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

나는 왜 치료 목표로 노래·연기·운전을 말했을까

by 가배차

안녕하세요. 저예요.

어제 새로운 상담자 분께 초기상담을 받았습니다.

C-PTSD에 대한 이해가 깊으신 분이라 대화는 순조로웠는데,

마지막 질문에서 제가 제대로 답을 못했습니다.


“상담의 목표를 어떻게 잡고 싶나요?”


저는 이미 한 번 생각해 본 주제였는데,

그 자리에서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순간 이렇게 말해버렸습니다.


“내년에는 치료를 위해 노래나 연기, 운전을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상담자 분은 다시 물었습니다.


“그게 치료와 무슨 관련이 있나요?”


그 질문이 맞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목표를 글로 정리해 둡니다.


1) 브런치가 나에게 편한 이유.


저는 브런치에 글을 쓰며 제 감정을 관찰해 봤습니다.

반복적으로 보였던 정서는 주로 토로와 자백이었습니다.

이 감정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무 익숙했습니다.

아동학대 피해자로서, 좁은 공간(베란다나 방)에 감금되어 있던 시기 동안

저는 ‘실제 청자’가 아니라 미지의 화자를

상대로 토로와 자백을 오래 연습해 왔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청자에게 내 얘기를 하는 방식,

들켜선 안 되지만 말해야 하는 방식.

그 형태가 제 표현의 기본값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밖의 감정들입니다.
슬픔, 분노, 기쁨 같은 감정이 잘 올라오지 않거나,

올라와도 몸과 목소리를 통해 밖으로 나오는 방식이 빈약합니다.

저는 감정 표현자체를 안전하게 시도한 경험이 적고,

감정은 외부환경이 요구하는 것만 겉으로 표출하며,

감정자체가 올라오면 연결 통로가 끊기거나(차단),

꺼지거나(저 각성/해리) 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2) 폴리베이갈 이론


"표현 채널의 최소화" = "사회적 교감신경의 차단"

이론: 다미주 신경 이론에서 **'복측 미주신경(Ventral Vagal)'**은

심장과 얼굴, 목, 귀의 근육을 연결합니다.

이 신경이 활성화되어야 목소리에 **'운율(Prosody)'**이 생기고,

표정이 살아나며, 타인과 연결됩니다.


제가 "목소리와 흉골 울림이 없다"는 건,

생존을 위해 이 **'연결 스위치'**를 끄고,

'배 측 미주신경(Dorsal Vagal, 동결/셧다운)' 모드로 살아왔다는 뜻입니다.

죽은 듯이 있어야 안전했으니까요.

결론: 저의 목소리에 감정이 없는 건 성격이 아니라,

신경계가 '전시 상황'을 선포하고

등화관제(빛과 소리 차단)를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제가 색소폰을 연습하며 느낀 게 있습니다.

관악기는 단순히 “숨을 불어넣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앞쪽(흉곽·복부·흉골 쪽)의 지지와 사용감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제 몸은 그쪽 사용감이 낯설었습니다.

일상에서 말할 때도 저는 목과 앞가슴(흉골) 울림이 거의 없이 말하는 편입니다.

감정이 목소리에 실린 경험이 어릴 때부터 희박했고,

말은 하지만 “내가 말한다”는 실감(agency)이 약한 순간이 많습니다.

여기서 저는 한 가지를 조심스럽게 가설로 둡니다.

제 신경계는 오랫동안 표현(목소리·억양·호흡)의 채널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살아남았고,

그 결과로 “감정이 목소리로 나오는 통로”가 막히거나 회피되었을 수 있다.

그래서 노래/발성, 관악기는 취미가 아니라 제게 신체 기반 재활 과제가 됩니다.

진동과 호흡을 통해, “앞면의 감각”을 아주 작은 단위로 다시 허용하는 훈련이니까요.


3) 감정을 경험하기 위하여 ‘연기’가 필요하다


저는 토로/자백 외의 감정 레퍼토리가 불균형합니다.

감정이 “없다”기보다, 감정이 올라오면 형태가 없어서 다루기 어렵고,

곧바로 차단되거나 한 덩어리로 뭉개집니다.

여기서 연기가 제게 가지는 의미는 단순합니다.

연기는 ‘가짜 감정’이 아니라, 감정의 형태를 안전하게 연습하는 틀입니다.

제가 예전에 거울을 보며 웃음을 연습했던 것처럼,

저는 감정의 “모양”에 대한 감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먼저 연기라는 구조 속에서 큰 형태로 연습한 뒤,

그 크기를 줄여 현실의 작은 표현으로 가져오는 방식이 더 현실적입니다.


