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요동치던 시간이 지나고,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열병처럼 3일 정도 아팠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감정이었는데, 다행히 단골 편의점 아주머니에게 “열받는다”고 털어놓으며 숨을 돌렸다.
그제서야 모든 상황이 왜 그렇게 흘렀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앞으로 3~4주 정도는 내 주변과 나 자신을 살펴보며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나는 외로움을 제법 많이 타는 사람이다.
6개월의 솔로 생활은 생각보다 길었고, 누군가 다가왔을 때 가볍게 연애하고 지나갔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상하게 누가 공적으로 다가오면, 그 순간부터 생각이 많아지고 예민해진다.
그래서 가벼운 끌림으로 시작해 무겁게 끝나는 방식이 편하면서도, 그 무게감이 다시 나를 가라앉힌다.
문득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게 언제였지?
나이가 들수록 한 사람과 천천히 예의를 지키며 관계를 쌓는 일이 쉽지 않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사람의 사고방식을 듣고, 그중 가장 잘 맞는 사람을 선택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느껴진다.
사람은 저마다 장단점을 갖고 있다.
적극적인 사람은 종종 무례하고, 배려하는 사람은 대체로 소극적이다.
그래서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배려 많은 사람이 적극적일 수 있을까.
회사와 교회에서 배운 것도 있다.
떠날 사람일수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머무를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열정은 리더에게만 필요한 자산이다.
그래서 내 직원들은 영원히 곁에 둘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떠나도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는 마치 세상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노출, 관심, 구매, 납품, AS.
단계별로 구조를 만들고 위임하니, 정작 나는 할 일이 없어졌다.
지갑은 두둑하고, 시간은 많다.
누군가는 이걸 부자라고 부르겠지만, 정작 나는 조금 지루한 삶을 살고 있다.
예전에 TV에서 본 천억대 부자의 표정이 떠오른다.
그의 얼굴에는 이상하리만큼 행복이 없었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신앙도 비슷하다.
장기적으로는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나에게 유리하다고 느끼지만, 너무 독실한 사람들과 섞이려 하다 보니 피로감이 쌓였다.
나는 “하나님”을 반복하는 사람보다, “소통”과 “나눔”을 말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 편안하다.
그래서 잠시 절을 떠올려 보았지만, 그곳에는 청년부가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지난 3년 동안 나는 신앙인이 아닌 채 신앙 공동체 안에 머물며 관찰자로 살아왔다.
억지로 틀에 끼워 맞추려다 보니, 이제는 지친다.
누군가는 교회 디톡스를 한다는데, 나는 사회적 디톡스와 작은 일탈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아침부터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흐트러놓는다.
머리가 과하게 좋다는 것은 때때로 축복이 아니라, 삶을 너무 깊게 해석해버려 결국 공허해지는 일 같다.
그래서 지금 나는,
잠시 멈춰 서 있으려 한다.
생각보다 느리게,
머리보다 마음이 조금 더 앞설 수 있도록.
그리고 이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내가 되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