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중독

by 삶 집착 번뇌

내 친구가 내 인스타그램에 올린 철학적 에세이를 읽고 팬이 되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문득, 때로는 조금 덜 무겁고 맵지 않은 글은 인스타그램에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성취에 중독되어 있었다. 매번 무언가를 이뤄내지 않으면 삶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불안이 엄습한다. 어떻게 보면 장점이 더 많은 정신적 결핍일 수도 있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성취와 도파민의 관계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마 내가 이성에게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성취에서 얻는 도파민의 파급력이, 이성과의 스킨십에서 얻는 도파민보다 훨씬 크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성취 중독은 결국 고통 중독과 같은 말이다. 성취를 위해 기꺼이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괴로움 속에서 꾸준히 살아가는 것. 나의 삶은 언제나 그런 방식으로 흘러왔다. 외부로부터 몰려드는 고통조차도 담담히 견뎌내며...



요즘 나는 이런 부분을 자주 곱씹는다. 왜 나는 사랑받는 편안한 연애보다, 고통을 수반한 연애에서 더 안정감을 느껴왔을까? 왜 시간마저 내 통제 안에 두면서, 정작 삶을 있는 그대로 만끽하지 못하는 걸까? 이런 씁쓸한 질문들이 불쑥불쑥 머릿속을 스친다.



누구보다 치열하고 괴롭게 일하고 싶어서 회사를 떠났다. 나는 일벌레, 아니 일개미도 아닌, 일 바퀴벌레 같은 존재라 생각했다. 어디서든 끈질기게 버티고 성취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세상의 문턱은 생각보다 낮았다. 회사 밖으로 나온 지 1년 반 남짓, 나는 혼자서도 먹고살 수 있는 시스템을 완성해냈다.



그리고 결국 해냈다. 누구의 힘도 아닌, 오직 내 힘으로 내 돈을 버는 것.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성취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나는 삶의 공황 상태에 들어섰다. 목적도, 목표도 잃어버린 채 바다 위에 표류하는 기분.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향해 노를 저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아마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내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언어로 이 상태를 형용할 수 있을까. 혹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답은 단순하다. 나는 성취의 뒤편에 숨어 있는 고통에 중독되어 있었고, 이제는 그 고통마저 사라진 자리에 낯선 공허가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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