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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잇 Jun 26. 2023

방송작가 5년 차, 내가 세상 구경에 나선 이유

퇴사 후 떠난, 유럽에서 캐나다까지

어느덧 입국 3주 차에 접어들었다.

시차 적응으로 인한 피로가 가시고 나니, 이제 정말 한국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작년 겨울까지 나는 방송 작가로 5년을 채워 근무했다.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이십 대 초반에 일을 시작해 이십 대 중반을 지나던 마지막 달까지.

누구보다 치열하고 바쁘게 5년을 보냈다.


교양에서 시작해 다큐, 예능 등.

장르와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제작에 참여했고, 전국 팔도를 누비는 것도 모자라 해외까지.

말 그대로 방송을 따라 이곳저곳을 오가며 일에 매진했다.


나는 방송일을 사랑했다.

일을 하며 육체, 정신적으로 힘든 날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여러 팀원들과 합을 맞춰 방송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매번 나를 가슴 뛰게 했다.   

마치 방송을 제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냈다.


방송 일을 하며 다양한 형태의 삶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이 직업이 아니었다면 이런 사람들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보다 더 깊고 풍부한 경험을 듣는 건,

내가 생각하는 방송 작가의 최대 장점 중 하나였다.


그렇게 4년 차에 접어든 어느 날,

나는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제작팀에 투입되었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한국행을 택했고,

저마다의 형태로 타지에서의 삶을 개척하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어쩌면 방송계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부푼 순간.


흔히, 방송 작가의 황금기라고 하는 3~7년 차.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안정기에 접어 들어야 한다는 마음에

외면하고 놓쳐 보냈던 내 이십 대의 수많은 순간들이 하나둘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동시에 일을 하며 알게 모르게 난 마음의 상처들이 조금씩 아려왔다.

 

이듬해 12월이 마무리될 무렵, 나는 167일간의 세상 구경에 나섰다.

세계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고,

해외 살이라고 하기에는 단출한 그 어디쯤에서 약 반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 유럽, 유럽에서 캐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이 여정은 내 인생의 또 다른 황금기를 펼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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