방 몇 군데를 노트에 차례대로 적어놓고 각 담당 공인중개사에 전화를 해서 발품을 팔았다.

내 수준에 감당할 수 있는 집들은 형편없었다. 역세권이랬는데 골목을 몇 번이나 꺾어서 들어가야했던 집. 그러니까 직선거리로만 역세권. 주인 아주머니가 너무나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며 당장 오늘 들어오라고 하던 약간 미저리같은 집. 작은 방의 한 면이 통째로 낡은 구식 샷시여서 심지어 여름에도 추웠던 집. 화장실이 밖에 있던 집 등등.


여자 혼자 사는데 이건 아니다 싶어서 조금 더 무리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포구 어느 오피스텔에 자리를 잡았다. 오피스텔은 관리인이 있으니 범죄의 위험이 조금 덜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관리인 아저씨 자리는 거의 비어있었다. 칸칸이 오피스로 쓰던 20년 된 건물 방들은 정말로 관짝같았다. 구식 라디에이터가 그대로 한쪽 벽면에 붙어있었고 출입문이 약간 들떠있어서 밤에 불을 끄고 누우면 철문 아래로 복도 불빛이 그대로 새어들어왔다. 내 검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튀어나와서 오밤중에 집을 뛰쳐나와 방황한 적도 있었다. 옆 방에서는 매번 내 또래의 남녀가 격렬한 섹스를 했다.


숨통은 틔었지만 가족과의 불화, 애인의 배신, 회사의 거지같음 등의 문제가 켜켜이 쌓여 나는 더 우울해져만 갔다. 낡은 방은 아무리 꾸며도 닭장같았다. 보일러는 오밤중에 큰 소리를 내며 돌았고 어디서든 머리만 붙이면 업어가도 모르게 자는 나의 잠조차 깨웠다. 세상 어디에도 내가 쉴 곳은 없었다. 뛰어내리고 싶은데 조그만 창문에는 감옥을 연상케하는 꽤 촘촘한 창살이 달려있었다.


호구였던 나는 나를 배신한 남자와 다시 만났다. 물론 부모님께는 완전히 다 정리했으며 나는 혼자서 잘 버티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부모님은 내가 조금 더 나은 집으로 가는 것을 흔쾌히 도와줬다. 바로 옆 오피스텔이었는데 관리아저씨가 택배도 맡아주고 1층에는 24시간 편의점도 있었다. 마침 내 방은 건물 제일 끝 방이어서 네 개 벽 중에 두 개 벽에 창문이 있었다. 마루도 앞에 살던 방과는 달리 평평했고 고급스러운 나무가 깔려있었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교에 가기 위해 서울에 올라왔을 때 나는 지방에서 올라와서 혼자 자취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도 지방에서 상경했지만 부모님과 함께 이사를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어른같은 연애를 했다. 타인은 통제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온전한 공간이 있어서였으리라. 언젠가 내가 자취를 하게 되면 꼭 좋은 사람들을 내 공간에 초대하리라 마음먹었다. 통금 없는 연애도 자유롭게 하고 싶었다. 연애하고 싶은 여자 1순위라는 자취하는 여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몰래 다시 만난 그 남자는 딱 한 번 내 방에 초대받았다가 도저히 불편해서 잠을 못 자겠다고 오밤중에 집으로 돌아갔다. 바보같은 나는 그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며 내 차로 그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밤 사이 눈이 많이 내려서 차선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가 경계선인지도 모르고 되는대로 달렸다. 운전하는 내내 영문도 모른채 내 방에 혼자 남겨져 있을 고양이 생각에 마음이 안 좋았다.


갑자기 내 자취방이 싫어졌다. 그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우왕좌왕했다. 그러고보니 그 방에는 의자가 한 개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든 초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따뜻한 박하차를 내왔는데 그는 그것도 반쯤 마시고 버렸다. 아무도 초대할 수 없었던 저번 자취방과는 달리 훨씬 깨끗하고 좋아서 당당하게 애인을 초대했던 방인데 "도저히 불편해서 못 자겠어. 내 집으로 돌아갈래"라는 그 한 마디에 겨우겨우 다시 시작한 자취 인생이 와장창 조각났다. 차가 들어가려면 자동차단기 앞에 서서 창문을 내리고 몇 호를 찾아왔노라고 경비실과 통화를 해야 하는 그의 아파트로 들어가면서 내가 얼마나 초라하게 살고 있는지 다시 깨달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 것 아닌데 그 때는 내가 많이 아픈 상태였고 작은 일에도 크게 상처를 받았다.


그 뒤로 이상하게 자취방에는 자잘한 문제가 많이 생겼다. 갑자기 보일러가 안 돌아간다거나 보일러실 문이 얼어버려 열리지 않는다거나 하는 문제들. 비싼 월세에 전기세에 가스비, 관리비까지 꼬박꼬박 내다보니 통장에는 돈이 모일 겨를이 없었다. 그 때 자취만 안 했어도 통장 잔고 0단위가 하나 더 늘어있었을텐데. 그렇게 돈을 퍼부으면서도 나는 한 밤중에 혼자 남겨진 느낌이 싫어서 중고로 물려받은 2003년식 코란도를 몰고 시 경계를 넘어 엄마 집으로 갔다.


혼자 사는 동안 많이도 아팠다. 두 번째 방에서는 내 팔자엔 없을 것 같던 요리까지 시도해봤지만 삶에 대한 의욕은 젖은 장작에 반짝 붙은 불처럼 순식간에 꺼졌고 냉장고 안에는 썩어가는 식재료 냄새가 가득 찼다.


더 환경이 열악했던 앞 방에서도 1년은 채웠는데 두 번째 방에서는 6개월을 채 못 살았다. 헤어지자는 내 말에 수면제를 먹었다며 협박을 하던 그 남자가, 응급실에 실려가서 위 세척을 하고 퇴원한 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달라고 집 앞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쉽게 목숨을 내다버릴 거면서 왜 그 전에는 도망쳤나 모르겠다.)

자기 자신도 해칠 수 있는 사람이 나라고 못 해칠까 싶어서 너무 무서웠다. 차마 내 방으로는 다시 초대하기 싫어서 오피스텔 바로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그는 미안하다고, 다시는 약을 먹는다거나 목을 매지는 않겠다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의 안녕과 행복을 빌고는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엄마 집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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