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역전과 역설 그 사이
오랜만에 내 깊고 어두운 상처 속에서 몇 안 되는 빛 같은 존재, 한 친구가 가족과 함께 울산에서 용인까지 차를 몰고 놀러왔다. 그 친구의 아내와 아이, 그리고 나까지 합쳐 총 다섯 명이었다.
이 친구와는 20살 이후로 거의 내가 얻어먹은 기억이 없다. 우리 집은 넉넉하진 않았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형편이었고, 나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반면 이 친구는 늘 돈 문제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사회가 흔히 말하는 ‘가난’이라는 단어로 규정되는, 그런 평범한 어려움 속에 있었다.
그 친구는 22살 무렵 결혼을 했다. 인생의 무게를 근육통조차 겪기 전에 먼저 짊어진 셈이다. 나는 그런 친구에게 돈을 써도 아깝지가 않았다. 마침 어제, 이제는 삶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축이라도 하듯, 500만 원짜리 컴퓨터를 맞추고 싶다며 부품값을 요구했다.
순간 나는 웃음이 나왔다.
“이거 미친놈 아니야? ㅋㅋ 오늘까지 벌써 30만 원 썼는데 또 20만 원을 달라네?”
큰 부담은 아니었지만 평소 검소한 성격이라 일단은 다음 주에 보내주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반백만 원을 ‘뜯긴’ 셈이다. 그런데도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우습고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어제 술자리에서 무심코 내뱉은 말이 있다.
“나는 왕따라서 친구가 없었는데, 넌 왕따인 친구만 남았네.”
취중에 튀어나온 한마디였지만, 내 오래된 상처를 건드리고 말았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꽤 불운했다. 10년 가까운 왕따, 가정불화, 그야말로 불운의 총집합. 다행히 돈 문제는 없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궁핍 그 이상이었다. 그래도 나는 비교적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덕분에 그 시절을 묵묵히 견뎌낼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안팎이 모두 지옥 같았기에, 오히려 감각이 무뎌져 힘듦을 덜 느끼고 지나왔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과는 대조적으로, 지금 나는 내 고등학교 동창들, 아니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세련되게 살아가고 있다. 자수성가한 사업가이자 작가로 등단까지 한 삶. 어쩌면 내 오랜 상처와 괴로움에 대한 보상을 지금 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예전에 나를 괴롭히던 고등학교 친구 소식을 들었다. 지금은 어디서 짐을 나르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친구는 한때 나를 괴롭히다가 되려 내가 그의 이마를 볼펜으로 찍은 적이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 이후 그의 어머니와 함께 나에게 와서 사죄했던 기억이 있다. 본성이 나쁘진 않았던 아이였는데, 세상은 그렇게 흘러갔다.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지금 누리는 이 세련된 삶도 언젠가는 뒤집힐 수 있겠지. 그렇기에 반드시 그날을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거를 용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