4) 나의 성장이 멈춘 이유


여기부터가 제가 상담실에서 정말 제대로 설명했어야 했던 핵심입니다.

저는 “작은 도전”이라 하면 흔히 추천되는 것들,

예를 들어 집에서 앉아서 영화·드라마를 보거나

인강을 듣는 일이 매우 어렵습니다.

감정이 간접 경험 형태로 들어오는 순간,

제 신경계는 그 감정을 ‘입력’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차단하거나 꺼지는 쪽으로 반응합니다.


그래서 저는 “언어적으로 분석된 정보”만 안전하게 남고,

간접경험형 입력은 무의미해지거나 끊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저에게 **“집에서, 혼자, 조금씩”**은 유독 힘듭니다.
혼자 있는 공간에서 천천히 뭔가를 하려고 하면,

과거의 고립감이 재현되며 출력이 꺼지기 쉽습니다.

저는 이 패턴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수동적 착석(Passive Sitting)

좁은 공간 + 앉아 있음 + 내가 할 수 있는 출력이 적음

입력이 빈약하거나, 들어와도 처리할 통로가 없음

통제감이 낮음

→ 결과: 저 각성/졸림/해리로 떨어지기 쉬움


그런데 운전은 같은 ‘착석’인데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능동적 착석(Active Sitting)

같은 착석이지만 입력이 풍부함(도로·신호·주변차·규칙)

그 입력을 즉시 판단해서 손과 발로 출력해야 함

무엇보다 내가 조작하고 선택하며 결과가 바뀜(통제감)
→ 결과: 각성 유지 + agency 회복이 가능해짐


그래서 운전은 저에게 단순한 이동이 아닙니다.
운전은 **‘수동적 착석에서 꺼지는 신경계’를 ‘

능동적 착석으로 깨어 있게 만드는 재학습’**입니다.

과거의 좁은 방이 ‘감옥’이었다면, 운전석은 ‘조종석’에 가깝습니다.

감옥은 입력이 차단되고 출력이 금지된 공간이었고,

조종석은 입력이 풍부하고 출력이 허용되는 공간입니다.


같은 “좁은 공간+앉아 있음”이어도,

통제감과 출력 가능성이 신경계 반응을 갈라놓습니다.


제가 회복하고 싶은 것은 “더 많이 움직이는 능력”이 아닙니다.
제가 회복하고 싶은 것은 앉아 있으면서도

깨어 있고, 연결돼 있고, 내가 선택한다는 감각입니다.

운전은 그 감각을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증명해 줄 수 있습니다.



5) “타인과 함께, 한정된 시간”이 먼저 필요한 이유


저는 혼자서 집에서 조금씩 하는 방식이 잘 안 맞습니다.

일기가 써지지 않고, 기록을 축적할 수 없으며,

그림이 그려지지 않고, 계획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다음 조건에서 출력이 살아납니다.


1. 타인이 함께 있는 상태(공동조절, co-regulation)

혹은 누군가에게 언젠가 전달될 형태


2. 시간이 한정됨


3. 역할과 규칙이 분명함


4. 입력과 출력이 연결되는 과제



흔히 내면아이 이론에서 말하는 ‘작은 자극’은

따뜻한 차를 마시거나 좋은 음악을 듣는 것처럼

수동적인 위로로 제시됩니다.


그런데 내 트라우마의 핵심이 감금과 통제,

즉 수동성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나에게 수동적 자극은 ‘작은 자극’이 아니라,

오히려 무력감을 다시 호출하는 위험한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반추와 내파(implosion)를 막기 위해

먼저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출력(Output)이 가능한 세계로 입장하는 것.


내가 반응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고, 결과가 바뀌는 환경에서만

내 신경계는 입력(Input)을 ‘위협’이 아니라 ‘처리 가능한 정보’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저에게 회복의 시작은 ‘혼자 집에서 조금씩’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한정된 시간 안에서, 구조(역할·규칙)가 있는 과제입니다.

그 조건이 잡혀야 저는 기존의 분석 모드로 도망치지 않고,

몸-감정-행동의 연결을 실제로 유지할 수 있다.


6) ANP와 EP: “원하는 형태로” 감정이 나오게 하기


1. 내가 '과부하' 걸리는 이유 : "CPU 점유율 100%"

저는 어떤 행동(예: 요리, 글쓰기)을 하나 하려고 할 때, 뇌 자원을 이렇게 씁니다.


