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파이프 PIPE K Aug 14. 2022

Reflections on Recollections

여기, 내가 살 뻔했던 거의 모든 순간들이 있다

-


한 아이가 골목에 앉아 노래 부른다

후렴구만 계속 부른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골목

아무도 본 적 없는 골목


-강성은, '거울' 中


(C) 2021. PIPE K All rights reserved.


-


   비가 오는 일요일 오후에는 다들 늦잠을 잔다. 태양의 시간과 어둠의 시간 사이에는 아주 깊은 틈이 있고 그 사이에 나의 안쓰러운 행복이 산다. 혼자 서럽게 울고 있는 아이를 본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한다. 아이도 이따금씩 숨을 고르고 나를 바라다 본다. 금방이라도 거둘 수 있는 시선들, 서로를 천연덕스레 비껴가기만 하고,


  어린 시절의 나는 언제나 행복한 아이였다고, 문득 그렇게 믿고 싶어졌다. 구름이 지나치게 가까워서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지만, 또 그러다 정말로 주책 없이 울었던 날들이 있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시간들. 기찻길에도 무심하게 빗방울이 떨어진다. 날이 갈수록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둡기만 하고 언제부터인가 모든 게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아서 나는 그만 울상이 된다. 외롭게 우는 아이를 남몰래 흉내내면서,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한참이나 들여다본다. 정말로 그리워하면, 오래전에 잊어버린 얼굴들이 다시 떠오를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행복해질까? 한참을 울던 아이는 아무도 달래주지 않자 울음을 그쳤다. 빗줄기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


강성은. 2018. Lo-fi. 문학과지성사.

Background Image : (C) 2021. PIPE K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과의 작별이 벌써부터 기억나지 않는다 (5) -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