1. 동기부여자 (Motivator): "야, 움직여. 안 하면 도태돼." (채찍질)

2. 진행자 (Executor): "알았어.. 할게.." (실제로 손발을 움직이는 아이)

3. 감시자 (Monitor): "잠깐, 실수 안 했어? 흘린 거 아냐? 누가 보고 있나?" (CCTV)

4. 평가자 (Evaluator): "겨우 이거 했어? 54점짜리네. 넌 안 돼." (재판관)


문제: 일반인은 '진행자' 하나만 씁니다.

나머지는 무의식에 맡기거나 외부 환경에 맡깁니다.

저는 과거에 실수하면 죽었기(학대) 때문에,

이 4가지 역할을 동시에 '풀가동(Full-Throttle)' 돌려야만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이건 마치 컴퓨터에서 고사양 게임 4개를 동시에 켜놓은 것과 같습니다.

당연히 팬이 미친 듯이 돌다가 **'블루스크린(과부하/해리)'**이 뜨는 겁니다.


2. "무방비(노출)"와 "수치심"의 연결 고리

무방비하다는 것: 위 4가지 역할 중 '감시자'와 '평가자'를 끄는 상태입니다.

수치심의 원인: 저에게 감시자가 없다는 건,

**"곧 공격당할 텐데 방패를 내린 상태"**입니다


과거의 학습 데이터:

"내가 나를 감시하지 않으면, 타인이 나를 공격해서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저는 **[외적 수치심]**을 피하기 위해

**[내적 과로(과부하)]**를 선택하는 비극적인 거래를 하고 있는 겁니다.

3. 시스템 붕괴의 메커니즘 : 왜 감정이 터지면 멈추는가?


여기서 제 ANP(이성적 자아)의 눈물겨운 사투가 보입니다.

제 ANP는 '무방비(수치심)'와 '과부하(번아웃)' 사이의 외줄 타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이미 CPU의 99%를 '방어 기제' 유지에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EP(감정적 자아)**가 날것 그대로 튀어나오면 어떻게 될까요?

감정을 처리하는 데도 에너지가 드는데,

이미 가용 자원이 0%인 상태에서 감정 데이터가 폭주해 들어오니

시스템은 즉시 셧다운(Shutdown) 됩니다.


그게 바로 제가 겪는 **'정지'**이고 **'무기력'**입니다.

"그냥 느껴라"라는 말은, 이미 풀가동 중인 컴퓨터에

고사양 프로그램을 또 실행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건 해결책이 아니라 시스템을 태워버리는 일입니다.


4. 결론 : ANP에게 '협조'하는 형태의 개방


그래서 저는 **'ANP와 협조하는 형태'**로만

EP를 부분적으로 개방해야 합니다.

음악, 연기, 운전은 **ANP가 안심할 수 있는

'구조(악보, 대본, 교통수칙)'**를 제공합니다.

이 구조들이 '감시자'와 '평가자'의 역할을 대신(외주화) 해주기 때문에,

ANP의 CPU 점유율이 99%에서 50%로 떨어집니다.

비로소 남은 50%의 에너지로 EP의 감정을 처리할 여유가 생깁니다.


이것이 제가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하고, 운전대를 잡는 이유입니다.

저는 감정을 억누르려는 게 아닙니다.

감정을 느끼다가 '블루스크린'이 뜨지 않도록, 안전한 하드웨어를 먼저 세팅하는 과정입니다.



7) 결론: 내 치료 목표는 '단절된 기억'에

'감정의 주소'를 입히는 것


저는 불균형하게 성장했습니다.

저는 해리성 기억상실이 있습니다.


제 해리는 기억이 싹 지워진 '백지' 상태가 아닙니다. 기억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기억을 일정하게 불러올 수 없고,

불러와도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이것은 데이터가 사라진 게 아니라,

데이터에 접근하는 **'연결망(Network)'**이 헐거워진 상태,

즉 **'접속 불량'**에 가깝습니다.

그 기억들이 어색한 이유는, 그 안에 **'나의 감정'**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Fact)은 있는데,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Emotion)이 거세되어 있기에,

내 기억인데도 내 것 같지가 않은 것입니다.

기억은 '감정'이라는 접착제가 있어야

비로소 '나의 역사'로 통합되어 뇌에 단단히 고정됩니다.


기억이 돌아와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의 끊어진 다리가 연결됩니다.

그 **연속성(Continuity)**이 확보되어야

비로소 저는 "오늘 머 하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인간관계의 문제입니다.

내 감정과 기억을 내가 믿을 수 있을 때,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Certainty)**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 느낌이 맞다"는 감각, 그것이 저를 세상 속에 단단히 심어줄 것입니다.

기억아 제발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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